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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19. 2023

잘 정돈된 반성

백현진 [반성의 시간] <아구탕에서 나온 네명>

백현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 부단한 예술가의 길로 올곧이 매진하고 있는 듯하다. 어어부밴드, 솔로 활동을 통해 음악가로서 더 익숙한 우리지만, 그는 사실 여러 개인 전시회를 통해 미술가로 불리고 싶은 예술인이기도 하다. 앨범 자켓 등 키치 형태의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같이 어떤 날에는 배우로서 영화판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여러 호기심과 재능과 노력과 냉소가 어우러져 이젠 종합 예술가라는 공통분모로써 그를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지면에서는 그의 여러 음악 여정 중 밴드로서의 그가 아니라 솔로 앨범으로서의 자아를 처음으로 드러내었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Time of reflection 반성의 시간>이라는 그의 첫 번째 앨범은 속지에선가 본 기억으로는 그의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언저리를 관통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고 했었으며, 어느 인터뷰에서는 지독한 앨범으로 결코 다시는 이런 앨범을 만들 수 없다고도 했던 것 같다. 즉, 서른 시대를 치열하게 통과하고 난 이후 겨우 세상에 나오게 된 작품으로 다시 한번 더 겪어낼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자전적인 제스쳐가 음률에 가득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예술가이다. 아마 그가 통과한 지난했던 심상들은 빌려왔겠지만 온전한 그의 이야기로 곡해해선 안될 것 같다. 그는 분명 소설적인 작법으로 수없이 하나하나를 비틀어 담아 놓았을 것이다.

앨범 전체를 흐르는 기조는 우리가 청춘 시절에 겪게 될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좋은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떠오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할 정도의 시간들을 곱씹어야 함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냉소, 후회, 쓸쓸함이 우선 떠오른다. 

사랑으로 어루만져진 끝도 없는 회환과 이별도 있을 것이다. 곱창기름이 소매에 튀는 눅진함도 드러나고 막걸리 냄새도 퀴퀴하게 날 것이고, 쓸쓸한 여관방의 흐릿한 형광등과 닫힌 창문도 보일 것이다. 일찍 굿바이를 하려는 자살 미수 친구도 있고, 지긋지긋한 헬지옥이 싫어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청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상징들을 ‘반성’이란 단어를 통해 잘 갈무리하고 정리를 하려고 한 듯하고, 이는 잘 정돈된 사운드와 리듬, 독백으로 꽤 성공적으로 드러났다.

다시는 만들 수 없다고 했던 통증과 같이 인고의 시간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의 음악은 홍상수의 영화와도 많이 닮아 있는데,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드러내어도 되는 정도의 경계를 사정없이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법은 이 이상은 하면 안 된다는 대중의 암묵적인 합의를 너무도 가볍게 허들 넘듯 넘어간 후, 이를 무자비하게 발가벗겨 버린다. 발꼬락이 오그라들기 시작하고, 아, 제발 하지 마 하지 마. 진짜 하지 마!! 라고 치기가 나올 것 같은 벌건 얼굴을 가뿐히 무시하고 드러내는 실제의 풍경은 그래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지나고 난 후 그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것은 예술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들이 활용하는 TMI가 예술에 좋은 재료가 될 수 있기도 하다.


'어어떠 케에야 만날 수 이이인나'로 한탄하듯 독백으로 시작하는 백현진의 충격적인 시작을 온전히 앨범으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중 선택하고 싶은 곡으로 9분여에 달하는 마지막 연극 같은 서사시 <아구탕에서 나온 네명>을 꼽아보고 싶다.

2023년에 2000년대 초반의 필승 대한민국 시대상이 주말 저녁 종로 거리를 통해 너무나 아릿하고 안타깝게 그려진다.


백현진 <반성의 시간> 2008년 <아구탕에서 나온 네명> 

https://youtu.be/txQzIPL23B4







앨범에 관심이 생긴다면

https://youtu.be/9ptuKmUco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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