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wis 존 루이스 Bach 전주곡과 푸가
여기 선물용으로 그만인 앨범이 있다.
사실 이 명제는 이 시대에서는 정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젠 누구도 음반 따위를 선물하지는 않으며, CD 자체를 산다는 행위부터 다시 물음표로 되짚는 시대이니 말이다.
공테이프에 주옥같은 곡들을 녹음하고, 손글씨로 눌러 적은 트랙리스트를 곱게 담아 수줍게 건네었던 과거의 감성으로 조금 돌려 정의해 보자면 선물용으로 그만인 앨범이란 무엇일까.
우선 선물이란 주는 사람의 감성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행위가 우선시 되어야 하므로 공통적으로 각인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기가요 앨범을 사다 주는 것과는 또 다른 개인의 특별함은 부여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음악이 너무 어렵게 다가와도 안되고, 그렇다고 올드 OST 모음집 마냥 이지리스닝으로 따분함을 불러와도 안 될 것이다.
선물로서의 기품 있는 느낌을 불러오되, 정석적인 클래식 음악의 위압감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집안 거실에 틀어 놓으면 젊은 처자, 술 먹고 돌아온 아빠, 뗑깡을 부리는 아기까지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받지 않고 그림자처럼 자리할 수 있는 친근함을 보유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4장의 앨범을 한 장의 합본으로 쥐어주니 가성비로 이만한 것도 없다.
이런…적다 보니 결점 이랄 게 없다.
이렇게 여러 쓸모를 따져 보았을 때 나는 본 John Lewis 존 루이스의 J.S Bach Well-tempered clavier Book 1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적절한 재즈로 풀어준 4장의 CD앨범만큼 적절한 예시를 지금까지 찾지 못하겠다.
“선물용으로 그만인 앨범.” 이란 농담처럼 나에게 각인된 그의 음악은.
John Lewis는 1950년대 재즈계에서도 우아한 음악을 들려주었던 Modern Jazz Quartet의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Modern Jazz Quartet에서 음악감독의 역할을 하며 밴드의 정체성을 트레이드 마크인 맑은 바이브로폰 연주 위에 절제 있게 차별화시켜 놓은 장본인이다. 이들의 음악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는 그런 단아한 분위기가 있는데, 사실 이들의 절제된 연주를 통해 길어 올린 에너지는 청자들의 내부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텐센과 맞아떨어져서 독특한 시너지를 안겨 주었다.
Modern Jazz Quartet 해체 및 재결성, 후임들 양성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그는 1984년부터 6여 년 간 J.S Bach well-tempered Clavier Book 1의 평균율 조곡들을 녹음이 완성되는 데로 4장의 앨범에 담아 발표를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본 4장이 합본으로 되어 있는 본 앨범을 손쉽게 CD로 구입할 수 있다.
크로스오버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연코 NO라고 얘기할 것 같다. 그만큼 이질적인 무언가를 섞었을 때 창조되는 결과물이 수준 높게 드러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대다수의 결과물은 시큰둥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심지어는 원작을 모독했다고 욕을 들어먹을 일이 많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은 악기를 포함하여 접점을 불러들일 만한 요소가 있으며 그동안 협연, 재해석된 음악과 연주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음악들을 다양하게 듣지는 않았지만 짧은 소견으로 지금까지 그닥 감동을 받은 작품들이 없다. 예를 들어 동일하게 Bach를 연주한 Jacques Loussier 자끄 루시에나 Brad Mehldau 브래드 멜다우의 재즈 재해석에 대해 그렇게 큰 흡인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좋은 reference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ohn Lewis의 본 Bach 재해석은 재즈를 분명 제대로 더하기는 하였으나 이것이 스미는 방식이 차별화된다. 즉,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이게 재즈가 스며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매칭이 되어 있고 흡수가 되어 있다.
그 자체가 클래식적인 접근법을 기반으로 재즈음악을 해 왔으니 어쩌면 이는 당연하게 이루어진 결과물일 지도 모르겠다. 그가 재즈 씬에서 일구어 놓은 클래식적인 발자취들을 녹여내어 죽기 전에 Bach의 평균율 곡집을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길어 올려 보겠다는 마음도 일면 이해가 될 만하다.
인위적으로 옷을 입히지 않았으니 거추장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고, 분명 새로움을 더했는데 당연히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 본 앨범은 클래식을 듣는 이들에게는 재즈적인 리듬과 텐션이 가미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고, 재즈를 듣는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을 고전에 제대로 된 양념을 흩뿌려 꿈결 같은 음악 듣기를 선사한다.
클래식 음악의 큰 바탕 위에 적절한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섹션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면 숨 막힌 아찔함을 선사하는지를 본 앨범은 보여주고 있으며, Bach의 아름다운 서정성이 재즈 피아노를 통해 배에 달하는 감동으로 퍼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음악은 분명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기에 말머리에 선물용 운운하며 타령을 늘어놓은 것이다.
이제, 여행길을 안내할 소품 한 곡을 잡아 보고
이 허느적하느적 끝나지 않는 꿈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느껴 보실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John Lewis [J.S Bach Preludes & fugues from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1 : Vol 3]
<Fugue No.11>
만약 갈증이 생긴다면,
John Lewis [J.S Bach Preludes & fugues from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1 : Vol 1]
John Lewis [J.S Bach Preludes & fugues from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1 : Vol 2]
John Lewis [J.S Bach Preludes & fugues from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1 : Vol 3]
John Lewis [J.S Bach Preludes & fugues from 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1 : Vol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