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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Nov 01. 2023

오늘 우리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네

네이버 온스테이지 종료 고생하셨습니다.

2010년 시작하여 13년 간 항해를 이어 온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가 11월 16일 부로 운영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격이라기보다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왜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가 막상 상실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아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것.

한국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중요한 라이브 음악 매체로 EBS 스페이스 공감, 그리고 온스테이지 두 가지를 꼽고 있다. 그중 특히 온스테이지는 한국 뮤지션을 중심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신인들을 소개해 주는 장으로 시작하여, 양질의 무대가 주는 사운드의 아름다움에 도취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갔다. 즉, 훌륭한 무대 장치, 음악에 어울리는 영상, 사운드 시스템, 원테이크의 긴장감으로 최고의 라이브를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인디라고 통칭하는 친구들의 소중한 음악 소개를 넘어 유명한 뮤지션까지도 눈독을 들일만한 상징적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650여 명의 뮤지션들이 소개되었다는데, 보통 3곡의 무대를 꾸며주었기 때문에 라이브러리의 양은 상당하다. 그리고 그 컨텐츠의 질적인 가치는 또 어떠한가 말이다.


네이버 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이 무대가 왜 종료되었을까? 아무리 문화재단이라도 대기업의 논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온스테이지가 과거에는 거의 독보적인 라이브 무대 플랫폼이었다면, 현재는 비슷한 미디어 채널이 많이 등장하면서 그 존재감을 많이 상실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 뮤직이 2020년에 종료되었을 때 Vibe로 이전되지 않고 함께 종료된 수많은 전문 음악 소개 서비스처럼, 온스테이지도 버티다 자본의 논리로 사라지는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도 해 본다. 앞으로 네이버 문화재단은 새로운 지원 사업 영역을 발굴하고자 본 운영을 종료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엇을 툴툴거릴 마음은 단연코 없다. 본 글은 사실 온몸으로 감사함을 가지고 쓰고 있다. 가만 앉아서 혼자 편하게 잘 받아먹었으니 가시는 길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왜냐하면, 그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 기획자, 작가, 영상제작인,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디자인 담당 등 얼마나 많은 분들이 노력을 기울였을까 말이다. 영상을 볼 때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분들의 애정이 희미하게 오버랩되기에 고마움만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라이브 무대 포맷은 계속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1.0으로 불리는 초기 버전은 뮤직비디오 컨셉을 좀 더 활용하여 뮤지션들의 음악에 맞는 장소를 통해 무대를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일전에 언급했던 김일두 아저씨의 <문제없어요>는 그의 부산 자취방에서 덩그마니 의자 하나 두고 무대를 꾸민 것처럼 말이다. 2.0으로 바뀌면서 무대는 배경이 없는 단 하나의 무대공간으로 정해졌고, 보다 원테이크 라이브에 집중을 했다. 즉, 최고의 라이브 사운드를 잡는 데에 공을 들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모두 훌륭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소개하는 뮤지션을 가장 중심에 두고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자리를 빛내던 음악인들 또한 소개 기회가 많지 않은 인디 쪽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현재는 메이저급으로 올라선 가수들의 좀 더 푸릇한 무대 또한 소중한 것이다. 관객들의 아름다운 호응이 멋졌던 검정치마의 <Antifreeze>라거나, AKMU 악동뮤지션이 재즈 살롱에서 부르는 것 같은 <Re-Bye>같은 클립 말이다. 잔나비가 기지개를 켜려 하는 2016년 즈음 소개된 <Goodnight (intro) +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콤보의 주유소 라이브 같은 건 어떤가. 지금 봐도 얼마나 풋풋하겠나.

옛 가수들을 조명하여 힘 있는 무대를 마련한 것 또한 의미가 있었다. 재즈계 대모라 불리는 박성연 씨의 <My Way>는 결국 그녀의 유작 무대가 되었으며, 흰머리 최백호 아저씨의 진한 <낭만에 대하여> 라거나, 정미조 씨의 마음을 울리는 무대 같은 것 말이다.

소수 중에서도 소수인 재즈 뮤지션의 무대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은 최고의 핫한 뮤지션이 된 윤석철 아저씨의 번뜩이는 트리오 무대 <음주권장경음악>이나, <칼날> 김오키의 선뜩한 색소폰이 주는 날카로움, 펑키 재즈의 화끈한 합일을 보여주는 JSFA <Intro+That Thing>같이.

국악 쪽은 어떤가. 이제는 글로벌 라이브 클립이 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콜라보 무대 <범 내려온다> 라거나 (표지 스크린샷),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잠비나이의 귀신 쫓는 <나부락> 등.

헤비메틀, 여성 싱어송라이터, 블루스 락, 래퍼, 전자음악, 흠…. 이게 하나하나씩 언급해서는 밤을 새도 될 일이 아니다. 수십 장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단지,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에도 공중파에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음악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뮤지션들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아름다운 이정표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온스테이지의 존재는 그만큼 소중했다. 이제 그 장정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시니 많이 아쉽지만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돌아가시는 길 꽃이라도 뿌려드리고 싶다.

좋은 뮤지션들을 발굴하느라, 그에 걸맞는 무대를 만드느라 고민이 많으셨던 스탭분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음악을 아름다운 사운드로 받아 행복했어요.  



바쁜 세상에 음악 소개는 하나로 족하지만 이번 챕터만큼은 진짜 욕심을 내어 두 개를 링크하고 싶다. 안 들으셔도 됩니다.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온스테이 Ver. 이라고 이름 붙인 녹음이 싱글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어 준 관계자 분들께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한다. 전체가 먹물처럼 잘 번져있다. 개인적으로 앨범을 안 듣고, 이 라이브를 매번 듣게 되어 백예린 언니에게 미얀.

백예린의 머금은 목소리는 역시 찬란하되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빛나는 지점은 권은진 씨라고 표기되어 있는 여성 코러스의 열연이다. 스미는 얇은 막을 한꺼풀 덧입히는 코러스에 의해 이 버전은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미조 <석별>

올해 74세이신 정미조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떤 퇴색도 없었다. 깊은 울림만이 남았다.

길의 끝에서 말 그대로 줄줄 울었다. 이런 무대를 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 작곡가인 전진희가 손수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 위로 이주엽의 가사가 그녀의 마른 손마디로 지난다.

당신의 가장 빛나는 리즈의 순간은 지금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단지 오늘 하루가 리즈입니다.

‘오늘 우리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네’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https://youtu.be/_EfRa_ywkEw?si=j-rFem0cEj3sF-H3






정미조 <석별>

https://youtu.be/t_q_JaucY2k?si=ZflyGg24Jybevs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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