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ff Jung May 02. 2023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나는.

Joe Pass 조 패스 [Montreux '77]

반반한 대머리에 편안하게 기른 콧수염, 푸근한 미소, 사람 좋은 어투로 말을 건네는 옆집 아저씨의 이미지.

그렇지만 기타를 한 대 손에 잡고 홀로 무대에 서면 수 천명 관객을 숨죽이고 집중하게 만드는 에너지의 초절기교 재즈 기타리스트.

Joe Pass 조 패스를 떠올릴 때면 이 반대의 두 이미지가 함께 연상이 된다.

그의 기타 사운드 또한 인상과 같이 푸근하게 다가오게 되는데 이는 음색에서 풍기는 뭉툭한 거칠음 때문일 것이고 나는 특히 이 면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핑거링으로 기타를 튕길 때 나타날 수 있는 사운드로 정의할 수 있으되 그가 전해주는 기타 사운드는 유독 날카롭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재즈가 한창 무르익던 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괴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과 함께 Joe Pass 또한 함께 엮어야 하지 않을까.

마약과 감옥살이, 재활의 기간으로 15년간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 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깎이로 재즈기타의 역사에 다시 선다는 것은 나 같은 일반인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들다. 

공백 기간이 그의 커리어를 녹슬게 하지 않을 만큼 연주실력이 뛰어났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겠지만.

다시 재즈 무대에 등장한 후 그는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우리가 익히 아는 Ella Fitzgerald엘라 피츠제럴드 라든가, Duke Ellington 듀크 엘링턴, Oscar Peterson 오스카 피터슨 등과의 연주와 앨범들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Joe Pass를 거론할 때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솔로 기타 연주 앨범들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내가 그의 작품을 읽어온 발자취도 그러하다.


어느 날 듣게 되었던 [Montreux ‘77] 라이브 앨범을 시작으로 그가 그 긴 시간 동안 아무도 없는 솔로잉 무대에서 수많은 레퍼토리를 아무 세션의 도움 없이 온전히 기타 한 대로 풀어나가는 모습에 반했던 것이다.

마치 여러 사람이 연주를 하듯, 워킹 베이스를 뜯어 가며 리듬과 멜로디를 동시에 연주하고 다이나믹한 프레이즈를 선사하는데 기교 면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은 사족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핀 조명으로 집중된 그의 무대를 듣고 있자면 자연히 그의 주변으로 물처럼 흐르는 시간에 동화된다.

즉,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타임 키핑이 없기 때문에 그의 연주 자체가 시간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고, 그 속에서 유영하는 느낌이 꽤 매력적이다.

[Montreux ‘77]이 40분 남짓인데 플레이해 놓자면 그냥 휭 지나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연주가 끝났을 무렵 고개를 들어보면 시간도 그렇게 뭉텅이로 자른 후 도약된 시각을 제시하고 있으니.

...Joe Pass를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걸작 앨범이라고 자부한다. 


이후 하나씩 찾아 듣게 된 그가 낸 일련의 솔로잉 앨범들이 [Virtuoso 거장]라는 나름 자신감을 피력한 제목을 선택한 것도 당연히 지지할 만하다.

한 장의 라이브 솔로잉 앨범으로 시작된 여정은 또 다른 솔로잉 스튜디오 앨범들, 그리고 하나씩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연 앨범을 순차적으로 들으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게 만들었다.

그 숲은 참 기분 좋은 산책이었는데 앨범들이 기복이 별로 없이 모두가 뛰어난 연주들로 가득했고 협연에서 또한 부드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엄청난 핑거링을 구사하는 데도 불구하고 반대급부의 느슨함이 존재한다.


[Montreux ‘77]은 아쉽게도 인터넷상에서 쉽게 링크를 확인할 수 없다. 

사실 있어도 권유하기는 그러할 것이다. 곡들이 다 연결되어 하나의 라이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 곡만을 빼기도 저어하다.

대신, 그의 세계로 유혹할 빛나는 협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유명한 클래식인 <come rain or come shine>을 베이스와 드럼 트리오로 풀어낸 라이브를 선정했는데, 처음 Joe Pass의 솔로로 시작해서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3분이 지날 무렵 베이스와 드럼이 불현듯 천천히 동행을 하는 그 지점의 전율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한다.

처음 들었을 당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무공을 숨긴 채 푸근한 미소로 안부를 전하는 쌀가게 아저씨

갑자기 시간을 왜곡하는 초식을 시전 하니 순간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이내 아저씨가 만들어 놓은 이지러진 공간에서 왠지 편안하게 두 발 뻗고 쉬게 된다.


Joe Pass [Resonance] 1974년 <come rain or come shine>

https://youtu.be/bkhTd-GiQJ4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했던 짝사랑,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