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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Jan 16. 2024

신탁의 뜻한 바 대로 될 거야

Rick Wakeman <The Oracle>

이번은 음악 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대했던 시간이 정리되어 있는데 왜 이런 글을 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브런치에 글을 쓰며 음악을 들었던 중요 경험을 나열해 볼 생각이 있기는 했다. 결국 살아온 시간에서 음악 듣기가 주는 행복이 어마했기 때문에 사심 없이 음악을 대했던 태도를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 일관되게 살아보고자 하는 다짐 같은 건가 보다.


항상 삶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별로 애쓰지 않았는데 좋은 것이 다가왔다. 누군가는 결국 운이란 것도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다르게 느낄 뿐이다 라고 얘기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음악을 듣게 되었다는 것은 그 운의 가장 높은 정점으로 힘주어 얘기할 수 있다. 예술은 모든 곳을 관통하니 삶의 기본자세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를 통해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삶의 기준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준 네 가지 경험들이 있다.

첫째, 음악 감상 동아리에 들어갔던 일이다.

사람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MBTI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어떤 조직에 들어간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 속에서 함께 했던 수많은 개성적인 이들과, 각자가 좋아했던 음악들을 그야말로 퍼붓듯이 흡수했던 일은 음악을 애정하는 마음을 성숙시켜 준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가요부터 일렉트로닉, Rock, 재즈, 클래식, 팝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들이 도처에서 들리니 편향된 시각을 가질만한 싹이 진작에 사라진 셈이다. 어떤 음악이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때 음악 또한 회답하는 것을 알았다. 또한 자발적으로 앨범을 기증하는 문화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좋은 음악은 꽁히 나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자세에도 영향을 주었다. 편견이 가득한 내가 넓게 세상을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는 전적으로 이때의 수혜이다. 진정으로 감사한 일이다.


둘째, 여러 나쁜 평론들을 읽게 된 일이다.

음악 듣는 입장에서는 수많은 잡지와 웹사이트를 통한 감상평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그중에는 맘에 들지 않는 평론들도 있었는데, 내가 싫어하는 평론들은 감상자가 창작자의 위에서 내려다보며 쓰는 듯한 글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나쁜 평론들을 읽으면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할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감상자는 반드시 창작자의 아래에서 시선을 둬야 한다고 나름 정리했다. 이견은 있겠지만 이것은 개인의 기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좋은 감상이란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며 고민했었던 부분을 함께 감싸 주고,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읽어 내려가는 노력을 해야 하며, 작가의 손에서 떠난 작품을 각자의 시각에서 새로움을 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형편없는 작품은 무시하면 된다. 창작자에게 제일 무서운 게 무관심일 테니까 말이다.
 

셋째, 진심으로 어떤 대상을 편애하는 후배를 만난 경험이다.

그 친구는 흔히 얘기할 수 있는 덕후 수준으로 특정한 밴드의 음악을 매우 애정했다. 음악을 듣는 폭은 넓지 않다 하더라도 그 밴드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 누구도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우리는 흔히 ‘들어야 하는 음악’ 에 직면한다. 즉, 세상에는 명반이라 일컫는 정돈된 리스트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도장 깨기 마냥 들어보아야 하는 유혹이 있는 것이다.

후배를 통해 배운 것은 세상에 ‘들어야 하는 음악’이 있지만, ‘자신에게만 다가오는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야 하는 음악’ 중에서 ‘자신에게만 다가오는 음악’을 하나씩 정리해 가슴에 간직하는 행복이 진정한 음악사랑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지만 내게 진실로 스미는 음악을 하나씩 알게 되는 깊이 말이다.

이를 통해 양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넷째, 대한민국에는 전영혁이라는 DJ가 21년 간 심야 라디오 방송을 맡아주었던 역사가 있다. DJ의 능력과는 무관할 터인데 학력을 속인 것에 대한 고백을 통해 안타깝게 마감하였지만, 그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지에 대해 끝판왕을 알고 있다는 것은 존재 만으로 좋은 가르침이 된다. 처음부터 겸손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들어가며 남들이 모르는 음악들을 안다는 허영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사실을 초창기부터 인지하게 해 준 고마움이다.


열거한 이런 소중한 경험들은 애정하는 음악 듣기를 좀 더 정립된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나아가 삶을 살아가는 지침으로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를 존중하며 그들을 편견 없이 읽어내려는 노력.

자신의 시선으로 읽어 얻은 기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악평이 아니라 무시할 것.

그리고 좋은 것은 공유할 것.

세상의 수많은 경지 앞에 항상 겸손할 것.

지난 시간들에 감사하는 만큼, 앞으로 새길 다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그래도 음악과 관련된 매거진인데 앨범을 소개하지 않고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말미에 적었던 전영혁 아저씨는 KBS Cool FM에서 심야시간대 1시에서 3시 사이에 편성되었던 것으로 모자라 결국 프로그램에서 하차해, SBS FM으로 잠시 이적한 일이 있었다. 그 KBS에서의 마지막 방송을 테이프로 녹음해 한참을 되새김하며 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사람이 돌아갈 길을 정리할 때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 선곡된 곡을 통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멘트를 앞두고 마지막 곡이 흐른다. 장엄한 Rick Wakeman 릭 웨이크만의 키보드 사운드가 흐르며 이윽고 Ramon Remedios 라몬 레메디오스의 테너가 구술하듯 오랜 태고의 서사를 써내려 간다. 아저씨는 아마 자신의 가는 길을 숭고하게 그려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지막 곡의 비장미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멘트의 기억과 어우러져 한참을 머물게 해 주었다.


깊이를 가져가는데 고전만큼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Rick Wakeman은 아서 왕이나 헨리 8세와 아내 등 일찍이 오래된 이야기를 차용해 자신의 음악적 깊이를 장식해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노래한 [A Suite of Gods]는 이런 행보에 또 다른 좋은 시도가 되었을 것이다.

키보디스트로서 거장 반열에 있는 그가 아름답게 작곡하고 연주하는 서사는 테너 성악가의 목소리를 통해 깊은 감동을 표현해 낸다. 우리가 익히 익숙한 이야기들이 앨범 전체를 수놓는다.

천지 창조의 시간,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이야기,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희망, 천지를 태우는 불의 전차, 인간의 어리석음이 대홍수로 씻겨가고, 율리시스는 다시 항해를 시작하네, 헤라클레스가 마침내 기나 긴 모험을 끝났을 때 앨범은 방점을 찍는다.

마지막 골목길을 돌아가는 이가 마무리를 짓기에 아름다운 음악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들리실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내용이라니, 가사가 궁금하실 분이 계실까 하여 말미에 해석본도 첨언해 본다.



Rick Wakeman [A Suite of Gods] 1988년 <The Oracle>

https://youtu.be/anoIvNitHGE?si=z93dx3mV_nSXbiAJ

 


Once an Oracle warned of danger to the King of Thebes

한때 신탁이 테베 왕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For his life and for his child

그의 삶과 그의 아이를 위해
 So from the crib he took his new-born son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을 구유에서 데리고 나와
 Gave him to a herdsman with orders he should kill him

목동에게 넘겨 죽여버리라고 했습니다.
 But the herdsman, filled with pity

그러나 목동은 불쌍한 마음으로
 Could not kill the child but left him tied against a tree’

아이를 죽이는 대신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Found by a peasant who took him to his masters

어느 농부가 발견하고 주인에게 데려갔습니다.
 Where he was adopted: Oedipus they named him

입양된 그를 사람들은 오이디푸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After many years the King was travelling

수년이 지난 후 왕이 여행하던 어느 날
 When his way was blocked by a chariot

그의 길은 마차에 의해 가로막혔고
 He ordered him to move away

왕은 비키라고 명령하였지만
 But because he was slow to obey

그는 순종하기가 더디어
 They killed his steed

그들은 그의 말을 죽였습니다.
 The stranger, enraged, murdered the King

분노한 이방인은 왕을 살해하였으니
 The stranger's name was Oedipus

이방인의 이름은 오이디푸스였습니다.
 He, unaware, had killed his father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Little did he know he would soon be King

그는 자신이 곧 왕이 될 거란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So the prophecy reached fulfilment

그리하여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The warning of the Oracle had had its way.

신탁의 경고는 뜻대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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