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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Apr 29. 2023

지난했던 짝사랑, 그리고.

Portishead 포티스헤드 <Western Eyes>

멍석을 깔아주면 잘 놀아야 하고, 호들갑을 떨어야 할 때는 최고로 리액션을 해 줘야 한다.

뭐, 말만 하면 다 최고, 전율 같은 그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다.

어쩌면 그만큼 대단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그냥 인생이 행복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럴싸하게 갖다 붙이기 좋기도 하겠지만 2000년을 향해 달리는 혼돈의 세계말에는 그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혼재되어 있기도 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시작된 trip Hop 트립합이라는 장르는 흔히 Massive Attack 매시브 어택, Tricky 트리키를 포함하여 Portishead 포티스헤드 (포티쉐드)를 선구자로 칭하고는 자리를 만들어 주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Portishead는 그 장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밴드이기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들이라고 할 만하다. (Massive Attack은 다른 지면에서 반드시 쓸 재료이다.)


정말 불현듯 20세기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 이들.

[Dummy]란 제목으로 끈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인형을 형상화한 거친 화질의 화면.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에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느린 리듬.

오래된 뒷골목 영화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저녁 풍경, 찰찰찰찰 심벌의 치잘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고독하고 쓰라린 상처를 동여매고는 슬픔을 한 주먹 던져 넣으며 흐느끼는 Beth Gibbons베쓰 기븐스의 목소리.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느린 비트감, 음악으로 전하는 영화라고 칭할 만한 컨셉의 분위기, 공들인 모습이 역력한 사운드 풍경. 그 새로움과 독보적인 존재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향을 받고 감동하였을까 싶다.


1집의 충격에 어안이 벙벙한 와중 그들은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3년 후 1997년 두 번째 앨범 [Portishead] 동명 타이틀 걸작을 흑백화면으로 가득 채워 내어놓는다.

기괴함은 더욱더 끝도 없이 바닥으로 침잠하고, 이펙터가 걸린 목소리로 앙칼진 날카로움까지 겸비하며 사운드는 이다지도 흑백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말 그대로 소포모어 증후군이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단 두 장의 앨범만으로 그 존재감과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버린 이 영향력을 어떻게 과소평가할 수가 있을까.

여기에는 전면에 나선 Beth Gibbons의 목소리가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고 있고, 제3의 멤버로 자리 잡고 있는 재즈풍의 기타리스트 Adrian Utley 아드리안 어틀리가 세심하게 연주해 내는 사운드도 있지만.

사실 진정한 공로는 집착에 가까운 소리 탐구쟁이 Geoff Barrow 제프 베로우가 묵묵히 뒤에서 만들어 낸 음악 풍경에 있다.

세상의 화려한 무대에 너무 나서지도 않지만, 묵묵히 세 명이서 각자의 역할 내에서 만들어 낸 아름다운 미학.


여기 소개할 수 있는 수많은 곡 중에서  2집 [Portishead]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Western Eyes>를 골라 놓았다.

능청맞게 영화에서 샘플링했다는 가상의 가설을 제시하고 마지막에 충격적인 반전의 미학을 선사해 주는 이 곡은 개인적인 취향을 적극 반영했을 때 반드시 소개하고 싶은 곡이 된다.   


이렇게 두 번이나 광풍을 몰고 온 경우라면 청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정말 해바라기가 된다.

이 거대한 감동을 새롭게 느끼고 싶어 이젠 무조건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소위 닥치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게 된 시간이 10년이 지나갔다.


그게 사실 말이 안 된다.

제 아무리 콩깍지가 씌어도 3년을 안 간다고 하는데 10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어떻게 한 장소에 하루도 빠짐없이 동일한 시간에 기다리는 순애보를 할 수 있겠는가.

10년이 지나도록 작품이 안 나왔다면 보통 백이면 백 결국 끼역끼역 우여곡절로 내어 놓고는 개차반을 선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가의 에너지가 고갈이 되어 나오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안에는 우물이 말라버렸는데 그래도 주위 기대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안 나오는 것 쥐어 짜내 나오는 것들의 찌꺼기들.

그러나 우리는 앨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을 정말 곧이곧대로 믿었다. 고민에 고민을 하며 앨범을 다듬고 있다는 말을 믿었다.

그들이 허투루 작품을 내어 놓는 이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10년이 지난 2008년 P라는 심벌에 엮은 [Third]라는 단순한 이름의 3집이 발매되었다.


감동했다.

소포모어, 3의 저주, 베이퍼웨어 다 필요 없다.  

기다린 만큼 딱 그만큼 보답해서 앨범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앨범은 소리의 탐구를 더욱더 극도로 밀어붙여서 제시한다. 1집과 2집의 풍경과는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는 싹 갈아엎은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Portishead의 아이덴티티가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두 번째 곡 <Hunter> 같은 한곡 정도가 2집의 잔상을 일부 가지고 회상을 종용하는 정도.

그러나 우리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오히려 1집 같은, 2집 같은 곡을 동어 반복으로 내었을 때 우리가 그렇게 감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Geoff Barrow 는 이제 정형화된 악기만을 가지고 연주를 한 것이 아니라 ‘소리’라는 화두 자체를 가지고 음악을 제시하였다.

소리가 음악이 되는 아름다운 경험. 그것을 제대로 실현해 낸 생채기의 흔적들.

얼마나 많은 고민이 들어갈 때 이렇게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까, 10년의 시간은 그들에게 얼마나 지난한 창작의 시간이었을까.

왜 10년이 지난 연후에야 나올 수가 있었을까, 그 이유를 대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순간.

다소 공격적이고 단순한 리듬, 건조한 사운드에 일부는 거부감을 느낀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진지하게 해바라기를 했던 이들은 두 눈을 해 질 녘의 노을 위로 포개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한 때 짝사랑했던 상대가 있었다.

현실에서 그 따위 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외사랑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랑이었기에 기다림이 가끔씩은 외롭기도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먼 길을 돌아 돌아서 만나게 된 역광의 실루엣.

천천히 내민 손과 따뜻한 미소.  



다녀왔습니다.!




Portishead [Portishead] 1997년 <Western Eyes>

https://youtu.be/tz-QNii79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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