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의 해방 일지

7. 해방구는 어디에

by 억만개의 치욕

2025.7.12.


한 달의 휴가. 동유럽 여행을 시작한다. 한국 귀임 전 마지막 플렉스다. 뭔가 몸과 마음의 에너지와 통장의 에너지를 다 긁어내 쓰는 기분이다. 이 여행 끝에는 내가 가둔 이 감옥에서 나를 스스로 해방할 것이다.


해방구를 찾아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오른다. 타이 항공으로 방콕을 경유해 이스탄불로 가는데 경유 시간 단 1시간. 이 아슬아슬한 선택으로 나는 내 삶의 묘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탈주하라. 그러므로 너는 갇힌다.”


비행기는 30분 가까이 지연되었다. 물론 같은 타이항공에 연결 편이니 항공사가 책임지겠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나 싶다.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Don’t worry”란다. 오키. 워리 안 해. 1시간 50분 가는데 기내식도 준다. 역시 국적기 레벨은 다르다. 맥주도 아사히와 싱하가 있다. 굿!

밥 먹으니 시간 후딱 간다. 중간에 앞자리로 옮겨 앉으란다. 빨리 내리게 할 모양이다.


비행기는 다음 편 출발 20분 남기고 수완나폼에 도착했다. 심지어 버스까지 타야 한다. 내리니 직원이 안내판을 들고 서 있다.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는 한국인 중년부부와 서양 청년 한 명 그렇게 다섯 명이었다. 누구라도 있으니 안심이 되네. 우리 먼저 작은 차에 태워졌고 공항 출입문에 내려 직원을 따라 그때부터 뛰었다. D-2 게이트까지가 꽤 멀다. 헥헥거리며 뛰는데 웃음이 난다. 이 와중에 짐 검사도 한다. 출발 시간이 다 돼간다. 태워주겠지… 태워줬다. ㅋㅋㅋ 그렇게 방콕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게 되네~ ㅎㅎㅎ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불안과 불안에 대한 미숙한 대응(짜증)을 여지없이 표출했고, 부정적인 말들이 입에서 그냥 튀어나왔다. 모든 불운을 전체적인 삶의 불운과 연관 짓고 특히 근래에 일어난 여러 불운한 사건들의 본질과 상황의 변수를 확신하며 더 불행해했다. 이게 내 감옥이구나. ㅜㅜ


10시간을 가야 한다. 여행 준비를 너무 안 해서 불안한데 여력이 없다. 비행기에서 이것저것 체크해보려 했는데 그냥 머릿속이 하얗다.


최근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업무가 많았고 힘들었고, 하노이에서 치과 치료가 잘못되어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보다 더 큰 금전 손실로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출발 직전에 은행 이슈가 생겨 폭발 직전이었다. 우리은행 베트남 어플에서 2천만 동 이상 이체 시 안면 인식을 하는데 월세를 이체하는 과정에서 안면 인식이 안 돼서 10회를 초과, 이체가 잠겨버리고 은행 가서 재등록하라는데 토요일인 데다 나는 출국을 앞둔 터였다. 이때 절정이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월세는 빌려서 보냈다. ㅡㅡ 뭐가 이리도 버거운지. 나는 그냥 하루하루 존버 이상으로 버티는 기분이었다. 하노이의 모든 것들이 나를 옭아매 꼼짝할 수 없도록 한다는 원망이 단전으로부터 올라왔다.


사실 이 여행도 버거웠다. 이 여행은 3월에 결정한 것이다. 그 이후로 틈틈이 비행기 티켓 끊고 도시별 날짜 안배하고 숙소 예약 하고 기차 예약했다. 물론 중간에 실수도 했고 생돈을 몇십만 원 날리는 멍충 비용도 썼고 귀찮음과 어려움 사이에서 늙었음을 선명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그래서 배낭을 포기하고 트렁크를 갖고 간다.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보다 지친 육신과 정신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자신 없음으로 초라해진다.


그래도 떠나왔잖아. 떠나보면 알게 되겠지. 그래, 가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