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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y 14. 2023

우주로 날아가 버린 리듬

μ-Ziq [Lunatic Harness] <Midwinter Log>

EDM은 Electronic Dance Music의 약자로 춤을 추기 위한 비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춤하고 관계없는 삶을 살아서 과거에 EDM을 기꺼이 즐겼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 같고 사실 IDM Intelligent Dance Music을 보다 즐거워했다.

Intelligent 그러니까 무언가 고차원적인 것을 탐구하는 것 같은데, IDM은 골방에 처박혀서 듣는 댄스 음악이고, EDM은 고출력의 사운드로 몸으로 듣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만 어린 시절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EDM은 가벼운 것이고, 나는 좀 더 심미적인 것을 탐구할 거야 같은 개똥 젠체 같은 것이.

그런 편견을 깨버리게 된 하나의 경험이 있어 작게 얘기하며 시작하고 싶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2년 여를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항상 어딘가를 가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어디에 있는지, 몇 개가 있는지.

끊김 없는 달리기 루트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

재즈 카페가 있는지, 못해도 공연장이 있는지, 못해도 클럽이라도 있는지

개인의 취향은 누가 만들어 주지도 않고, 자기 자신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양식을 속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만들기 위한 long list가 정해지면 그것을 하나하나 가 보고 판단하고 정리하며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루트를 만들어 보게 된다.  


그곳은 마침 관광지로도 이름을 알리는 곳이어서 그런지 재즈 카페, 공연장 정도는 없더라도 나이트클럽은 무지 많았다. 검색해 본 결과 12군데가 나온 것이다.

그다음 주말부터 한 군데씩 가보기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시작한 나이트클럽 돌이는 한참을 진행하였는데 참 다행인 건 나이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즉 예를 들어 강남이나 홍대에서는 소위 ‘물’이라는 명제 때문에 서른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아마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로 선 자체를 넘어설 수가 없을 것이다.

클럽을 돌며 기대한 것은 사실 한 가지였다.

DJ들이 디제잉을 하는 중간중간 혹시 실제 밴드가 공연을 하는 클럽이 있는가 하는 기대였다.

결국 돌고 돌아 최종 두 군데로 정착이 되었는데 이는 밴드들의 공연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고, 빠지는 사운드 시스템도 좋았으며, 중간중간 DJ들의 음악도 풍성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는 주말마다 죽돌이처럼 다녔다. 오늘은 저기 가고, 다음은 여기 가고 번갈아 가며.

이미 얼굴이 다 알려져서 들어가며 ‘나 왔어’, ‘어 왔냐’ 라는 눈인사로 반가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골의 자격.

별로 많지도 않은 관객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열렬히 음악에 호응하는 우리들.  

만약 인간이 평생 동안 클럽에 갔다 와야 하는 할당량이 있다면 그 2년의 시간 동안 다 채웠을 것이다.



클럽 돌이를 하면서 EDM의 전형적인 쿵짝쿵짝만이 나오지는 않았다.

댄스 클럽임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DJ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Drum N Bass 드럼앤베이스를 시전 한다거나, 몽환적인 음악을 위주로 전해 주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런 음악들에도 몸으로 표현하는 춤에는 이질감이 없었다.

그럴 때면 이 IDM이란, EDM이란 뭐람. 둘의 경계란 게 어떻게 보면 흐릴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 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이미 둘은 같은 친구인데 내가 편 가르기를 했을 뿐인 걸.


더군다나 사운드가 귀가 아닌 열린 가슴으로 바로 치대어 오는 음압의 향연 속에 있다 보면 EDM의 음악 속에서도 IDM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소리 자체가 표현해 주는 무정형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어디가 더 무겁고 가볍고, 어떤 것이 더 진지하고 덜 진지하고 그런 것은 나의 편견임을 깨닫게 된 후 EDM을 바라보는 시각은 좀 더 달라졌다.

일렉트로닉을 바라보는 시선을 열린 가슴으로 해체시켜 준 마구마구 클럽 돌이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여러 일렉트로닉 장르 중에 오늘 얘기하고 싶은 Drum N Bass라는 장르도 IDM이든 EDM이든 사용하는 데는 경계가 없다. 오히려 처음 태동 때에는 당연히 댄스 뮤직의 하위영역으로 시작되었고 이것이 수많은 갈래 치기로 뻗어나가 IDM에도 차용이 되었을 뿐.

수 세기의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열거할 수 있는 굵직한 사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Drum N Bass 혹은 Jungle 정글의 탄생 또한 이 대열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듬은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으로 볼 수 있겠지만 Drum N Bass가 보여주는 생경한 리듬 플레이는 음악 전체를 표현하는 아우라의 선두에서 깃발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표현하는 인간의 사고 영역을 한 차원 확장시켜 주었다고 극찬하고 싶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며 그 하위 장르만 열댓 가지가 넘어가니 그 궤적을 따라가기에 벅차기도 하지만 그 장르가 풍기는 에너지는 항상 미소를 슬며시 흐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IDM의 몇몇 음악가들은 Drum N Bass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며 한 술 더 떠 저 우주로 보내 버렸다.

너무도 분절이 심하고 변칙이 심해 이를 Drill N Bass 드릴앤베이스 란 장르로까지 만들게 된다. Drill 이란 어휘 그대로 드릴링을 하는 듯한 소리가 연상될 정도로 박자가 쪼개지고 리듬이 표현영역으로 확대된 예이다.

소개하고 싶은 영국의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μ-Ziq (u-Ziq) 뮤직은 골방에서 듣기 좋은 대표적인 Drum N Bass (Drill N Bass) 음악을 펼쳤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함께 있으면서 각자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이 연상된다.

수많은 변칙으로 빠르게 넘나드는 리듬의 향연이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그 위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신디사이저 음이 그것이다.

그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커플인데도 불구하고 꽤 잘 살아가고 있고, 둘이 융합하여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의 세상은 제3의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여기에 그의 장기인 감성 한 스푼을 넣어 주니 맛있는 성찬이 준비된다.



시린 찬 바람이 살을 에이는 겨울밤, 시간은 더디게만 간다.

때로는 복잡하게 꼬이기만 하는 일들,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고단한 한숨과 마주하는 시간.

시도 때도 없이 도처에 그런 함정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밤, 이제는 삶을 직시하고 그 냉기 가득한 바람이 온몸으로 나를 관통하게 하고 싶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잔뜩 부르튼 손으로 눈 속을 헤집을 때 문득 다가올 봄날의 순간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μ-Ziq [Lunatic Harness] 1997년 <Midwinter Log>

https://youtu.be/8OFhnaBiX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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