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ff Jung Mar 05. 2023

골방에서 손바느질하기

James Blake 제임스 블레이크 <I Am Sold>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전의 이야기들이 있었고 어떻게든 영향을 받고, 살짝 비틀어서 내어 놓게 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작은 차이가 현격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예술이란 게 주관적으로 평가받아 종잡을 수 없기도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작은 차이의 수준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운동 경기에서 승리의 키워드는 반 보만 선점하는 것이듯 사실 작은 차이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2000년대 음악 씬에서도 여러 신선한 물결은 계속 있어 왔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자신의 음악을 보여준 아티스트를 거론할 때 개인적으로는 James Blake 제임스 블레이크를 탑 티어로 올려놓고 싶어 진다.

그 역시도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무기를 벼려왔을 것이다. 그가 코드에 들어왔던 주된 이유는 이를 바탕으로 제시한 여러 색의 조합이 독보적이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다지도 개인적인 전자음악


우선 그는 골방 리스너이다. 일 것이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으니 정답일지 모르겠으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여러 전자 기자재들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수많은 음악들과 소스를 듣고 만들고 지우고 노래하고 녹음하는 그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로 구분된다. 연마된 디제잉 능력을 바탕으로 골방에서 레퍼런스들을 발췌하고, 비틀고, 합하고, 튜닝하며 대부분의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는 또한 사운드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나의 사운드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집중력이 앨범 전면을 지배한다. 사운드의 아와 어가 어떻게 풍경을 다르게 그리는 지를 잘 아는 장인 같다.

이런 훈련된 비트를 다루는 능력은 느리고 묵직한 중저음의 비트를 바탕으로 한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펼쳐놓는데 기본이 된다.

약간의 음울한 색채로 칠해지는 그 만의 세상 속에서 말이다.


여러 비트너들과는 다르게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능력은 큰 장점으로 차지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자 음악임에도 단연코 아날로그로 가득한 음악이기도 하다. 작곡 능력을 바탕으로 직접 만들어 낸 연주와 비트, 샘플들은 그의 손에 의해 섬세하게 가공이 되고 조합되고 재배치되는데 그 손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이브에서 풍부하게 모든 음악을 연주와 디제잉으로 소화해 내는 그의 음악적인 볼거리를 상상해 보라. 미칠 듯한 전자 음악의 차별점이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미성으로 노래하는 창법은 그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무기일 수도 있겠다. 노래하는 전자 음악가는 또한 정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가스펠 합창단이라도 했던 것일까, 기본적으로 팔세토 기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창법과 하이톤의 섬세한 미성으로 마지막 손바느질이 완성된다.

목소리의 결 또한 마이크로 방식으로 다듬어 풀어주고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악기가 되고 샘플이 된다.

라이브 무대에서는 때로 루브 스테이션을 가지고 즉석에서 한 소절 목소리를 따고는, 재생하며 그 위에 또 다른 목소리, 그 위에 또 다른 층의 목소리, 옥타브 겹을 얹어가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는데 처음 보았을 때 까무러치게 즐거운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생기기도 또 미소년같이 멋들어지게 생겼으니 이것은 뭇 여성들의 인기를 더하는 제4의 덤은 되겠다.

피아노를 멋지게 다루며,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직접 만들어 낸 샘플들은 음악의 방식이 되고, 디제잉으로 표현된 다채로운 소리의 질감에 묵직하게 근본을 받쳐 주는 리듬의 세계.

믹싱,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골방에 틀어박혀 수많은 실험을 하며 그 만의 작품을 만들어 주면 되겠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온 작품들이 벌써 6장이나 되었고, 각종 페스티벌의 단골 아티스트로써 라이브의 능력을 드러내며 활동한 지 벌써 10여 년이 훨씬 지났다.

초기 작품들은 정말 골방 리스너의 풍경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면, 요즘은 주변 아티스트들과 협연도 많이 보이고 좀 더 밖으로 나온 느낌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색채는 여전하다. 단연코 아름다운 재능이다.

이렇게 독보적으로 생뚱맞는 아티스트를 접할 때마다 강한 음악 전통을 가진 영국의 인프라에 대해 '역시 영국이다' 란 인정을 하게 된다.


James Blake의 첫 번째 앨범 자켓에는 그의 얼굴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수많은 레이어로 덧칠해져 있어 하나의 층위를 이루는 실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며 오랜만에 그 여러 겹의 텍스쳐가 보여주는 또 다른 화음의 풍경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곳에 가면 흐릿한 숲이 있는데 매번 길을 잃더라도 좋을 것이다.


James Blake [Overgrown]  2013년 <I Am Sold>

https://youtu.be/cDohRTUpW_E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경찰을 보고 싶지 않아. 바로 시작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