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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Jul 22. 2023

쓸데없는 수집가

DJ Shadow <Midnight in a Perfect World>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서 우리의 청년 유지태는 바람빛 가득한 벌판에서 포슬포슬한 데드캣을 씌운 마이크를 좌우에 세워 놓고는 봄날이 가는 소리를 채집한다.

소리만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던 것 같고 그 미소에서 한 뼘 성장하는 자신을 느낀다.
 채집한 소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그는 수집가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에선 우리의 청년 아사노 타다노부가 멋진 비니를 쓴 채로 지하철의 소리를 물끄러미 채집한다.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묵묵히 지하철이 다가오고 떠나는 소리,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풍경을 소리 화한다.

중고 서점을 운영하는 그의 또 다른 자아인가 보다. 그 채집된 소리를 가지고 도시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그는 수집가이다.


어릴 때부터 힙합에 경도된 캘리포니아 청년 Joshua Davis 죠슈아 데이비스는 힙합이 단순히 드럼 브레이크를 샘플링하고 반복하는 이상일 것으로 이해하였다.

일찌감치 학교를 중퇴한 후 클럽에서의 DJ, 라디오 방송국의 DJ를 하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는 한편,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레어 바이닐 샵에서 낡은 소리들을 탐구하게 된다.

텐테이블 한 쌍과, Yamaha MT100 4채널 카세트 레코더, 그리고 그의 핵심 병기 Akai MPC60 샘플러를 가지게 된 순간 그의 채집 욕구는 가속화되었다.

옛 바이닐이 가득한 창고에서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소리를 득템하기 위해 새벽이 온 줄도 모르고 레코드에서 컷 하고 녹음하고 행간을 잡아나가며 그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나간다.


그 노력은 마침내 1996년 역사적인 앨범의 발매로 이어지게 되는데.

앨범 제목이 [Endtroducing..…]이라 이름 붙여진다. 힙합의 비트를 감상용으로 집요하게 끌어올린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Introducing이 아닌 Endtroducing이라는 건, 자신이 처음이자 끝이다라는 자부심이었을까?

앨범은 음악 전체가 100% 순도의 샘플링으로 구성되었다.

백여 가지 이상의 샘플링들이 음악을 만드는 작은 구성 요소로 기능하며 힙합 오페라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게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산물은 아니다.

거기에는 지독하게 파고들었던 수집가로서의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아마 그에게는 먼지를 잔뜩 품은 차고 넘치는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곳에서 컷 하고 페이스트 한 샘플링 유닛들은 하이햇 NO.X, 킥 NO.X, 심벌 NO.X, 여성 허밍 NO.X로 불리며 어두운 아카이브에서 잠들어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몇 년의 시간이 차고 넘쳤을 때 결과물은 우리에게 이렇게 홀연히 다가오게 된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샘플링 음악에 대해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왠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 같은, 남이 노력한 산물을 몇 개 얼기설기 붙여서는 뮤지션이라고 얘기하는 게 그렇지 않나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DJ Shadow 디제이 섀도우의 [Endtroducing…..] 앨범을 듣고 그 생각은 말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소리의 질감, 느린 힙합, 성긴 구성, 훅, 스크레치, 재즈에서 메탈, 올드 팝에서, 랩, 가곡 어느 곳 걸리는 것 없이 소리 자체만으로 쌓아 올린 시간들.

그리고 이런 예술적인 다양한 시도는 사실 미술계에서도 ‘콜라주’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 유명한 피카소가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대단한 역사까지 가지고 말이다. (장광현 미술 선생님이 https://brunch.co.kr/@bcf2a80175674a1/33 계시니 나는 도망가면 되겠다.)

그 정점의 결과물을 보여 준 <Midnight in a perfect world>는 만인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그루브와 색채가 가득한데, 그 깊이는 확실히 어느 누군가의 완벽한 새벽 시간을 찬양하는데 낮은 조도로 흘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하듯이 나는 기본적으로 수집가를 좋아한다.

수집가는 밥 먹는데 쓸데없는 것을 채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은 꽤나 모이게 되면 어느 순간 산을 이루게 된다.

쓸모없음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세상이 이렇게 쓸모없는 투성이라니 고마움이 가득할 뿐이다.

혹은, 글을 쓰는 이는 단어들을 채집한다. 지나가는 단상들을 채집해서는 메모장에 얼른 적어 넣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바람을 채집하고, 꽃밭 속에 밟힌 작은 풀꽃을 채집하고, 아스팔트의 금 간 틈을 채집한다.

그리고 그 채집한 찰나들이 너무 넘쳐서 감당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하나씩 내어 놓게 된다.

우린 그 ‘브런치’란 성찬을 함께 즐기며 서로가 가진 쓸데없음을 알아간다.


나는 그 쓸데없는 것을 기잎게 좋아할 자신이 있다.



DJ Shadow [Endtroducing…..] 1996년 <Midnight in a perfect world>

https://youtu.be/InFbBlpDTfQ








<Midnight in a perfect world>는 메인으로 8가지 정도의 샘플링이 사용되었습니다.


1.     <The human abstract> David Axelrod  - 5:01 피아노 메인 테마 https://youtu.be/Ldi3d1NtNhc

2.     <The Madness Subsides> Pekka Pohjola - 펜더 로즈 시작 메인 테마와 마지막 기타 애드립의 어우러짐  https://youtu.be/TYGaJr7G3Dc

3.     <Sower of seeds> Baraka - 여성 메인 테마 가사 '

"I don't love you

Heading to garden of love, ah
 Life come seeking of love, of love”

https://youtu.be/4zFhsViLAjY

4.     <Biography> Meredith Monk  - 피아노 훅

https://youtu.be/hF0zdkinPFI

5.     <Outta State> Akinyele  - 3:39 “Midnight” 단 한 단어 컷팅

https://youtu.be/PPeLOqijtko

6.     <Releasing Hypnotical Gases> Organized Konfusion  - 1:59 인트로 랩

“Insight, foresight, more sight The clock on the wall reads a quarter past midnight”

https://youtu.be/fjUW4WKjzdM

7.     <dolmen> Meredith Monk  - 0:07 첼로 연주, 1:32 아 후 여성 허밍,  11:41 첼로 연주

https://youtu.be/7su7d76LhWg

8.     <Life Cloud> Rotary Connection  3:11 메인 드러밍 컷

https://youtu.be/Ruj4K1L25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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