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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y 07. 2023

아! 대한민국   어, 대한민국

어떤날 [2집] <취중독백 醉中獨白>

우리에게는 온 동네 방방곡곡 울려 퍼졌던 친숙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있고,  헌법소원으로 승리하여 공윤 사전심의 철폐의 주역이 되신 정태춘 아저씨의 <아, 대한민국>이 있다.

완벽한 대척점에서 섬세한 긴장을 전해주는 이 두 가지 음악에 더하여 본 지면에서는 중간지점에 있는 소시민이 전하는 또 다른 대한민국을 얘기해 보면 어떨까 한다.


‘어떤날’

그들의 앨범 두 장은 숨죽인 빛으로 눈부시게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수많은 인터뷰에서 진한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를 했었으니까.

편견으로 음악을 듣는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 보라면 1집의 경우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나온 음악 중 최고의 앨범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음악 자체로서 그러하고, 조동익/이병우 두 멤버가 보인 정서의 깊이에 의해 그러하다.

이 듀오가 전해 주는 음악은 언젠가는 듣게 될 ‘어떤날’이기 때문에 언제든 접해도 깊은 울림을 주겠지만, 특히나 건네주는 친구의 쪽지 하나에도 설레이던 10대, 20대 때 이들을 접한 수많은 누군가에게는 유년시절 거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어떤날’ 2집은 고요하게 빛나는 1집 [1960.1965] 이 나온 3년 후 1989년에 발매되었다.

1집의 반향과 그 빛이 너무 찬란하여 상대적인 주목을 덜 받았을 뿐 또 하나의 진정성을 보인 작품이다.

1집이 수줍은 듯 잔잔한 목소리로 숨 막히는 아름다운 정서의 교감을 보였다면 2집은 1집 발매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단계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 성장했을 그들의 앞서 나간 시선을 배경으로 한다.         

여러 유명 연주인들이 함께 하기도 했고 편곡 자체가 확실히 세련된 가지수를 더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으되, 결국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는 일관되다.  

이는 이병우와 조동익이 주거니 받거니 곡을 만들어 함께 연주하고, 연필로 눌러쓴 가사를 정돈하곤 각자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세공 작업들이 가감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무나 좋아하던 Pat metheny 팻 메스니를 대입해 보건대 1집이 <Are you going with me?> 라면, 2집은 <Last train home> 같다고 하면 적절할지.

음악과 함께 곱씹게 되는 가사가 전해 주는 이야기, 그리고 이를 대변해 주는 두 사람의 목소리 또한 앨범을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거진 엇비슷한 의식주로 나는 만족하더군’

‘아무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저만치 달아나는 시간의 꼬릴 잡으려 허둥대는 아침의 뒷모습’

‘난지도의 야릇한 향기가 어울린’

‘나는 그만 어느 봄날 아지랑이’

‘눌쳐진 내 어깨를 소리 없이 감싸와 주던 하얀 눈’

‘오늘따라 창밖엔 아침이 더디 오네’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



그런 2집에도 홀연히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정서가 있다.

마치 한두 가지의 언어와 이분법으로 고정되고 싶지 않다는 듯 일면 처음에는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이 A면의 마지막에 조용하게 숨어서 1부를 마무리한다.

<취중독백> 이라 읽고 <醉中獨白> 이라 쓴다.

어떤 날 거나하게 술 한잔 한 아저씨가 서울 시린 밤공기를 가르며 자조 섞인 반어법으로 뇌까리는 알코올 냄새 진하게 풍기는 음악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거짓말이다.

아저씨는 술이 취해도 ‘어떤날’ 처럼 취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세 가지 버전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가지게 되었다.

1983년부터 정수라가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떠 있고, 강물에는 유람선이 떠 있는 은혜로운 대한민국을 부르는 와중에, 1989년에는 ‘어떤날’이 알코올의 힘을 빌려 정신없는 네온이 까만 밤을 수놓는 나의 고향 서울을 이야기하고, 1991년에는 정태춘 아저씨가 공권력에 정면으로 치받으며 거짓 민주, 자유가 넘쳐흐르는 이 땅을 우린 너무 질기게 참고 살아왔다고 토로하게 된다.


음악은 몇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오보에의 느릿한 전주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이후 시작되는 모놀로그 막을 천천히 여는 역할을 한다.

이병우의 여린 목소리가 피아노의 낮은 반주로 시작되는 첫 느린 술주정을 내어 놓는다.

이를 받은 오보에는 좀 더 진중한 아리랑 가락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장면을 전환할 준비를 한다.  

갑작스레 밝아지는 무대. 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로 등장한 진득한 워킹 베이스와 재즈 심벌이 만들어내는 어우러진 리듬은 무대를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3차까지 다녀오시는 동안 기어들어가던 우울함은 편의점의 싸구려 플라스틱 테라스에서 카스 캔에 새우깡으로 4차를 시작한다.

설쳐대는 자동차의 새벽 괴성이 공기를 가르는 가운데 좀 더 유쾌한 반어법이 펼쳐진다.

결국 슬픔과 웃음이 섞인 희극인처럼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고 자조적으로 푸념한 이후 재즈의 솔로잉은 시작되고 한껏 펼쳐진 난장은 페이드 아웃으로 마무리된다.

장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목소리와 가사의 풍경, 리듬의 고저는 그야말로 한 편의 짧은 소품을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게 음악 듣는 매력이 아닌가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것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1부의 여운은 다음 날 2부에서 또 다른 맑게 깬 정신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어떤날’의 작은 단면을 그려 보고 나니 성이 차질 않는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욕심꾸러기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날에는 ‘어떤날’ 1집 [1960, 1965]에 대해 얘기할 것이고, 어떤 날에는 조동익에 대해, 그 어떤 날에는 이병우에 대해 얘기를 할 것이다.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요것도 내 것 잔뜩 초콜릿을 쥐고서 또 하나를 더 쥐고자 하는 아이처럼 하나하나 얘기할 것이다.



어떤날 [2집] 1989년 <취중독백 醉中獨白>

https://youtu.be/CWfT2CuP8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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