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a88 지옥의 외인부대 So long my love
이 글은 세대와도 관련이 있고 남녀와도 관련이 있어 자칫 추억에 마구 젖어 혼자서 지껄일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자 할 때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겠다. 본 브런치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음악들이 범용적으로 양식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한 개인의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단 한 명에게라도 쓸모가 있으면 그 정도로 족할 것이다.
나중에 흐릿한 기억을 찾아가며 알아본 바로는 중학교 3학년 1989년 현충일이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공휴일날 우연히 틀어 놓은 TV에서 생뚱맞게 튀어나온 애니메이션. 한국에선 [지옥의 외인부대]라는 휘황찬란한 제목을 들고 나온 [Area88] 에어리어88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엔딩송에 대한 찬가이다.
애니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던 때이니 불을 켜고 봤겠지만, 이게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실제 현존하는 전투기들이 기가 막히게 멋들어진 형태로 사방팔방에서 날라다니는데 dogfighting이 화면 전체에 현란하게 펼쳐지고, 위기 천만한 속도감,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에너지, 사인드와인더의 궤적, 떨어지는 탄피 표현까지.
마징가, 그랜다이저, 실버호크, 마크로스의 세대이자 프라모델, 로봇에 열광하는 세대였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너무 충격적이었다. 즉, 그 수준이 상상 이상의 레벨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후 어떤 애니메이션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경지였고 결국 만인이 인정하는 전투기물의 전설이 되었다.
엄청난 고증을 거쳤을 것 같은 화면들, 왠지 실제 할 것 같은 중동지방의 아슬란 제국과 돈을 위해 고용된 용병 파일럿들, 80년대에 볼 수 있는 신파적인 스토리, 전쟁과 그 속의 인간성 상실, 그 속에서도 부여잡고 싶었던 사랑, 음모와 배신, 그리고 미안하지만 남자들은 더욱 느낄 수 있었던 싸나이의 의리까지 미친 듯이 몰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더욱 상실감을 느꼈던 것은 그 무서운 열린 결말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눈물짓게 만드는 의리를 보여주며 자발적으로 다시 돌아온 용병들은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모두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어 놓고는 갑자기 티비는 암전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광고가 나와서 그 순간 이게 뭐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던 기억.
이게 끝이라고, 이게 끝이었다고? 내일 또 이어서 하나?...
...그래, 열린 결말이었던 것이다. 수습할 겨를은 전혀 없이 맞닥뜨린 충격의 강도는 대단했고.
다음날 교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모두가 나와 같았나 보다. '너 그거 봤냐?'가 인사였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봤냐 봤냐 서로 침을 튀기며 감상을 얘기하는데 교실은 난리도 아니었고, 이게 나만 느꼈던 문화 충격이 아니었구나 절감했었던 것이다.
이 [지옥의 외인부대]는 언젠가의 시간에 공중파에서 다시 방송이 된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인데, 그게 너무나 많은 요청이 들어와서 앙코르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일본문화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보고 싶어도 지금과 같이 손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을 테고, 그 갈증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방송사에 투서를 넣었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스무 살이 된 후 어느 날 [Area88]은 정식으로 DVD 발매가 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구입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보고 또 보아도 새롭다는 작품이 있듯이, 고전은 영원히 잊지 못할 발자취를 가진다.
지금 보면 일면 촌스러운 시나리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진심으로 직구였기에 그런 명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감정 하나하나가 화면 전환 때마다 느껴지고, 조금씩 전쟁 속에 변해가는 그의 모습, 그렇게 나가고 싶었던 바깥세상에서 다시금 느끼게 되는 쓸쓸함,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연인의 모습, 어느 곳으로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과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의 동료들에게 기수를 돌리는 마음까지.
그리고 각자의 마음속에 응어리 진 숙제를 남겨둔 열린 결말을 위해 기수를 돌린 후 뿌연 꼬리를 마지막으로 화면은 암전 되고..
잠시 후 검은 화면에 카자마 신과 사지를 함께 헤쳐나갔던 헬멧을 앞에 두고 자막이 올라간다.
그리고, 본 엔딩 송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3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우리를 들었다 놨다 울고 웃게 만들어 놓은 후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음악. <So long my love>
열린 결말의 충격도 잠시 잊고, 왜 그는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천천히 영화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게 되는 시간 동안 곁에서 토닥거리듯 안아주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그 속에 녹여 놓았던 수많은 눈물까지 해서 항상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알고 있다. 본 음악이 단순한 팝이 될 수 있음을. 이 음악은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마지막에 자리하였기에 비로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마음속에 짐을 가진 이 만이 이 음악에 울 수 있음을.
이런 지독히 편견이 가득한 음악 선곡이지만 이렇게 소개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우리 시대 소년들의 소중한 응어리임에, 이런 호들갑에 관심이 있든 없든 한 번은 드러내 보고 싶었다.
Area88 [OST] <So long my love>
음악이야기를 위한 글이고 과연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애니를 자막까지 해서 올려놓은 이들이 있어 참고로 연결을 해 놓는다.
ACT1 & II https://youtu.be/xdwi-4T70ig
ACT III https://youtu.be/Jdcgx3BR_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