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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Oct 25. 2023

노스탤지어라고 되뇌이고 싶었어

Lamp [Yume] <Symphony>

투채널의 더블 카세트 데크, 첨단 기술로 무장하여 오토리버스가 가능하다.

그 조그마한 놈은 투박한 기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속에 녹여 놓은 나의 마음으로 한 생명을 얻었다. 나름 명확한 음분리를 양쪽 귀에 선사한다고 머리맡 정중앙에 위치시키고는, 드러누운 채 시간을 거스른 음악들을 듣곤 했다. 그런 고등학생의 보물에 세상 어떤 명기가 부럽겠는가.

때론 Sepultura [Beneath the remains] 같은 음악들을 틀어 놓고 눈을 감고 있자면 나는 까무룩 잠이 들곤 했었는데 이런 자장가는 졸리운 온 시간 동안 몸에 차곡차곡 흡수되었을 것이다. 꿈속이었나 싶게 잠들어 있으면 문득, ‘철걱’ 오토리버스가 돌아가는 소리. 카세트테이프의 A면이 끝나고, B면이 끝나고 ‘철커덕’ 오토리버스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와중 꿈속에 내가 있는지, 꿈을 꾸는 내가 있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눈을 뜨면 생경한 맛을 달콤해했다. 행복한 시절…

그것은 각자에게 새겨진 원형 기억 같은 것이다. 누군가가 기억하듯, 잠든 할머니의 발을 따스하게 비추는 툇마루의 네모난 햇볕 같이.


그 어느 날 주말도 그랬다.

단지 카세트 데크가 아니라 리피트오올을 먹인 블루투스 스피커가 달랐을 뿐.

머리맡에 둔 블루투스 스피커에 Lamp 람프의 [Yume] 앨범을 걸어 놓고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 때 말이다. 그 얕을 수밖에 없는 잠 속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오토리버스 되는 멜로디에서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철걱’ 그러며 환기를 시키는 소리는 없었지만.

아, 그 소리, 잊은 듯 다시 반복되는 멜로디… 비몽사몽간에 몇 번이고 머릿속을 흘러 지나갔던 소리의 소멸.

‘아름다운 꿈’이라니.

깨고 나서 ‘노스탤지어’ 라고 되뇌어 보았다. 마침 노스탤지어 라는 단어를 화자가 이어받아 속삭인다.

이런, 공교롭다. 이것은 안 좋아할 수 없겠는 걸. 누군가의 마음을 진정 건드려 버릴 것이다.


Lamp 람프 램프는 노래 부르고 음악 만지고, 가사 고치고, 기타 치는, 두 명의 아저씨와 한 명의 언니로 구성된 독특한 조합의 일본 밴드이다. 기본적으로 사운드 자체를 매우 공들여 구성하는 이들인데, 그 소리에는 성글게 먹인 붓터치로 살짝 바랜 느낌이 존재한다. 결코 날카롭지 않은, 둥그스름하게 다듬은 목각 인형과 같은 모서리가 있다. 초창기 작들부터 현재까지 계속 변화되는 일련의 앨범들을 하나씩 섭취해 보면 시간에 따라 자신들도 함께 변해가는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이들만의 색채가 독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을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는 가둠을 거부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유효하다. 그 어디에도 Lamp의 음악이 존재할 뿐이지, 누구류, 어떤 장르란 말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음악이 갈수록 빛난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만들어왔던 지난날의 사운드 메이킹이 더욱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의 한 순간을 나는 2014년에 선보인 [Yume]로 제안해 보고 싶다.

첫 곡 <Symphony>의 불현듯 터져 나오는 인트로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듯이, 수많은 소리가 데코레이션을 이루고 우아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게 차분하게 눈에 띈다. 진행이 되면 될수록 궁금증을 일으키는 음악들은 하나하나 보석을 다듬듯이 세공의 노력이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매만진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인즉슨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시간들을 녹음에 들인다고 한다.

<Symphony>로 제목을 명명하고 첫 대문에 떡하니 내보이는 전략도 적절하다. 그들의 심포니라니… ‘이 앨범은 우리만의 소리로 충만한 결과물입니다.’ 라고 수줍게 선언하는 듯하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음악에 못지않게 힙하게 디자인된 앨범 재킷 또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왠지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은 은근한 끌림을 주지 않은지, 적당히 적적한 새벽 공기의 시간을 괜시리 상상해 보고 싶지 않은지?


[Yume] 앨범을 한참 동안 주식으로 들었던 적이 있다.

거부할 수 없이 플레이버튼에 손이 갔었달까. 그 바랜 속삭임에 중독되었었나 보다.

이는 ‘노스탤지어’가 기본적으로 지니는 향기와 맛일 것이다.


Lamp [Yume] 2014년 <Symphony>  

https://youtu.be/1tEXrbDy2-4?si=JNsQ17L4wYXFx0W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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