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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02. 2023

나도 그렇게 놀아서 아름다웠나

Arab strap 아랍 스트랩 [Philophobia]

우리는 때로는 영미권의 가사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 것 같다. 가사가 주는 음악적 구성요소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특히 발라드의 경우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단점이 존재하는 반면, 알아듣지 못하는 가사가 하나의 웅얼거리는 악기와 같이 다가와 원어민은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를 우리는 별도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Arab strap 아랍 스트랩의 [Philophobia]는 가사를 해석하지 않고 들어 보더라도 너무나 감미로운 마쉬멜로우 같은 음악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한곡 한곡 소중한 음악적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일렉트로닉 리듬을 바탕으로 적절한 기타 사운드, 때로는 현악기를 동원하여 정리된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 위에서 음유시인인 듯한 보컬은 읊조리듯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어 놓는다.

과거 포크가 통기타를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면, 포크 락의 요소에 여러 양념을 버무려 아름답게 화면을 요소요소 다채롭게 채워 놓았다.

음악은 모노톤처럼 보이지만 한곡 한곡에 응축된 에너지와 노력을 헌신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굳이 읊조리는 가사를 좀 더 얘기하자면, [Philophobia]라는, 사랑이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제목으로 걸어 놓고, 벌거벗은 남과 여를 앨범의 앞과 뒤에 적나라하게 배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감미롭게 들었던 음악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담뱃불과 같은 섹스가 수시로 등장하고, 질투에, 싸움에, 남과의 바람을 얘기하고, 병신이고, 시트를 정리하고, 침대에서나 얘기하는 우리, 찌르고, 피 흘리고, 딴 남자랑 놀고, 술에 취해 어떻게 키스한지도 모르겠고….

환멸이 가득한 우울함과 찌질함이 앨범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이렇게 우아하고 허탈하게 읊조리는 이야기들이 이런 내용일 줄이야, 할 것 같다.

아마, 가장 처절하게 사랑하고 헤어지고 질투하고 바람필 때 극도의 헝클어진 집중력이 명반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싶다.

마치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마냥.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다.

음악이 요소요소가 아름답게 빛나고, 우아한 구성미는 어떤 앨범 보다도 탁월하다. 중얼거리는 보컬의 목소리는 연극 마냥 앨범의 분위기를 하나로 잘 관통하여 준다.

그들의 앨범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단연 20세기 최고의 앨범 중에 하나로 언급하고 싶다.


직관적으로 훅이 가는 <New Birds>나 <My favorite muse>를 언급하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가지고 가고 싶은 곡으로 (가사는 엄마 몰래 어린 소녀하고 계단을 올라가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The night before the funeral>을 링크시켜 놓고, 전곡을 감상하기를 기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Arab strap [Philophobia] 1998년 <The night before the funeral>

https://youtu.be/PQaUQQv-Bg0?si=UFwhFHuOilYuosX9









주옥같은 전곡에 관심이 간다면

https://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m0xL4mdsAfvSrEkEVXVwoTktIXXdmZ3JY&si=Cb1ZTgPah8R0Zv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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