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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Oct 12. 2023

비밥은 닥치라고 배웠습니다

카우보이 비밥 Cowboy Bebop <Green Bird>

"이 눈을 봐.

사고로 잃어버려서 한쪽은 내 게 아냐.

그때부터 난… 한쪽 눈으론 과거를 보고, 또 한쪽으론 현재를 봐.

깨어나지 않는 꿈을 꿀 작정이었는데 훗, 어느 순간 그만 깨고 말았어."


뭐, 자세 잡고 이렇게 뇌까리면 아가씨 꼬심바리 가능하지 않아?

어허이 이거 왜 이래.

아자씨. 자자, 가시죠. 쌍팔년대 정서 가지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1998년 26편의 옴니버스 작품으로 등장한 Cowboy Bebop [카우보이 비밥]은 말 그대로 혜성 같은 작품이었다. 세기가 꺾어지는 변곡점에서, 20세기 걸작 애니로 반드시 등재될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공교롭다.

80, 90년대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 작품을 거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여기에는 수많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빨아들일 다양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으면서도 이를 견인하는 곧은 빈티지 또한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카우보이란 단어로 시작하며 화려한 활극을 기대하게 하는가 하면, 바로 비밥이란 용어를 이어 붙인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하나의 공통적인 테마는 가지고 직진하되, 각 재즈 멤버들이 호각으로 불어 재끼는 프리 솔로잉 같은 연출은 에피소드에서 <Tank!> 마냥 종횡무진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비밥 멤버들의 구성 또한 이를 완벽하게 대변해 준다.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에너지도 뛰어나지만, 이들이 함께 인터플레이를 벌이는 협연에서 우리는 무한대로 젖어들 수 있다.

연인을 위해 한번 죽었던 삶을 다시 불태우려는 스파이크

매번 으름장을 놓지만 누군가를 항상 걱정하는 잔정 맨 제트

잃어버린 기억의 아픔과,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첩된 페이

미얀. 남자인 줄 알았던, 하는 짓도 매력도 연체인간 애드

감초처럼 급할 때 기지를 발휘해 주는 웰시코기 아인

이 Quartet 콰르텟이 보여주는 26장의 앨범이라, 쓸만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스파이크의 존재 이유였던 객원 여성보컬 줄리아,

그녀를 사랑했던 또 다른 연인이자 스파이크의 절친/원수 마일즈 비셔스까지 합세하여 라이브 쇼는 진행된다.

그 마지막이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이들은 모두가 슬픈 과거에 매여 있다. 다시 살아갈 발을 디딜 수 있을까.


Kanno Yoko 칸노 요코는 수많은 이종 짬뽕의 음악으로 애니메이션 역사 상 유래가 없이 다채로운 OST를 선보여 주었는데, 이 또한 작품이 가지는 전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적재적소에서 장면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제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아니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작진은 그녀가 가져온 무더기를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끼워맞춰 활용했다. 오늘 얘기할 <Green Bird>를 사용하기 위해 2분여 연출을 바꾸었다는 일화는 후덜덜...표절 얘기가 있긴 하지만 너무도 많은 레퍼런스와 다양한 장르로 표현되다 보니 오해의 지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종합선물세트 같아 이만한 구성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서 거품 물고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원형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시티헌터]라는 만화책이 있다.

[시티헌터]는 A부터 Z까지 유머와 야함, 재치와 즐거운 이야기들만으로 가득하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가끔씩 던져 넣는 떡밥들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 찰랑거리던 수위가 마침내 유리컵의 정점에 다다르고 흘러넘치기 시작할 때 분위기는 완벽히 180도 반전된다.

단행본 단 몇 권만을 남겨둔 후 피도 눈물도 없는 하드보일드로 분위기를 전환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그 장엄함에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카우보이 비밥] 또한 26편의 유머러스하고 좌충우돌 진행되는 각 에피소드들 너머 그 근원의 줄기는 아득한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정거장을 하나씩 지나칠수록 우리는 5명 멤버들 각각이 머무르고 있는 과거를 천천히 확인하게 되고, 그 슬픔을 툭툭 거리면서도 서로 깊이 공감해 주는 마음을 즐길 수 있다.

마지막이 지독한 하드보일드가 될 것이란 예감은 곳곳에서 불길한 그림자로 감지된다. 그리고 스파이크의 과거와 미래를 이끄는 그 첫 복선은 5화, 그 유명한 성당 씬에서 짧지만 강렬한 폭발음으로 시작된다. 이때부터 비밥호는 천천히 시동을 걸고 나아가는 듯하여,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던 한 남자가 한 여성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하였을 때, 또 한 명의 거울은 그를 죽음처럼 증오하게 된다. 서로가 겨누는 칼과 총이 맞닥뜨려질 때 스파이크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이 허공으로 천천히 낙하하게 되고, 그의 왼쪽 눈은 다시 과거를 응시한다.

그녀가 찢어버린 약조와 같이, 스테인글라스 파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가운데.


난… 한쪽 눈으론 과거를 보고, 또 한쪽으론 현재를 봐.

2분 9초간의 느린 낙하.


… 그날 이후로 나는 20세기를 관통했다.



카우보이 비밥 OST EP.05 Kanno Yoko <Green Bird>

https://youtu.be/9POYDoHXUX0?si=fQudhIJRYC_JhBFR




혹시 영상 재생 안되시는 분 계신가요? 이것은요? 영문이지만.

https://youtu.be/amCYjep3KMQ?si=801zwsXkPQnGiwbS




넷플릭승 아마 이제 볼 기한이 다 되어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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