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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26. 2023

깊고 아름다운 뿌리

김민기 [The past of 김민기] <봉우리>

멘토도 싫고, 영향받은 인물 따위 싫고, 존경하는 인물 따위 키우지도 않는 나에게 유일하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딱 한 명 그어볼 수 있는 이가 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닌 한국 음악사의 거대한 시인 같은 사람이다.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가지 중요하게 깨달은 이치가 있다면 깊은 뿌리로 꾸준함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치는 시공을 그냥 가볍게 초월해서 적용된다. 보잘것없든 거룩하든 성심을 다해 꾸준하게 무언가를 정진하는 사람의 발자취는 그만큼의 무게를 가지게 되고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싶어 진다.

광장에서 모두가 불러서 더욱 힘을 얻게 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음악 자체로 그렇게 큰 울림을 지니는 작품들이 그렇게 많겠는가. 단연코 힘주어 얘기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참된 작가로 볼 수 있겠다.

숨 죽여 빛나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앨범 작업, 농사를 지으며 때론 탄광촌에서 생활하며 만든 마당극과 연극들, 시대를 드러내는 가볍지 않음을 두고 수많은 명 배우들과 릴레이 공연의 역사를 만든 [지하철1호선],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화두를 잡은 아동 청소년극까지.

이미 끝난 서사를 곱씹는 비루한 영예로 남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냥 막걸리를 즐기는 늙은이로 그가 힘닿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바를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써 내려가는 발자취는 순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군대에 있었을 때 김민기 1,2,3,4집이라고 적어 내려간 재녹음한 앨범들이 발매가 되었었다. 조악한 음질의 김민기 1집을 빽판으로 듣고 자랐던 나에게 그가 전해 준 선물들은 축복 같은 것이었다. 그 앨범들을 다시 내게 된 계기가 정말 재미있었던 게, 그 당시 학전이 많이 어려운 상태였고 그가 품었던 학전의 활동들을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해 내키진 않았지만 지난 앨범들을 다시 녹음하여 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되었겠는가. 그리고 앨범에 담긴 녹음과 연주들은 거의 새로 작품을 내었다고 불리울 정도의 품질을 보장하여 주었었고, 그의 작품 연대기를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군대 휴가를 복귀하던 충주의 터미널 근처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테이프로 산 앨범들을 소중히 품고 돌아가던 그 군 후송버스길이, 그 흥분된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그의 재녹음한 앨범들은 다시 발매도 되지 않고 어느 순간 그대로 또다시 사라져 버려서 많이 아쉬워했다. 테이프란 것은 음질에 한계가 명확하고 틀면 틀수록 시간의 무게를 또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레코드 샵 홈페이지에서 그의 앨범들을 전체 모아서 하나의 Anthology 격으로 만든 앨범을 보게 된다. 

그 거대한 흥분을 표현하기란, 아마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이노디자인의 이명세까지 앨범 디자인에 참여한 LP 모양의 CD 전집은 그렇게 나의 선반에 당당하게 얼굴을 전면에 드리우고 풍경을 차지하게 된다. 


김민기 아저씨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다. 높은음을 못 내기에 낮은 저음의 노래만 부를 수 있는 나에게 편한 옷 같이 그래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한 곡, 한 곡이 아름답다는 말을 한참을 넘어 조용한 빛을 풍긴다. 빛나는 한국 음악의 서사이자 정점이다.

힘들 때 이렇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항우울 치료제보다 더 강력하다.

그 찬란한 힘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싶다.


김민기 [Past life of 김민기] 2004년 <봉우리>

https://youtu.be/tuYB7E-EEcs








김민기 손석희 JTBC 인터뷰 풀영상 (2018년) 흔치 않은 소중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youtu.be/D27V3apKa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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