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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Mar 11. 2023

EP. 13 <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23.03.10





'엄마는 내가 죽도록 맞는 게 가슴 아파 아니면, 죽도록 때리는 게 가슴 아파?'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제작 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딸로부터 들은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서 즉시 작업실에 가 컴퓨터를 켰다며 작품을 기획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더불어,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영광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잃게 되는데, 그 사과를 받아야 원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이기에 제목을 '더 글로리'로 지었다는 말과 함께 세상의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원점을 응원한다고 전했다.



나에게 누군가의 위로와 손길이 간절하던 때는 한참 전에 지나갔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글로리' 제작진이 건네준 위로를 발판 삼아 펜을 들어본다. 그 시절의 나에겐 없던 용기를 내어보고, 틀어막았던 입을 떼어보려 한다. 이 글은 호소나 푸념이 아니다. 나는 이 기회에 엉켜버린 시간들을 풀어나가며 잃어버린 원점을 스스로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내가 지나왔던 곳들을 기웃대고 헤집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행여 이 글을 읽게 될 이들이 공감하며 분노해 주기보다는 자그마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기를.



To. 당신

나는 사춘기가 오지 않았어요. 음, 정확하게는 반항기가 없었어요. 부모님께 대든 적도 없고, 그 흔한 언쟁도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평면적인 나라서 때로는 이 험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일까 스스로를 의심했어요. 당시에도 그랬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왜 사춘기가 없었는지에 대한 사유를 안 해봤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사실, 사춘기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거였어요. 내가 인위적으로 도려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나의 사춘기의 일부를 잃어버렸어요. 당신, 왜 그런지 궁금한가요?


나는 당신을 기억해요. 꽤나 선명하게요. 우린 환경적인 공통점들을 비롯해 많은 것들로 연관되어 있었어요. 겉보기는 그러했죠. 마음도 회수가 가능하다면 당신에게 건넸던 티끌만큼의 마음까지도 전부 다 주머니에 도로 넣어가고 싶어요. 처음 만난 그때, 나는 조금 더 열린 눈으로 나를 그리고 당신을 바라봐야만 했어요. 어긋나 있는 서로의 근본은 완성된 퍼즐이 될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닫고 끊어내야만 했어요.


이 세상에 멋모르고 총을 쥔 아이만큼 무서운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네에겐 폭력을 철퇴처럼 휘두르는 당신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습니다. 배어있는 욕설과 배웠다는 복싱을 장난이라는 이름 아래 툭, 툭. 기고만장한 그 태세에 애써 하하 웃으며 간신히 넘겨냈지만 뒤돌아서 마침내 굳어버릴 수밖에 없던 아이들의 표정을 나는 무수히 봤습니다. 영원히 끓어오를 용광로 같았어요 당신은. 그런 시간은 쌓여만 갔고, 그칠 줄 모르고 이글거리는 당신의 열기에 혹여 내 살갗이 녹아내릴까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당신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 삶에서 철저히 당신을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아챘죠. 그와 함께 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겠죠. 맞아요 무시한 거예요. 그러는 동시에, 당신이 내게

"무시하는 것이 괘씸하다"

그 말을 건넸던 장면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내가 알아챌 필요도 없이 면전에 대고 알려줬잖아요. 그리고 그날부터 지독한 고독이 인위적으로 조형되어 가는 모습을 뜬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땀 한 땀 철저하게 고립시켜 주는 그 모습이 어찌나 인상 깊던지 밤낮 가릴 것 없이 온 하늘이 잿빛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혼자 먹는 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원치 않게 혼자 살아내는 방법을 공부하는 나날이 이어졌어요.


낡고 해진 대걸레는 청소하고 난 뒤 물을 대충 짜서 걸어두기 때문에 그 칙칙하고 쿰쿰한 냄새가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처음에 빨간색인 걸레 머리도 언젠가는 다 잿빛으로 물들고 말죠. 음, 그때는 아마 봄날이었던 것 같고, 확실하게 한창 도덕 수업 시간이었어요. 내 삶에 가장 잿빛이 강렬하던 순간이에요. 당신은 청소도구함에서 대걸레를 가지고 와 다짜고짜 내 책상과 의자에 치덕치덕 문질문질. 나는 하지 말라며 안간힘을 써서 겨우 뺏어냈지만 사실 내가 얻어낸 것은 없었습니다. 대걸레를 거꾸로 들고 씩씩대는 초라한 내 자신만이 교실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잿빛물을 응시하다가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덩치 큰 당신에게 나풀나풀 저항하던 찰나에, 왜 그러냐는 말과 앉으라는 말뿐인 도덕선생님의 표정과 바라만 보던 아이들의 눈빛이 잔상처럼 남아 재생되었습니다. 걸레물의 잡내 때문이었는지, 역겨웠던 그 순간 때문이었는지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뭔지 모를 무언가를 게워냈습니다.


터덜터덜, 두루마리 휴지를 가지고 와 조용히 물기를 닦아내고는 재차 독촉하는 선생님의 지시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당신에 의해 굳은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만 보던 나는 오히려 내가 짓던 표정을 되려 나에게 지어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을 봤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듯한 위안 섞인 그 눈빛들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그 시선들은 배제라는 선택이 불러온 업보였을까요? 나는 그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찾아간 교무실, 회전 스툴에 조심스레 앉아 들이치는 눈물을 부여잡으며 담임 선생님께 힘들다 토로한 그 순간, 그러지 말았어야 됐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야 했어요. 이윽고 교무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선생님의 지시에 이끌려 빈 상담실에서 당신과 대면했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방에 놓였고 그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눠보라는 담임선생님의 존재가 단 한순간도 안정과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폭력적인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시선을 떨구고 숨을 죽였어요. 숨이 죽은 건지 내가 죽은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은 조여왔어요. 당신은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그랬어요. 당시엔 아무 말도 하지 못해 서러웠거든요? 점점 시간이 지나니 서러운 내가 미워졌어요. '언제부터 뒤틀려 버린 걸까...' 라며 원인을 찾았으면 안 됐어요. 그 원인은 내 안에 있지 않기에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나는 행운아가 아니었을까요? 결국에 진학할 학교는 달라졌고, 몸 하나 상한 곳 없이 지긋지긋하던 잿빛과 작별인사를 했으니까. 라는 생각을 단 한 순간이라도 했던 내가 밉습니다. 그것은 종결이 아닌 안도였으니까. 부유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씻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폭력의 법적 형량에는 경중이 있을지 몰라도 마음 안에선 그 무게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을요. 마치, 몸속 장기 어딘가가 간지러워도 긁을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이 뭉개진 기억 또한 만져지지가 않아서 해소되지 않은 채 이렇게 묵어있습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토록 더 깊게 흉이 진다는 것을 당신은 알까요. '나는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은 없으니까' 라며 자위나 하며 살고 있으려나요. 반드시 그렇게 살고 있길 바랍니다.


앞서 당신께 궁금하냐 물었던 그 문장에는 당신이 궁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내가 알던 당신이 여전히 당신 그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후회, 회한, 뉘우침 따위의 단어들을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였든 간에 당신이 나에게 행한 가볍고 무거운 폭력들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단 한순간조차 미화되거나 희석되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그래서일까 내가 나열했던 이 기억들도 당신은 모르고 나만 아는 기억이었으면 합니다. 더 글로리의 동은이의 말마따나 나 또한 용서는 없을 거예요. 당신의 삶 그 정 가운데 찍힌 오점으로 남아있기 위해, 도화선 위에 외발로 서있는 불꽃처럼 잔잔하게 발화하며 살아갈 겁니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그것이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건네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니까요.


From. 나


가장 풋풋하고 생기 있던 나의 한 시절, 그 어떤 색보다 찬란하던 잿빛. 잿빛 옷을 입고 있는 '애쓰다'라는 단어. 애를 써 애쓰다라는 단어를 지우며 살아가야만 했던 아이러니. 영원 같던 그 굴레 속에 서성이는 발걸음과 주저하는 눈빛들을 매일같이 나열하던 순간들이 있었고, 지겨울 새 없이 애써라는 단어 아래 모든 것을 행할 수밖에 없는 나를 마주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애써 도려낸 원점 속에는 꽤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이 글을 통해 가장 커다란 일부를 내놓았다. 한 때는 가해자들을 때려눕힐 수 있는 초능력을 간절히 바랐지만, 사실 그것은 초능력 따위가 아니었다. 폭력은 복수를 낳고 복수의 끝엔 공허가 남는 반면, 위로는 따듯함만을 남긴다. 괴로워하는 이들의 곁에 잠시나마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위로라는 이름의 초능력이겠다. 내 곁엔 그런 위로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이들이 없었던 동시에 나 또한 누군가의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장 절실히 바랐다. 그 위로가 나 혹은 누군가의 원점을 되살려주거나,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돌려주지는 않을 테지만, 밤의 가등 아래에서 외로이 서글프지 않게, 최소한 원점의 언저리에라도 머무를 수 있는 숨이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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