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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Oct 30. 2023

꿈을 키워봐. 그리고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

Natalie Merchant 나탈리 머천트 [Tigerlily]

어떤 목소리에 대해 얘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목소리란 어떤 것일까.

옥타브를 넘실대는 절창이 넘쳐흐르고 찌릿찌릿 풍성한 음색이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잘하는 가수란 때론 규격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연히 그 실력과 에너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는 또 다른 하나의 주파수를 더 타고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정해질 수도 없는, 오로지 고유한 각자 아티스트의 영역일 터이다. 때로 어떤 아티스트들은 너무도 가늘고 섬세하여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이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이들에게는 라디오 다이얼을 맞추듯이 좀 더 시간을 들여 귀 기울이려고 할 때야 생생하게 연결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주파수가 맞는 뮤지션을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된다는 것은 축복과 같은 일이다.


한참을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생각 해 보았다.

그녀는 무엇이 다른가 하고. 왜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는가 하고.

우선 그녀가 풍기는 외형적인 아우라도 무시는 못할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다른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녀만의 풍경이 있다. 약간 이국적인 핏줄이 살짝 비치는 외모에서부터, 적당히 내추럴하게 빗어 넘긴 머릿결, 조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맨발로 뛰어다니며 살랑살랑 노래하는 모습이라거나. 채식주의자라는 취향, 정치적인 올바름을 지지할 것 같은 정치 성향, 소수에 대한 목소리 등 그렇게 쉽게 밖으로 상상가능한 이미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음악은 음악이다. 내게 그녀는 목소리 자체로 어느 날 말 그대로 후욱 다가왔다. 이미지로서의 그녀, 다양성을 가지고 풀어내는 가사로써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그녀의 목소리는 바이브레이션이 약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노래 잘 부르는 가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역량인 바이브레이션 말이다. 연의 끝에서 마지막을 은은하게 장식해 주는 꾸밈음은 반드시 감초처럼 활용하고 마스터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R&B 같은 장르에는 필수적인 역량이기도 하지만 감정 표현과 풍부한 음색, 공간감을 갖는 목소리를 위해 이만한 기본 기교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단지 담담하게 불렀다. 무심한 표정을 한 채 그렇게 크게 감정을 고조시키지도, 너무 다운시키지도, 너무 슬프게도, 너무 기쁘게도 부르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심심하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왜 여타 여가수와는 다른 아우라가 형성될까. 정답은 간단하다. 사실 강렬한 착색은 없지만 역시 그녀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목소리, 진실된 목소리, 그녀를 지지할 수 있는 이유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뮤지션이다.

결국 진정성 같은 것일까?

참외를 주면서 ‘감 드세요.’ 그러면. ‘아 감 맛있네요. 고마워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 말이다. 그렇게 그녀에게 서서히 빠졌던 듯하다.


물론 싱어송라이터인 만큼 그녀가 쓰는 가사도 중요하겠다. 래퍼는 랩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싱어송라이터는 가사로 자신을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가사보다 소리를 좀 더 치중해서 듣기 때문에 모든 음악을 일일이 가사 읽어가며 함의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음악들이 있다. 이 음악들은 가사까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가사까지 음악의 한 영역이 되는 경우… 당최 뭔 소리를 하는지 궁금한 경우 말이다.

[Tigerlily]는 그녀가 10,000 Maniacs 매니악스 밴드에서 프론트 우먼으로의 긴 활동을 접고 처음으로 솔로 데뷔를 시작한 앨범이다. 당연히 밴드 시절에 있었던 제약을 걷어 내고 그녀만의 내면을 노래한다거나, 밖으로 내보이는 언어로 시작할 것 같은 상상은 쉽게 해 볼 수 있다. 앨범에서 가사는 또 다른 시와 같다. 그녀는 직설적인 표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참외입니다 라고 얘기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생경하게 이질적이지는 않다. 그런 모호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노력하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좋아한다.

그녀의 가사를 표현하는 좋은 예시가 있다. 예를 들어 <I may know the word>에서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 이야기 거리.


I may know the word 난 그 단어를 알고 있을지 몰라

But not say it 그러나 말하지 말아.

I may know the truth 난 진실을 알 수도 있겠지

But not face it 그러나 직면하지 않아.

I may hear a sound 난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A whisper Sacred and profound 신성하고 심오한 속삭임

But turn my head indifferent 하지만 무심히 고개를 돌려버리지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해 내었던 시간들, 이제 나이도 많이 들어 주름살도 새겨지고, 흰머리도 풍성해졌다. 그녀가 귀엽게 늙어가고 나도 늙어가고. 하지만 최근에도 새로운 앨범을 내는 꾸준한 행보는 감사하다. 천성이 아티스트인 이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 음악 쓰고, 시 쓰고, 내면을 돌아보고, 사회에 분노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녀가 밴드 음악을 접고 자신만의 첫 이야기를 낸 시간이 1995년이다.

나는 여기서 이제서야 그녀의 목소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살아왔던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니 그녀도 이해해 주리라. 그리고 시간에 퇴색되지 않는 음악들을 나는 좋아할 뿐이다.

[Tigerlily]의 처음을 장식하는 <San Andreas Fault>를 링크 걸어보며 마감하려 한다. 이번엔 어쭙잖은 해석도 곁들여서 가사도 한번 포함을 해 본다. 여전히 모호하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젖어 있는 우리, 그러나 일순 모든 것이 깊숙하게 절단되어 버리는 사악함 또한 숨겨져 있는 일상. 인기스타의 정점에서 순식간에 추락하는 별은 어떨까. 혹은 그 팽팽한 가는 끈을 알고도 건너는 시간.

뭐, 그런.

머릿속에서 알듯말듯 맴도는 달콤함이 좋다.

그리고 그 약한 긴장선을 표현해 내는 그녀의 목소리, 무언가를 툭 건드렸던 그 시간들.



Natalie Merchant 나탈리 머천트 [Tigerlily] 1995년 <San Andreas Fault>

https://youtu.be/9TYmzlCKqE8?si=ACIGFngTyQfCu0Vf​​


Go west

서쪽으로 가

Paradise is there

천국이 거기 있어.

You'll have all that you can eat Of milk and honey over there

거기엔 네가 먹을 수 있는 온갖 젖과 꿀이 있을 거야.

You'll be the brightest star The world has ever seen

넌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거야.

Sun-baked slender heroine Of film and magazine

영화와 잡지 속 햇볕에 탄 날씬한 히로인


Go west

서쪽으로 가

Paradise is there

천국이 거기 있어.

You'll have all that you can eat Of milk and honey over there

거기엔 네가 먹을 수 있는 온갖 젖과 꿀이 있을 거야.

You'll be the brightest star The world has ever seen

넌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거야.

The dizzy height of a jet-set life You could never dream
 꿈도 꿀 수 없는 아찔한 고도의 제트기 생활


Your pale blue eyes
너의 창백한 푸른 눈
Strawberry hair
딸기빛 머리결

Lips so sweet

달콤한 입술

Skin so fair

백옥 같은 피부

Your future bright Beyond compare

너의 미래는 비할 바 없이 밝아.

It's rags to riches Over there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San Andreas Fault Moved it's fingers Through the ground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땅을 뚫고 손가락을 움직였어.

Earth divided Plates collided

지구는 나누어지고 판이 충돌했어.

Such an awful sound

정말 끔찍한 소리야

San Andreas Fault Moved it's fingers Through the ground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땅을 뚫고 손가락을 움직였어.

Terra cotta shattered And walls came Tumbling down

테라코타는 부서지고 벽은 무너져 내렸어


O promised land

오 약속의 땅이여.

O wicked ground

오 사악한 땅이여

Build a dream

꿈을 키워봐

Tear it down

그리고 찢어버려

O promised land

오 약속의 땅이여.

What a wicked ground

이 사악한 땅이라니.

Build a dream

꿈을 키워봐

Watch it fall down

그리고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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