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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Jul 13. 2023

나팔바지를 입은 청춘

박주원 [집시의 시간] <청춘>

박주원이 ‘집시 기타’란 이정표를 세우고 대외 활동을 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의 걸음은 단순한 뮤지션 행보 이상의 의미가 있음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거의 전후무후한 플라멩코 스타일의 기타를 무기로, 연주로만 이루어진 앨범으로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기타가 클래식계에서는 나름의 잠재된 시장성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듣도 보도 못한 컨셉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 풍의 기타 스타일을 차용은 하되 적확한 연주 실력과 한국 정서에 맞는 작곡 능력으로 꽤나 멋진 앨범들을 만들어 내어 왔다. 그리고 대중들은 거대한 환영은 아니었더라도 나름의 팬층을 구축하여 그의 행보에 화답해 왔다고 생각한다.

플라멩고 기타 연주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감 넘치는 핑거링, 정확한 음과 음 사이의 긴장감, 스탭 한번 밟고 싶은 감질맛, 슬픔을 간직한 나긋한 플레이로부터 탄성을 불어 일으키는 속주까지 겸비한 명확한 실력이 기본이 될 것이다.

이런 맛을 제대로 저격한 결과물인 1집 [집시의 시간] 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이런 류의 기타 음악이야 해외에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가뜩이나 하드한 플라멩코풍 연주를 명확한 시선을 가지고 연주해 내는 와중에 한국형 고명을 얹고 자신의 살아온 여백을 투명하게 반영한 곡들 하나하나는 ‘나와서 소중하다’란 찬사를 들을 만했다.

작지 않은 시간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2집, 3집, 4집을 거쳐가며 그는 끊임없는 고민을 앨범에 반영을 하였는데, 이는 그가 써 내려간 곡들에 각인된 나이테를 살펴보면 잘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런 기타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이 환영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서 뮤지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과연 이런 음악들을 좋아는 하는 걸까...

쉽지 않은 음악을 하는 만큼 결코 평탄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객원 보컬을 통해 연주 음악을 보다 다채롭게 표현해 보기도 하였으며, 여러 아티스트와 협연하며 확장을 해 본다거나, 때로는 TV에서 불러주면 여기저기 감초처럼 들어가서 연주인으로의 실력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기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보는 느리되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컨셉 앨범 [집시 시네마]로 이름 짓고 발매한 영화 음악과의 합일은 좀 상업적으로 간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자기의 음악을 들려주는 입구를 넓힐까 고민하는 부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도 뮤지션인데 <월량대표아적심> 같은 곡을 콜라보하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들려졌으면 바랐을 것이다.


모든 앨범들이 틀어 놓으면 수작의 곡들로 가득한데 소개하고 싶은 두 가지 풍경이 있다.



첫 번째는 1집 [집시의 시간] 에 담겨 있는 <청춘>이 그러하다.

치렁치렁 장발에 나팔바지, 그리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30년 전 아버지의 옛 사진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앞서 얘기한 이국의 기타 주법을 가지고 오되 한국적인, 자신만의 시선을 그려 연주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멋진 곡이다.

그래,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도 잊혀지지 않을 ‘아빠도 청춘’이 있지. 아빠의 청춘이 불리웠던 1960년대의 원더풀 원더풀이, 2000년대 더욱 유쾌한 시선으로 지난 시간을 예찬하고 경배한다.

자식으로써 혹은 그가 기타리스트가 되는데 일조를 했을 감사를 담아, 멋진 아빠의 리즈 시절을 이다지도 멋들어지고 달큰하게 그려 내었으니 명곡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또 하나는 3집 [캡틴]에 존재하는 <승리의 티키타카>를 꼭 언급하고 싶다.

앨범 제목의 캡틴이 박지성을 지칭하듯이 그는 유럽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데 본 곡 또한 그 티키타카를 감안했을 것이다. 3집은 마치 세상에 좀 더 자신감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면모도 보인다.

이 곡은 처음들을 때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입이 턱에 걸려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음악 잘 듣다가 갑자기 웃는 나를 보고 드디어 애가 맛이 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본 곡의 말미에 등장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맘껏 표출하는 일렉기타 에너지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한데 그는 집시 기타 앨범으로 2009년 세상에 나오기 전에 2001년 시리우스라는 Rock 밴드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전에도 그의 일렉 기타 실력은 현장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통기타 하나를 들고 플라멩코 연주만을 해 왔던 그가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뿔이 났던 것일까? “이 씨, 아 나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하며 세상을 향해 치기를 발사하는 것 같은 그런 상상도 하게 되는데 에너지가 그냥 미쳐 돌아간다.

라이트 핸드에 와우 걸고 우와아아아악 폭발하며 발산해 가는 아우트로는 그의 씩씩거리는 마음과 매칭이 되어 너무나 큰 웃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https://youtu.be/iTJjtGndMFA

라이브 연주에서 이를 직접 접한 일이 있었는데, 앉아서 튕기고 있던 기타를 갑자기 홀연히 내려놓고는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심히 뒤에 있는 일렉 기타를 메더니, 이펙터를 척하니 밟고는 그냥 한 합에 써 내려갔던 미친 에너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혹은 조무라기들이 티키타카 하고 있는 황야에 홀연히 등장한 초월자가 그냥 주변을 다 싸그리 발라버리는 만화 같은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폭산적 윤병주 아저씨에 이어 오랜만이다.)


독창성, 촌철살인, 유머가 함께하는 박주원의 음악 세계.

이렇게 힘 있는 핑거링을 보면 그가 가는 길에 확신이 보인다. 어떤 곡을 들어보더라도 나쁘지 않은 즐거움이 함께할 것이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게도 다가오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최백호 아저씨의 목소리처럼 진중하게 말이다.



박주원 [집시의 시간] 2009년 <청춘>

https://youtu.be/_U9AlZBe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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