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처럼 내리쬐는 조명 아래, 나와 그대 사이의 애매모호한 거리, 생생하게 호흡하며 주고받는 대화들, 그때의 미묘한 표정들, 눈빛들. 내가 나이기에 건넸던 것들과 그대가 그대이기에 줄 수 있던 것들이 상충해 운명처럼 다시없을 순간을 직조해 낸다. 배우들이 직조해 낸 장면이 그 어떤 순간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을지언정, 그들을 데리고 그 순간을 완벽히 재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같은 제품을 결함 없이, 동일하게 찍어내는 '기계'가 아닌, 삶을 살아오고, 살아가며,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연극과 인생은 순간성으로 맞닿아있고, 맞닿아있는 그 순간의 틈새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틈새인 것을 알기에 사람이라는 존재는 '지금'을 각별하게 어루만질 줄 알고, 애틋하게 여길 줄 아는 존재들인 것이다. 연극은 그래서 늘 새롭다. 삶도 그래서 늘 새롭다.
인생은 연극 같아서 빛나는 희극일 때도 있고 지난한 비극일 때도 있겠다만, 결국 그 모든 희•비극의 순간이 쌓이고 쌓여 나라는 존재를 이룬다는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이다. 살다 보면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떡하니 솟아난 존재가 아닌, 삶과 동행하며 켜켜이 쌓여온 존재라는 것을 차츰 깨닫기 때문이다.
그때 해주신 말씀을 그저 연극적 이론으로만 넘겨짚었던 제가 보입니다. 몇 마디 문단만으로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순간을 사는 존재이기에 짤막한 문단만으로도 더욱 커다랗고 값진 교훈을 깨달을 수 있던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