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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y 17. 2023

딸아 노래하렴, 나는 피아노 칠께

Ryuichi Sakamoto <The other side of Love

아빠와 아들은 모르겠다.

아빠와 딸은 좀 알 것 같다.

집안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는’의 단서가 붙겠지만 말이다.

흔히들 얘기하듯이 중학생이 훨씬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사이가 되지는 않더라도 자아가 엄청나게 커져 나가는 딸과 아빠의 관계는 분명 과거의 하하 호호와는 다른 전개방식을 지닐 것이다.

처음에 어딘가로부터 시작된 작은 갭은 천천히 간극을 넓혀 나갈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이는 아이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고, 그 세계에는 친구들과 히어로들이 면면을 차지할 테니.

아빠는 분명 좋은 인간이겠지만 그뿐, 자신이 구축한 세계 바깥에 두려고 할 것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게 아니면 더 이상할 테니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게 서로를 위하며 살아오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함께 산책하고, 맛있는 파스타 먹고, 서점 가서 책 읽고, 마트 같이 가서 아이스크림 고르고, 사진 찍고, 배웅하고, 마중하고, 피아노 치고, 바라보고, 그림 그리고, 이상한 음악에 기겁하고.

지금까지의 고유한 시간들과,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 들어갈 터이지만 그것조차도 이해하고자 한다. 꺼져가는 불빛을 조금이라도 더 유예하기를 작은 마음으로 바랄 뿐.


딸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단편 촬영을 해 본 것도 기억난다. 동구밭 과수원길을 산책하다 즉석에서 생각난 시나리오를 가지고 컷을 분할하며 이리저리 찍어보고 말이다.

내가 배우가 되고 딸이 촬영감독 플러스 상대방 목소리가 되기도 하고, 딸이 배우가 되고 내가 고난이도 핸드헬드 기법을 무자비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가위손의 위노나 라이더가 흩뿌려지는 눈 속에서 방긋 펼쳐 웃는 슬로우 모션까지 오마주 하고는 서로 낄낄 웃고.

아이에게 편집과 자막 편집, 음악 삽입, 타이틀 올라가는 것까지 시켜서 주말 하루에 한 편의 단편을 만들었던 것인데 한 세편을 제작하였다.

좋은 경험이었다. 딸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는 것이 이렇게 깊은 즐거움을 줄지 몰랐다.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배우고, 가르쳐주는 과정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물론, 아이는 이제 그 초등학생 시절 비디오를 틀려고 하면 과거의 연기하는 자신을 보기 싫어한다. 뭐, 청소년인 것이다.

하물며 이제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세상 바깥으로 나갈 즈음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계기는 갈수록 줄어들 것 같다.

무언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더 이상 친구가 주는 투명한 울림을 가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Ryuichi Sakamoto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느 날 Sister M 시스터 엠 이라는 어느 여 가수와 함께 낸 작은 싱글은 소중하다.

맑고 투명한 멜로디와 작은 호소력을 머금은 목소리가 주는 풍경은 흡사 이와이 슌지의 오겡끼 데스까가 연상된다.

훗날 밝히게 되는데 Sister M은 다름 아닌 그의 딸 Miu Sakamoto 미우 사카모토 이다.

그가 다른 여가수와 같이 만들려고 한 곡인데, 당시 16살인 딸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처음 듣고 함께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작곡한 곡을 그가 피아노 치고 딸은 이어받아 노래 부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절했다.

담담하게 펼쳐지는 선율 속에 약간은 서투르지만 진심이 서려 있는 딸의 목소리가 힘주어 펼쳐진다.

어느새 성장한 딸과 아빠와의 투명한 울림이 사라졌다면, 아빠의 제안을 당차게 거절했다면 우린 이 좋은 어우러짐을 지금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왠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빠와 딸과의 소통, 이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걸.


나는 잘 모르겠다 그의 속 마음을, 그렇지만 마치…

아빠가 조심스레 딸에게 힘주어 당부하고자 했던 말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실어 간접적으로 들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딸은 사랑의 the other side를 계속 찾고 있다고 말한다.

아빠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냥 찾게 내버려 둔다.

그렇지만 사랑의 본질은 있다고, 있을 것이라고 거기까지 운을 떼어 둔다. 아마 그 정도가 아빠의 본분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나는 여기서 피아노를 칠께, 너는 노래하렴.

나는 여기서 계속 피아노를 칠께, 너는 나가서 사랑의 진정한 단면을 찾아보렴.

너는 노래하렴.

너는 거기서 그렇게 노래하렴…



안녕.


Ryuichi Sakamoto <The other side of Love> 1997년

https://youtu.be/vuHtgj-Z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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