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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Jan 15. 2023

그의 로맨스, 나의 로맨스

Bill Evans 빌 에반스 <My Romance>

언젠가 Bill Evans 빌 에반스를 얘기하게 되겠지만, 정작 맞닥뜨리면 너무나 거대한 그의 아우라에 주저를 하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나 그득하여 쓸 말은 가득한데 정작 내어 놓지는 못하는 격이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깊이 간직하는 것일수록 내어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함부로 얘기해서 누가 될 것 같은 마음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글을 잘 쓰지도 못하면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나중에 잘 쓸 자신이 있을 때 또 쓰면 되지.

 

더 이상 똥으로 전락하는 일 없이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하기, 못해도 되니까 시도해 보기. 나의 삶의 진행형은 요즈음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Bill Evans는 나의 음악 듣기를 단번에 쉬프트 시켜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 유명한 [portrait in jazz] 있지 않나, 안경을 끼고 머리를 포마드로 이쁘게 올백한 그의 얼굴이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앨범.

그 앨범을 듣고는 재즈란 것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 자체가 생겼고, 여기서 확장된 음악 듣기는 재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갔으니 엄청나게 지대한 영향을 준 작가이다.

언젠가 척추가 뿌사졌을 때 잠시 노는 김에 음악 듣기를 제대로 해보자고 Bill Evans와 Miles Davis 전체 앨범을 훑어보려 한 일이 있었다. 그때의 소중한 공부가 이후 음악 듣기와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 사람을 공부할 때,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연대기별로 추적하면 단편적으로 알아오던 작품들의 얼개가 맞아 들어가는 절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Bill Evans와 Miles Davis의 작품들을 그렇게 공부했을 때 멋진 경험을 했던 이유는 그들은 그만큼 초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는 고민을 했고, 좌절을 했고, 변화를 했고, 이를 작품에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Bill Evans를 써 보았으니 Miles Davis도 이제 쉽게 끄적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Bill Evans는 1957년 첫 앨범 발매부터 1980년 숨을 거둘 때까지 끊임없이 재즈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며 살아온 피아니스트이다. 그러하니 그의 음악을 공부해 보고자 할 때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책을 읽어가며 연대기별 발매되는 앨범들을 함께 들어가는 접근을 추천하고 싶다. 마치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느낌, 그가 앨범을 낼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색다른 접근법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에서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본 책이 전기 식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고 발매된 모든 앨범들이 들어가 있으니 추천해 보고 싶다.

 

그의 음악 활동 동안 참여했던 뮤지션들도 다 다르고, 그의 장기인 트리오 세션 멤버들 또한 계속 바뀌어 왔기 때문에 음악 형태는 시간이 갈수록 변모되어 왔다. 그러나 Bill Evans는 그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가 있고 기품이 있다. 나는 독특한 그만의 재즈 피아노 연주가 어린 시절 공부했던 클래식 피아노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을지 조심스레 얘기를 해 보고 싶다. 발레 공연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연주는 어떤 곡을 연주하든 항상 우아함을 동반하고 있다는 게 사견이다.

피아노의 터치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고, 심금을 울리게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재즈 앨범은 사이드로 참여한 앨범도 중요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다 들어보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트리오로 발매한 연대기별 앨범들을 들어보며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는 분야이다. 그리고 누구나 각자의 최애 트리오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Bill Evans trio를 얘기할 때 너무 어린 나이에 사고로 작고한 Scott Lafaro가 Bass로 함께할 당시를 가장 눈부시게 얘기할 것 같다. 물론 나도 당연히 이견은 없으며, 단지 그 이후의 활동들을 가두게 만드는 경향이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연대기별 음악 듣기는 그런 갇혀 있는 시야를 확장하고 싶었던 마음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나로서는 또 다른 그의 트리오 활동을 꼽으라면 죽기 직전까지 마지막을 함께 했던 트리오 Marc Johnson (Bass), Joe La Barbera (Drum)와의 활동을 추천하고 싶다.

 

눈부시게 빛나는 1962년 Village Vanguard에서의 [Waltz for Debby] 등 수많은 찬란한 앨범들과 곡들을 본 지면에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죽기 3개월 전 Village Vanguard 동일 장소에서 진행된 라이브 공연 [Turn Out the Stars: Final Village Vanguard Recordings] 앨범을 추천하고 싶고, 7장에 빼곡히 놓여 있는 그의 레퍼토리들과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에너지를 담아 준 그의 연주를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마지막으로 본 앨범의 세 번째 CD에 담긴 <My romance>를 살포시 올려놓고 사라진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romance이며, 그가 펼치는 사랑의 서사시에 충분히 동승해 볼 용의가 있다면...


8분 20초가 짧게 느껴질 것이다.



Bill Evans [Turn Out the Stars: Final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80년 CD3 <My Romance>

https://youtu.be/3iDPbZc9q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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