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몹쓸 말이 지은 집으로부터
올 해의 지배적인 감정 상태는 ‘후회’였다.
계약 연장을 한 것을 후회하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떻게 하면 계약을 파기하고 갈 수 있을지, 여기에서 맡은 업무들과 한국에서 내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이름 모를 직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지금 돌아가면 내가 여기서 맡은 일을 대신할 사람을 바로 구한다는 보장이 없고 한국에서 내 자리에 있는 임시직 직원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2월까지 계약을 연장한 것은 나 자신이고 하노이에 온 선택도 오직 나 혼자만의 결정이었다.
매일 중얼거리고 외치고 호소하기를 ‘여기가 싫다’는 것과 ‘빨리 가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어제 사우나에서 땀 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다시는 이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이 말이, 이 생각이 나를 속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말이 짓는 집에 스스로 들어앉아 부질없는 한탄만 반복하고 있다. 가고 싶고 갈 수 있고 가야만 한다면 가면 되고! 어떤 이유로든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가 천국이라 말하는 동료들이 보기에, 싫음 가면 되지 물 흐릴 건 뭐야~했을 성싶다. 그들이 부르는 용비어천가에 동조할 수도 없고 친목으로 객관성을 덮어버리는 그들의 커뮤니티에 들고 싶지도 않다.
환율 차이 같은 것이다. 한국의 소시민들이 베트남 고위층의 삶을 산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한낱 환율 차이 같은 것이다. 무례하고 몰상식하게 똘똘 뭉쳐 서로를 응원하고 치하하는 사람들의 현장. 아…. 역겹다.
왕따도 좋고 프로불편러도 좋다. 마다하지 않는다.
이곳의 낙후된 시스템이 무능하고 악한 자들에게 장악되었을 때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목격하면서 컴백홈을 외친 나다.
한 선배는 말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자신은 나도 이해가 되고 그들도 이해가 된다고. 나는 말했다. 양비론과 양시론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나는 그냥 쪼대로 살겠다고.
그러나 나는 미숙했다. 스스로 나의 경멸에 명분을 주고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용기도 없다. 그만둘 용기, 그들에게 똥을 뿌릴 용기, 이 조직을 위해 직을 걸 용기.
해서, 오늘부로 나는 여기가 싫다, 후회한다, 가고 싶다 등의 징징거리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가든가, 그냥 버틸 것이다. 그리하여 내 말이 지은, 지을 집을 허물어 해방될 것이다.
Life is on go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