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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Nov 20. 2023

싸움 구경하다 떡이 두 개

Roger Waters [The Pros and Cons of Hitch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는 그 긴 역사를 통틀어 발매한 앨범의 성격에 따라 몇 단계를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역대 세계 앨범 판매량 2위에 꼽히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나 탈퇴한 Syd Barrett 시드 바렛을 그리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 같은 명곡이 포진한 [Wish you were here] 앨범을 이구동성 그들의 정점으로 내세우곤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Roger Waters 로저 워터스가 작곡이나 전체 컨셉을 잡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지만, 각 멤버들의 참여도 또한 앨범들에 골고루 포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나온 3장의 앨범이 준비되는 과정을 들어보면 Pink Floyd가 로저 워터스의 독재 하에 붕괴의 길로 가는 시간이었다고 얘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Animals]에서부터 거의 그의 컨셉과 작곡만으로 앨범이 만들어지고 기존 멤버들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 남아 있는  이들이 느꼈을 상실감과 불편한 감정은 상당했을 것이다.

또 다른 걸작 [The Wall] 또한 동일한 흐름에서 로저 워터스의 단독 컨셉으로 진행된 앨범이었으며, 심지어 로저는 프로듀싱 문제로 원년 멤버인 Rick Wright 릭 라이트를 해고 (탈퇴가 아닌 해고)까지 하게 된다. 멤버들이 함께한 마지막 앨범 [The Final Cut]은 그냥 로저가 솔로로 자신의 개인사를 추려 만든 앨범에 멤버들이 세션으로 참여했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3장의 앨범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로저 워터스는 그가 멤버들에게 해 온 막장으로 인해 인간성에 대해서는 욕을 먹고 있지만, 음악적인 기획력과 작곡능력,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레벨이 있다. 단지 Pink Floyd라는 공동체가 항해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 아저씨의 독재 수준의 밴드 활동으로 바닥이 났을 것이다.

결국 로저 워터스는 Pink Floyd가 더 이상 동력이 상실된 밴드로 판단하고 멤버들과 싸우다가 탈퇴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탈퇴하면서 밴드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려고 법적 소송을 걸어 버린 것이다. ‘내가 없는 Pink Floyd라는 음악은 없다’라는 오만한 자기 확신이었다. 당연히 기존 멤버들, 특히 음악적 성향으로 끊임없이 싸웠던 David Gilmour 데이빗 길모어가 이를 편히 두고 봤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수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다행히 법원은 나머지 3명이 여전히 Pink Floyd 이름을 사용하며 계속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후 우리는 세명의 멤버들로 구성된 Pink Floyd의 밴드 음악과, 솔로 활동으로 그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표현하고 있는 로저 워터스의 음악 활동으로 두 배의 향연을 얻게 되었다.


홀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로저 워터스는 이후 3장의 메인 컨셉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고, 라이브 투어를 준비하기도 하며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끌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그의 초기 3장의 앨범들을 보면 왜 진작 안 나가고 이렇게 멤버들 애를 썩였나 싶기도 하다. 그가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 정치적 신념 등 얘기하고 표현하고 싶은 기준이 그렇게 확실한데 이를 지속적으로 밴드 음악으로 조율하며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었을까 싶다.


첫 번째 앨범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역시 지난 역사의 연장선상으로 컨셉 앨범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곡 리스트를 보면 첫 번째 곡 <4:30 AM (Apparently they were Travelling Abroad)>부터 마지막 곡 <5:11AM (The Moment of Clarity)>처럼 곡의 앞에 시각이 있고, 그 시간대 대로 소제목의 음악들이 존재한다. 앨범은 새로운 세계가 깨어나듯 강력한 충격파로부터 시작하여, 깜짝 놀란 남편을 꿈일 뿐이라며 다독이는 침대 속 아내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현실인 듯, 꿈속이듯 몽상하며 지나가는 꿈속의 시간들이 나열되어 있다. 즉, 41분간 꾸는 꿈 속에서 정확히 41분의 앨범 길이가 함께 하는 꼴이다. 연속적인 꿈의 특성상 곡과 곡 사이의 쉼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새벽녃 꿈들은 의식의 흐름을 두서없이 기술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어느 시간대인가 로드 여행을 하고 있는 이야기, 잠자는 아내의 옆에서 어느 처자를 히치하이킹해서 어떻게 해 보는 상황이나, 이상하게 일그러진 길거리 상징들, 자신은 미로 속에 갇힌 쥐, 황량하고 쓸쓸한 길의 풍경들, 길가에 위치한 트럭커들의 식당, 아이들의 음성, 어린 시절의 단상 등 여러 가지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차창밖 풍경들처럼 스쳐 지나가도록 표현해 놓았다. 무언가로 억제되어 있는 화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꿈이 사실 어떻게 논리적으로 꾸며지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의 장단점이 뭐냐고? 모르지 뭐. 그런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닐 테니까.

단지 히치하이킹이란 게 로드에서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사건들이니까, 그의 인생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우연성이 포함된 일련의 사건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의식적으로 표현해 내려고 했던 것일까? 그런 경우라면 그는 이런 앨범을 만들면서 자신의 마음이 정화됨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예술이란 공공을 위함이 아닌 단지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행위일지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런 행위가 밖으로 드러났을 때 우리는 이를 통해 또 다른 위로를 덤으로 받게 된다.

꿈의 마지막에서 마침내 어렴풋이 한쪽 눈을 뜨고 어리둥절 어두컴컴한 침실을 인지하는 화자, 그래도 그의 곁에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느끼고 약간의 안심을 하게 된다.

헉! 그렇다면 이 앨범의 취지는 ‘곁에 있는 아내에게 잘해라!'

(What?)


 그의 첫 번째 솔로 컨셉 앨범을 준비하며 그는 데이빗 길모어를 대체할 유능한 기타리스트를 세션으로 고용해야 했다. 데이빗 길모어는 단순한 밴드 멤버이기 이전에 기타리스트 자체로 나름 확실한 지위를 보유한 자이기 때문이다. 왠지 내 혼자 나갔어도 이리 멋지게 활동한다고 기를 팍 죽여놓고 싶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당대 최고의 블루스 락 기타리스트 Eric Clapton 에릭 클랩튼에게 연락한다.

영국 표준 발음으로 오고 간 얘기를 번역하자면 아래와 같이 말이다.


야야, 내 앨범 녹음허니께 어여 와서 지대로 한번 밟아주라. 내 이것들 야코를 기냥 팍 죽여놓아 부러야 할 터인디.

아따, 성님. 나 요새 [Slow hand]의 <Wonderful Tonight> 같은 음악들이 찰지게 좋아지는디 이런 걸로 싸악 입히믄 어떠효?

니미, 니 뭐 헌다냐. 고란 것 말고, 아따 거시기 뭐냐. 옛쩌께 남의 마누라 가로챌라꼬 뤠일리아아아 (Layla) 지랄 옘병 떨던 고 때롬시 블루스 필 찐하게 허란 말이여.


결국 그는 에릭 클랩튼을 섭외하는 데 성공하는 것은 물론 진실로 찐하게 블루스 파워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안배를 해 놓았다. 80년대에도 에릭 클랩튼의 앨범들은 계속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즐겨 듣는 이가 있다면 로저 워터스의 본 앨범도 꼭 필청해 보기를 제안한다.

또 한 명의 유명한 세션 뮤지션으로 David Sanborn 데이빗 샌본이 색소폰으로 참가해 기타와 대등하게 구구절절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팝, R&B, 재즈 등 어떤 장르에서도 멋지게 세션을 소화하고 라이브 무대를 꾸며 왔던 이였으니, 본 앨범에서 얼마나 신명 나게 자리를 빛내 주었을지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Pink Floyd 시절에도 항상 참여하였던 트리오 여성 코러스의 목소리는 감초처럼 앨범 곳곳에서 톡톡히 기능하고 있으며,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관현악 파트가 음악의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


결국 우리는 Pink Floyd가 멤버 간의 불화로 법정 다툼까지 가며 안타깝게 분열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지만, 싸움 구경하는 링 밖에서 엉겁결에 양손에 두 개의 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떡은 한 입 베어 물면 실로 제대로 된 풍미를 머금고 있었으니.

치고받는 싸움 구경하다 떡 받은 꼴.


이것 참... 허허. 우쨌든 잘 먹겠습니다.


Roger Waters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1984년 <5:01 AM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Pt. 10)>

https://youtu.be/Hp-WAlpTJ2Q?si=aG8t2paVc60Ngy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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