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32. 한 달 동안
나는 한 달의 휴가 기간 동안 동유럽 7개국의 12개 도시를 다녀왔고 하노이 복귀 전에 3박 같은 5박으로 한국을 다녀왔다.
여행기를 쓰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내 여행기는 7월 15일 이스탄불에 멈춰 있으며 나는 지금 하노이다. 무너진 멘탈을 재건하지 못한 채로, 얼이 빠진 채로 한 달을 살았다. 그래도 할 건 하고 할 수 있는 건 했는데 모든 장면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1. 사고
7월 16일 프라하 첫날밤에 언니가 넘어져 골반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새벽에 112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야 했고 골절임을 확인한 후 응급 수술을 위해 체코 제일의 병원이라는 motol 병원으로 전원조치 되었다. 검사- 입원-수술의 어마어마한 과정에서 무너져버린 내 멘탈에 대한 얘기는 언젠가 다시 쓰게 될 여행기에 …. ㅎㅎ
2. 계획 변경
언니의 귀국은 예정보다 1주일 늦어졌고 조카와 프라하에 더 체류해야 했기에 그 후 딸아이와 둘이 계획한 독일의 4개 도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 숙소 모두 환불불가라… 나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했다.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추가로 프라하 숙소를 구하고 언니가 귀국한 후 계획된 도시로 가기 위한 기차를 또 예매해야 했으므로… 경제적 손실은 두 배가 되었다. ( 그래도 언니의 수술은 잘 되었고 체코 오스트라바에 사는 동생 집에서 5일 동안 요양하고 무사히 한국 귀국했으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3. 꿈의 나라
이번 여행은 독일이 메인이었다. 학부 때 철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생 때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유학을 갈 거라며 허세를 부렸더랬다. 나에게 독일은 청춘의 꿈같은 나라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 그러지 못했다. 드레스덴과 베를린, 뮌헨만 갈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베를린 장벽과 유대인추모 공원, 훔볼트 대학은 잊지 못할 것 같다.
4. 클림트
오스트리아는 클림트가 목적이었다. 클림트의 키스를 나는 이유 없이 사랑했고 벽지로 주문 제작해 한국의 우리 집 현관에 붙였다. 그런 내가 그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 그 감격은 … 감탄이 나오면서 정말 웃기게도 내 머릿속엔 ‘우와, 나 성공했네.’ 이 한마디가 스쳤다. 그러면서 ‘이제 됐다.’ 이런 생각도 ㅋㅋ 클림트의 비엔나에서는 미술관 세 개를 뽀개면서 클림트와 쉴레의 그림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 무식자도 그림에 빠질 수 있다는 ~~
5. 벌금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를 거쳐 부다페스트로 가는 여정이었다. 브라티슬라바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휴식을 하는 기분… 딱 좋았는데 그다음 날 호텔에서 기차역까지 트램을 타고 가던 중 나는 99유로의 벌금을 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상황이었다. 이때 나의 멘탈은 완전히 전원이 나가버렸다. 1유로인 요금 심지어 딸아이는 50센트인데 내 카드로 탭하여 1인 요금 지불, 같은 카드로 딸아이 요금 탭하고 승인된 줄 알았는데 내 것만 승인이 되었다. 검표원의 확인 과정에서 이를 인지한 나는 실수라고 다시 하겠다고 사정 사정했지만 안된대. ㅜㅜ 폴리스 부른다고~~ 근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우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ㅜㅜ 암튼 나는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벌금을 내고 트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이탈리아 기차표 펀칭 안 했다고 벌금 내라는 것도 싸워서(?) 이겼고 베트남에서 꽁안한테 세 번 잡혔는데 단 한 번도 벌금을 내지 않은 k 아줌만데…. 브라티슬라바 망해라!라고 욕을 날렸다. 인정머리 없긴!
6. 부다페스트 야경
마지막 도시 부다페스트는 괜찮은 숙소를 예약했고 충분히 자고 여유 있는 일정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야경만 보면 된다는 마음으로 ~~ 욕심부리지 않고 다녀도 욕심 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정이 된 걸 보면…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게 맞나 싶다.
그렇게 부다페스트에서 이스탄불 경유 인천으로 와 ktx 타고 울산 오니 26시간 걸렸다. ㅋㅋㅋ
3박 같은 5박 하고 하노이 온 지 이제 5일 차.
밀린 여행기는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이제 호흡이 긴 여행, 이동이 많은 여행은 버거울 나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상황적 변수에 대처하는 것도 영민하지 못하고 실수가 잦다. 무엇보다 어딜 가서 무얼 보고 무얼 하든 이 모든 것이 대체불가능한 기쁨이 아니다. 그간 축적된 인지적, 감각적 경험들로부터 예측 가능한, 대체가능한, 그리하여 어느 정도 익숙하고 뻔한 종류의 만족감이다. 더 이상 대단히 놀랍지 않다.
여행의 이유를 다시금 찾을 때다. 그럼 여행의 목표와 계획, 과정에 변화가 생기겠지.
일상으로의 복귀. 이 낯설음이, 이 익숙함이 여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