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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Sep 09. 2023

그녀의 어두움을 할퀴어 버릴 거야.

Massive Attack [Mezzanine]

그러니까 우리의 이름값에 가장 근접한 음악을 해 보고 싶어.


뭐야, 융단폭격이라도 해 보겠다는 거야? 어느 정점에서 남김없이 퍼부어버리는 폭탄 같은 매력인 건가?

사운드로 샤워를 하는 듯한 음악들이야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긴 하지.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피날레에서 장엄하게 수렴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라거나,

노이즈 락에서 뒤섞인 각종 소스가 흘러넘치는 향연도 볼만하지.

프리재즈의 모든 악기가 한꺼번에 끝 간 데 없이 불어 재끼는 난장은 또 어떻고.


그런데 과잉의 폭격보다는 사운드 자체의 힘으로 압도해 버리는 그런 거 말이야.

끝없이 무거운 중력으로 압살해 버리는 거지.

미쳤냐. 우리가 청자들하고 대거리하는 사이야?

그렇다는 거지. 무겁디 무거운 사운드를 한 아름 안게 해서 털썩 주저앉게 만드는 거지.

우리 일렉트로닉은 그런 것이 장점이잖아. 주파수와 결을 입맛대로 변형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음악이 느린 힙합과 음울한 공기를 담고 있다고 해도 쏠쏠한 매력이 있었잖아. 이번 3집은 그 한계를 가장 낮은 지점까지 몰아가 보고 싶어.

골방에 가지고 있는 재료들 중 질량이 실한 것들만을 골라서는 하나하나 공들여 매만져 볼 거야.

각각의 질감들이 소리의 쾌감으로 다가오게 하는 거지.

비슷한 뉘앙스로 지속되는 앨범이 가능하겠어? 그 피로도는 어떡하고.

그러니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섞겠다는 거지. 너는 무거움이 단 한 가지로 다가올 것 같애? 무도 있고 거도 있고 움도 있고, 무움도 있는데.

장난질은.

묵직한 드럼 비트, 베이스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조합해서 리듬을 엮어버리면 무한대의 조합이 나오지, 스네어, 심벌, 탐, 베이스, 퍼커션, 악세사리, 허밍 어떤 것을 골라서 가공해야 할지 한숨만 나오기는 하다.

세기말 안에 내가 골방에서 나오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내게 큰 그림이 왔어.


중저음을 이렇게 부각해서는 부우한 소리가 되어 쉽게 피로해져.

내가 지금 밤새고 있는 게 그 지점이야, 나도 아니까 말 시키지 마.

끝없이 어둡고 육중하지만 듣기에 답답하지 않은 사운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연락했던 친구들 언제 보컬 녹음하러 오지?

내일이야. 그런데 그런 무거운 사운드에 미성의 톤이 어울리기나 할까?

너 잊은 거야? 우리 이전 앨범들에서도 제대로 뽑아 줬잖아. 사라나 엘리자베쓰 목소리는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해.

잘 봐. 이 바닥을 기는 굵직한 사운드 스케이프에 그녀의 목소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내 장담하는데, 오디오파일 친구들 내 앨범 가지고 반드시 중저역 테스트 한다.

저음과 중저음, 깔끔하게 떨어지는 음 간의 균형을 확인하는데 이것만큼 좋은 것 없을 걸?

데모 버전인데 들어봐. 제일 첫번째 트랙으로 배치할 곡이야. 제목은 <Angel>로 정했어.

사실 농담이지. 숨겨진 은유가 있는 다크 엔젤이야. 손잡고 나의 세계로 안내할 송곳니가 있는 가이드라고 할까?

악기 하나하나를 만지는 데 정말 신경 많이 썼다고. 대문이 그래도 이뻐야 문을 두드릴 것 아니냐.

네가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뭐 이런 젠체하는 것 좀 넣어볼까?

클리셰다. 고마.


됐어, 나도 더 이상은 못한다.

우리가 제대로 한 게 맞긴 한 거야? 함께 한 친구마저 더 이상 이런 음악 따윈 못하겠다고 가버렸잖아.

이건 숲의 풍경 같은 거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이 일으킬 거대한 폭풍의 전조 같은 것.

내 친구가 만들어 준 이 재킷을 봐. 황제대왕길앞잡이라는 놈을 절묘하게 컷했어. 멋 모르고 손대었다간 확 할퀼 것 같은 육중함이 느껴지지 않아? 일부러 색깔 쫙 빼고 무채색으로 편집했다니까.

작명을 [Mezzanine]으로 했어.

뭔 계단 같은 소리야.

뭐, 소리가 층층이 쌓인 질감 같은 것, 낮게 임하는 사운드를 느껴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점층법?

여러 이미지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이 뒤섞인 양념들이 하나의 굵고 곧은 선을 보여준다면 나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겠어.

각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선명한 줄기 같은 거.


마지막을 에필로그로 장식하기 전에 한 시절을 각인시키고 싶어.

조용히 세상을 열어서는 별이 빛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거야.

가장 무거운 사운드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가자. 이제.


Massive Attack 매시브 어택 [Mezzanine] 1998년 <Group Four>

https://youtu.be/9xTR3jgpoNo?si=QMEt4QvB8jbvW5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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