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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Nov 28. 2023

몽환적인데 신부님처럼 경건해

찰리 정, 성기문 <상도 블루스>

Hammond organ 하몬드 오르간 소리를 애정한다. 아몬드 봉봉도 아니고 옆집 영숙이 또 불러낼 심산은 아니지만.

펜더 로즈에 사랑 고백을 했었으니 이와 쌍벽을 이루는 일렉트릭 키보드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 않겠는가.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54 이미 수많은 양다리를 걸쳤으니 나의 사랑 고백은 헤프기만 하다.


하몬드 오르간은 1930년대 시작된 악기로, 과거 메커니컬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초기 전자기학의 발달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런 악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톤 휠이라는 91개의 톱니바퀴 금속 휠들이 다른 속도로 돌아가고, 거기에 가까이 붙여놓은 픽업 코일이 내보내는 다양한 주파수의 파형을 진공관으로 증폭시켜 스피커로 내보내는 전자기 악기이다. 초창기의 목적은 교회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을 값싸고 간편하게 대체하되 그만큼의 심오한 소리를 내기 위한 명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리지날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리 자체가 가슴 저 아래께부터 푸근하게 감싸오는 파형을 가지고 있다. 듣다 보면 그 경건함에 당장 신부님께 달려 가 딸래미 과자 몰래 훔쳐먹은 것 고해성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알만 한 하몬드 오르간 소리가 들어간 곡을 선택하자면 Procol Harum 프로콜 하럼 의 <A white shade of pale>이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ayCLDucoBxI?si=ucXQdw2jshi-Fu4W

전주 첫 소절을 듣자마자 아, 이 곡! 그러며 떠오르는 회상이 있다. 도입부부터 마음을 젖게 하는 그 사운드가 바로 하몬드 오르간이 내는 환상으로의 초대이다.

이런 소리에 반할 만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무언가 몽환적이면서 신비롭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면서도 진실한 사운드. 그리고 이 사운드는 Drawbar 드로우 바라는 조정장치를 통해 수많은 조합으로 각자 취향에 맞게 세팅할 수 있다. 또한 키보드인데도 불구하고 베이스 사운드를 겸해서 연주를 할 수도 있었으니… 베이시스트에게는 분노할 만한 일이지만, 인건비 절약(?) 명목으로 베이스가 빠진 밴드 구성 또한 가능했다.

블루스, 재즈, 레게, 소울, 고전 락 등 어느 장르에나 적용이 되어 그룹의 독특한 사운드를 내는데 일조했으며, 펜더 로즈와 함께 키보드의 양대 산맥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봐도 Deep Purple 딥 퍼플의 Jon Load 존 로드가 사용했던 사운드들, 하몬드 오르간의 간판 재즈 건반주자 Jimmy Smith 지미 스미스의 흥겨운 라이브 앨범들, 구구절절한 한을 승화시키는 Bob Marley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등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운드를 도처에서 들어볼 수 있다.

회전자 베어링의 정기보수가 필요하고, 무게가 무거워 이동이 불편한 메커니컬 톤 휠 방식을 이젠 더 이상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를 디지털화 구현한 하몬드 오르간은 여전히 라이선스를 이어받아 생산되고 있다. 현대 음악에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많은 음악에 활용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하몬드 오르간을 얘기하면서 Jimmy Smith의 음악이라도 링크해야 할 것 같지만, 이 글을 쓴 동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하몬드 오르간 주자 성기문 덕분이다. 운이 좋게도 그의 연주를 두 차례나 직접 재즈 바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앨범에서 들었던 그 사운드를 재즈에서 이렇게 절묘하게 활용하는 산증인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사운드의 변화에 따라 함께 취하는 그의 미묘한 표정과 부드러운 손놀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흥겨운 스윙에서부터 진한 블루스까지 그가 뛰어난 실력으로 표현해 내는 오르간 사운드는 김효국 아저씨 이후 한국에서 전매특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좌우뇌 외에 중간뇌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페달로 워킹 베이스까지 함께 연주할까 경이롭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가 오르간 트리오로 활동하는 음악들도 있지만 찰리 정과 함께 한 진한 블루스 한잔이 그의 오르간 사운드와 함께 비벼지는데 우선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날 것 같은 찰리 정의 피킹 사운드, 기타 픽업을 앞뒤로 바꿔가며 요모조모 고조되는 와중에 성기문의 올갠 사운드는 묵직한 베이스와 함께 공간 전체를 부드러운 붓터치로 만져 주기도 하고, 때론 전면으로 나와 상도동의 추억을 나직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난 서울 키드가 아니라서 상도동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차식, 그런 게 있어.’ 라고 하면 수긍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플레이가 하몬드 오르간 사운드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에너지 넘치는 흥겨움도 여기서는 잠시 접어두고 있다. 단지, 난 대한민국에도 이런 뮤지션이 현재진행형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 짧은 소곡을 통해 하몬드 오르간에 담긴 애정을 살짝 드러내 본다.


찰리 정, 성기문 2012년 온스테이지 Ver <상도 블루스>

https://youtu.be/ipr3tAhbDCY?si=78ydVSmylw_3XP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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