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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Dec 12. 2023

자, 이제 뼈 좀 맞자.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

정혜경 작가님의 브런치북 [피아노, 결코 쉽지 않다.]는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행복하게 읽은 책 중 하나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ianolesson

브런치에서 손에 꼽을 만큼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치열했던 고민과 경험, 실력을 바탕으로 에둘러가지 않고 제대로 과녁을 꽂아주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책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오해, 어려움, 감정들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며 단단한 조언을 제안한다. 그 단련은 때론 어려워 보일 수는 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송곳이며, 적당히 넘어가는 얘기보다 기실 큰 울림을 주었다.

근본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작가님은 피아노 연습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사실, 나는 나 자신이 보였다. 결국 태도란 삶의 전체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벌겋게 맞으면서도 글이 즐거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곡이 덜 완성되어도 안다고 생각하고 진도만 나갈려고 한다


 말은 취미라고 하지만 사실 남들이 보기에 또는 내가 보기에 그럴싸한 연주를 원하지 않는가


 선생님께 지나치게 의지하는 이유도 어려운 그 구간이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단기간에 뭔가가 완성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


 그래도 지켜야 한다. 왜냐면 의도를 가지고 만든 악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적당한 레슨은 그런 약속들을 50%만 봐달라는 것이다. 너무 빡빡한 2박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약간 느슨한 2박 (2.5박 같은 느낌)


가장 우선순위는 소리, 음악,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최종 목표


적당한 한계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정혜경 작가님의 뼈 때리는 멋진 글을 매혹적으로 읽다 보니 문득 다가오는 음악이 있다.

윤석철의 <즐겁게, 음악.>의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뮤지션인 윤석철은 2019년 안테나로 기획사를 옮기게 된다. 성공한 음악인, 가장 핫한 재즈 뮤지션이라는 성과를 반영하기도 하겠다. 때론 그를 천재로 비유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얻은 굵직한 수상경력이라거나, 한 때 더부스룩한 머리에 큼지막한 까만 뿔테안경을 쓰고 집중하여 피아노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노력형 음악인으로 판단한다. 그의 천재적인 음악감각은 수많은 연습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즐기면서 하는 음악 태도를 유지하여 왔던 것의 산물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음악이 풍성해진 데에 크게 세 가지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어린 20살 때부터 매주 목요일 클럽 에반스 재즈 클럽에서 진행하는 잼 데이 호스트 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잼 데이란 말 그대로 아마추어 불문 음악인 누구나 신청을 하면 그날 불특정 다수와 연주를 해볼 수 있는 세션이다. 곡만 사전에 선택되고 기타 정해진 음악 룰은 아무것도 없이 잼으로 완성되는 연주활동이다. 호스트로 근 10년 이상을 활동하고 있으니 그가 받았을 인터플레이 에너지가 얼마나 컸을까 상상을 해 본다. 정통 재즈의 기본기를 다지는 데 이만한 게 있었을까 싶다.


둘째, 그는 재즈가 베이스이되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즐겨 듣고 좋아한다. 특히, 힙합과 일렉트로닉은 그가 어릴 적부터 편애했던 장르이다. 예를 들어 DJ Soulscape의 <Love is a Song>을 재해석했던 작업을 보라.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활동에 기타 장르들이 스미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전통 재즈음악을 하는 이들을 낮게 보는 발언은 결코 아니며 그가 다른 재즈 음악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합치고 넘어가고 들어오는 혼용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여러 뮤지션과 협업하는 데에도 에너지로 작용한다. 많은 이들이 장르 불문 함께 작업하기를 원한다. 특히 Zion.T 자이언티 같은 경우, 그가 편애하는 뮤지션 중에 윤석철이 꼭 들어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셋째, 다루는 사운드와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다. 가끔씩 그가 소개하는 신디사이저 영상을 보기도 하는데 이런 갈증은 음악인이 가지는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순수 어쿠스틱 피아노뿐만 아니라 여러 키보드를 곁들여 음악의 지평을 넓히며 소리 자체를 탐구하게 된다.

가장 첫 앨범은 스탠다드 재즈 연주로 시작했지만, 이후 그는 하나로 자신을 구속하지 않고 재즈에 베이스를 둔 확장 음악을 하고 있다. 대중적이라는 말을 둘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데에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그는 음악을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즐겁지 않으면 음악을 이어갈 수 없다고도 얘기한다.

음악을 시작한 것은 어릴 때부터였겠지만 2005년 재즈 페스티벌 콩쿨 스타로 데뷔하고 14년간 활동을 이어나간 이후 2019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음악을 하면서도 여전히 즐겁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공자의 말처럼 아는 자, 좋아하는 자를 가뿐히 즈려밟는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음악이 누군가를 즐겁게 한다면, 그가 음악을 하는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과정의 일환이겠다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궤적을 따라가볼 때 2014년 발매한 [즐겁게, 음악.]은 중요한 분기점일 것이다. 그가 음악 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며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이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크게 알려진 계기이기도 한데 알다시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곡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여대 앞에 사는 남자>의 청량한 인트로 스윙들을 어떻게 피하겠는가.

앞으로도 가장 기대되는 뮤지션, 협업하고 싶은 뮤지션, 공부하는 뮤지션으로 즐겁게 음악 하는 그를, 나 또한 즐겁게 지켜보고 싶다.



각설하고, 이제 매 좀 맞자.

어릴 적 과외 선생님의 뼈 때리는 꾸중이 식은땀을 자아내는 <렛슨 중 / 즐겁게, 음악.> 콤비네이션은 이 앨범의 백미이다. 나만 이런 느낌을 받는 거야? 우아아아악 나 너무 학원 째고 놀았었나 봐…. 이제서야 이 구구절절 텅 빈 변명들이 선생님께 얼마나 하찮게 들렸을까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항상 도망가기 바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그래도 ‘즐겁게 음악’이라고 이 반어적인 제목의 곡을 스승과 연습이 귀찮은 제자가 뒤뚱뒤뚱 함께 시작한다.

모르겠다. 스승의 마음은 이러지 않았을까?

‘나도 네 마음 알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그렇지만 이런 좋은 곡들 있잖아. 함께 연주할 때 호흡, 즐거움, 너도 언젠가 즐겨 보았으면 좋겠어.’

마치 언젠가 즐거운 음악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구원의 마음을 담아.


그러니 우리 즐겁게 음악 하자. 즐겁게 연주하자. 즐겁게 음악 듣자.

자유롭게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 2014년 <렛슨 중 / 즐겁게, 음악.>

뼈 맞고 음악 들을 사람은 사람은 10:31부터

음악만 들을 사람은 14:43 부터

https://youtu.be/5AyXpaLWpTA?si=UgbCp1qXbj84nR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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