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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Dec 10. 2023

응... 불란서 팝일 리가

StereoLab [Dots And Loops]

프랑켄슈타인 2세 때 설립된 사운드연구소는 나치가 몰락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음지에서 갖은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결과값을 축적하여 왔다. 그 방법은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B값을 F#의 주파수로 강제 변환시킨 후 근친교배를 시도하는가 하면, 드럼 하이햇의 가장 낮은 헤르쯔를 트럼펫의 속곳에 이식시켜 그 거부반응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극비 문서들은 구동독 산하 국가정보부에서 관리되어 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며 그 방법론적 기괴함에 많은 이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한편, 영국의 어느 신생밴드는 이 연구소의 업적에 감복한 나머지 수백 년 전의 금기 레시피를 다시 들춰내며 자신들만의 사운드연구를 계승해 나가는데….


… 거짓말이다. 미얀.

StereoLab 스테레오랩 이란 연구소 밴드명을 내걸고 활동을 하는 이들의 출사표를 볼 때 적어도 소리란 무얼까, 비트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밴드와는 다른 음악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은 이들이라고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영국 밴드이지만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두 명의 여성 보컬과 함께 1990년부터 2009년까지 10장의 앨범을 만들어 오며 자신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해 온 팀이다. 현재 또다시 재결성을 하여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들을 일반적인 Rock밴드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일렉트로닉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그럼 이종잡탕 프랜치 팝? 장난은…. 여러 가지 장르들과 소리들을 뒤섞어 이들만의 언어로 큰 줄기와 숲의 풍경을 그려보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현재도 그러하지만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되어 왔고, Post 라고 불리는 형태의 음악장르들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기존 질서를 해체하려고 한다. StereoLab은 적어도 그런 물결에 함께 동참해 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결과물의 양은 작지 않다. 계속 하나의 정형화된 형태로 머무르지 않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였던 것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뛰어난 레벨을 유지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떠다니는 반복적인 비트와 리듬 속에서 사이키델릭 한 분위기가 함께 하고, 연주 음악과 수많은 곳에서 길어 온 일렉트로닉 비트가 적절하게 배분되어 사운드가 확장된다. 일반적이지 않은 노이즈를 음악적인 재료로 녹여보는 시도도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두 명의 보이싱은 이들의 음악을 풍성하게 하고 부드러운 결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핵심이다.

새로운 음악 형태를 제시했다고 대중에게 환영을 받았던 앨범들도 있고 좀 더 건조한 형태의 음악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많이 알려진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바나나 재킷 앨범으로 호불호 비교를 하곤 하는데, 만약 당신이 바나나 앨범의 마지막 곡  <European Son>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이들의 초창기 명작 [Transient Random-Noise Bursts with Announcements] 의 앨범을 반드시 좋아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여러 다채로운 음악적인 시도들이 있지만 이것이 이질적이지 않고 친숙한 선에서 몽롱한 우아함을 선사한다.    


[Dots and Loops] 는 이들의 여섯 번째 결과물로써 개인적으로는 가장 친화적인 사운드로 접근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제목과 앨범재킷의 수학적인 건조함이 선입견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인데, 그리고 실제 친절하지도 않지만 이상한 일이다. 점들의 향연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는 것과 같이 여러 가지 음악적인 점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올망졸망하고 오실로스코프적이지 않다.

점점의 사운드 자체가 물방울과 같이 이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그 맺힌 물방물들은 수학적이긴 하지만 몽글몽글하게 맺혀 정확한 타격지점으로 낙하한다. 비트가 점이라면 관현악은 선일 것이다. 비트 우에로 길게 그어가는 이들의 한 획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프랑스어로 연기하는 여인네의 두 가지 주파수 레벨은 그 위에 또 다른 층을 쌓는다.


그중 가장 즐겁게 다가오는 곡을 골라 본다. 불란서 팝처럼 서정적이지만 음악적인 시도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은 좋은 곡이다.

이 곡은 메인 테마가 제시된 이후 여러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 점진적으로 쌓아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해소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해소의 지점이 너무도 아찔하여 황홀해했던 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12분 이후에 진행되는 풍경들을 보라,

모든 것은 사라지고 수학적인 점들만 남아 곳곳에서 반짝반짝 명멸하는 과정 속에서, 시간이 다한 ‘불현듯’ 이 베이스, 드럼과 함께 전개되면서 분위기가 아스라하게 반전된다.

현악이 몇 가닥 선을 그으며 반짝이는 별들을 한 데로 이어주는 와중에 해석해 보지 않아도 좋을 프랑스 텍스쳐가 하나의 악기 마냥 점층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며 서사 구조를 완성시킨다.

적고 보니, 곡 길이가 17분 33초이다. 사실 앨범단위로 듣기 때문에 내게 한 곡 당 길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너 이 자식 엿 먹일라고 그러는 거지. 17분짜리 불란서 팝?’ 이런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참 신기한 게 어떤 곡을 틀어 놓고 있으면 시간이 그냥 지나가는 경험을 하곤 한다. 내게는 이 곡이 그렇게 다가오네.


새로움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때론 그 아집에 매몰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 비등점을 우아하게 줄타기하는 이들의 음악. 골방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잠시 풀어놓아 보고 싶었다.  



Stereolab [Dots And Loops] 1997년 <Refractions in the Plastic Pulse>

https://youtu.be/Pvgfknx_vq0?si=IWmtwHE3TlQaRB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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