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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질문을 건네는 시간

P.F.M [Per un Amico]

by Jeff Jung

일반적으로 New Trolls 뉴 트롤즈를 통해 이탈리안 아트 락, 프로그래시브 락을 접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방면으로 곁가지를 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이탈리아 쪽 음악인들의 풍성한 사운드와 멜로디에 감흥을 느끼게 된다. 한국과 이탈리아인들의 비슷한 기질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결과물들이 있다. 그 간 영국의 King Crimson 킹 크림슨, Renaissance 르네상스와 Camel 카멜, 헝가리의 Omega 오메가를 언급하였고 다시 이탈리아로 넘어가 보자. 앞으로 몇 가지는 더 얘기할 수 있을 꼭지 중에 우선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밴드가 있다.

Premiata Forneria Marconi 쁘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는 이 장르로 한정할 때 한국에서 탑 티어급의 밴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앨범은 이탈리아산 밀도 넘치는 사운드를 얘기할 때 첫 번째로 거론된다. 인기에 걸맞게 한국에 내한 공연을 온 전적이 있기도 하다. 연주력이란 단어는 음악인에게 기본이긴 하더라도 이들의 실력은 한 단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PFM 원년멤버들의 구성이 꽤 밀도가 높다. 일렉트릭에서 12현 어쿠스틱, 보컬까지 담당하는 기타 France 프랑코, 광기의 연주력을 보이는 드러머 Franz 프란츠, 다채로운 사운드의 핵심인 키보드의 Flavio 플라비오, 이렇게 세명의 에프 발음 친구들과 쫀쫀한 베이스 Giorgio 조르지오가 만난다. 여기에 Mauro Pagani 마우로 빠가니의 플룻과 바이올린이라는 특이점이 합체함으로써 차별화 5인조가 만들어졌다. 음악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조합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 각자의 기량이 적절하게 블랜딩 된 결과일 것이다. 이를 음반이나 라이브 공연을 통해 몰입감 있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실력의 우위 위에 사운드의 차별점을 두 가지 정도로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들의 음악에서 키보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70년에 Mellotron 멜로트론이란 악기가 만들어졌다. 멜로트론은 건반마다 자기 테이프를 탑재해 사전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키보드이다. 현대의 가상악기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밴드는 제한된 멤버로도 풍성한 관현악 사운드를 구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다채로운 소리를 음악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다. 이들이 즐겨 쓴 Moog 무그 신시사이저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피치를 비틀어 가며 일반 악기에서 낼 수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주욱 퍼져 나가는 깊은 질감의 선봉대가 보일 때는 어김없이 멜로트론과 합체한 미니무그가 있다.

두 번째, 멜로트론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악기를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관악기인 플룻의 속삭임, 현악기인 바이올린의 섬세함이 정식 밴드 멤버로 참여함으로써 전체적인 사운드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일렉 음악이라는 일면 딱딱한 질감이 부드러움과 만날 때의 하모니는 늘 신선함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깃거리를 한 아름 더 안겨주는 느낌이다. 물론, 이들이 부드러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플룻과 바이올린은 사용하기에 따라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절정부에서 역동성을 배가할 수 있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진면목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1972년 비슷한 시차를 두고 발매된 두 장의 앨범이며, 이탈리안 아트 락을 얘기할 때 New Trolls와 더불어 맨 앞에 거론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P.F.M의 심오하고도 웅장한 사운드를 얘기할 때 두 곡을 우선 앞세운다. 1집을 시작하는 <Impressioni di Settembre> (영어권 발매 The world became the World)와 2집의 <Appena un po'>는 자웅을 가리기 힘든 형과 아우 사이같이 유명하다. 여기서는 2집의 곡에 대해서 언급하자.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은 [Per un Amico]이다. ‘친구를 위해’라고 번역이 되는데 그런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소중한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얘기하는 내용을 띄고 있다. 혹은 친구를 빗대어 청자에게 피력하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사를 별도로 해석하지 않고 소리 자체가 주는 의미를 즐기는 나는, 금번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가사들을 확인해 보았다. 화자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보인다. 그리고 친구에게 조언한다. 이 세계는 진실이 아니라고, 지금 당장 떠나라고 호소한다. 혹은 더 이상 꿈만 꾸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계, 그 속에서 천천히 춤추는 행위를 표현하면서 앨범은 마무리된다. 앨범 커버는 어쩌면 이런 음악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방이 닫힌 공간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그 속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수많은 즐길 거리가 가득하여 굳이 이 방을 나갈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갇혀 있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한다. 푸른 하늘, 햇살까지도 박제하여 안겨주는 이곳에서 화자는 이 상자 너머를 상상하기 바란 걸까? 가사 해석을 하며 앨범 커버까지 바라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앞서 얘기했듯이 꾸알랑 꽌도하는 이탈리아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소리 만으로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심정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곳을 탐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언가 두고 온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해석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사운드 자체가 몸을 휘감아오며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그런 시간이다. 이렇게 건네는 질문에 반응할 수 있는 순간은 소중하다. 마치 어떤 미술 작품을 앞에 두었을 때, 빨려 들어갈 듯이 직시하게 되는 지점처럼 말이다. 그런 경험들이 삶에서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하니 자신의 안테나를 켜고 매칭되는 주파수를 찾아내고자 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것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2집을 앞머리부터 이끌어 나가는 <Appena un po'>의 구성과 사운드의 질감은 대단하다. 클라이막스를 가장 처음에 터트리는 것과 같아 의아스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곡에는 앞서 언급한 음악적 특징들이 요소요소에 포진되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환기가 물결처럼 흐르면, 어쿠스틱 기타가 부드럽게 운을 띄운다. 이를 받아서 풀룻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때 멜로트론이 하프시코드 사운드로 배경을 깔아 준다. 불특정 상황이 혼란을 주는 듯 청자를 환기하다 모든 막이 순식간에 닫힌다. 그리고, 친구에게 건네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다른 공간을 마주하려면 지금 당장 떠나라고. Via di qua

그리고 음악의 시간들이 흐른다. 천천히 펼쳐진다. 먼저 앞서 가지 않고 의식과 함께 다독여 가며 천천히 상승하는 지점이 있다. 어떤 고민들이, 시공간들이, 또 다른 옛이야기들이 그 속에 가득하다. 미니무그를 통해 뻗어나가는 그 점층적인 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남긴다. 나로서는 그 속에서 항상 무언가를 생각했었다. 여러 감정 중에서 회환이 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나에게 해당될 뿐, 모든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음악적인 경험들은 백이면 백 다르다.


음악이 질문을 건네는 시간. 그 소중한 경험을 정리하고 공유하고픈 마음.

그리고 이것이 매거진을 이끌어 나가는 이유일 것이다.



Premiata Forneria Marconi [Per un Amico] 1972년 <Appena un po'>

https://youtu.be/7oekZP4wr2Y?si=B6CvjKW_m1obv7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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