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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Jan 21. 2024

어둠 속에서 더듬으며 한 발짝 한 발짝

Nils Frahm [The Bells]

클래식 음악을 전공 후 다른 장르로 옮겨가는 피아니스트들은 일반적인 풍경에서 긍정적으로 조금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직접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내가 무엇을 알겠냐만 그 과정을 어림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퍼밴드의 이나우가 경연 중 밴드음악에서 표현하는 키보드는 왜 좀 더 특별한 울림을 주는지,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피아노 터치는 왜 좀 더 풍부한 색깔을 표현해 주는지, 키스 자렛의 피아노 즉흥 솔로잉은 좀 더 맑은 감성을 표현해 내는지… 그런 것.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들이 집중해서 연습하는 부분은 고전 악보를 통해 이를 원전의 의도대로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 내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즉, 절대음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클래식 음악에서 단서라고는 악보뿐인 옛 곡을, 거장이 당시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을 헤아려가며 매끄럽게 드러내려는 연습 말이다. 이런 훈련은 숨겨진 감정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적잖이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이들이 다른 장르로 옮겨가 자신의 음악을 할 때 큰 장점이자, 다른 이들과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훈련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작곡하던 당시의 마음을 온전히 돌아보며 깊은 교감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번에는 표제음악의 형태로 말이다. 가장 어울리는 제목까지 붙인 곡에 피아노로 표현해 내는 내면의 마음. 때로는 연주하는 중 자신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혹은 듣는 이가 각자의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너른 소통이 되기도.

꾸준하게 지켜야 하는 정석적인 연습으로 얻는 기교 또한 당연히 두 번째 장점이 되겠지만, 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훗날 자신의 감정을 써 내려가는 능력과 연결될 것이라 생각을 해 본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Nils Frahm 닐스 프람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가 어릴 적 클래식을 전공했다는 시절을 읽어갈 때 역시나 비슷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표현해 주는 솔로 피아노 앨범들, 대표적인 초기작들만 들어보더라도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CD를 사다 들고 흥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쫓아갔던 시간이 떠오른다. 부클릿을 넘겨가매 곡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을 고심했던 마음을 읽어 보고, 혹은 무심히 음악을 따라가다가 꽂히는 순간 다시 앨범을 뒤적이기도 하며 그가 피아노로 얘기하는 시간들을 함께 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무언가를 더듬으면서 찾아가는 몸짓이 보인다. 그러하니 음은 가장 최소가 되고 리듬은 규칙적일 수가 없으며, 호흡이 바지런하지도 않게 된다. 피아노 솔로 앨범이라면 의례히 가질 만한 편안함과는 다르게 통상적인 음의 울림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률적일 수 없을 풍경이 그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며, 나는 기꺼이 공명할 수 있었다.

전자음악에도 손을 뻗는 모습 또한 어떻게 보면 예고된 수순일 것이다. 어쿠스틱 피아노로 시작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음악을 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게, 다채로운 소리와 리듬을 선사하는 현대 키보드란 무기는 자신의 세계를 다른 형태로 얼마나 확장시켜 줄 것인가. 무심히 두드리는 책상에서 울리는 소리, 페이지를 넘기는 마찰음, 방 안에 고인 공기가 뭉친 잡음이 음악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 그의 세계는 더욱 넓어졌을 것이다. 이 앨범에서는 이런 모습, 다음 앨범에서는 저런 모습, 그럼에도 이를 관통하는 그의 피아노 소리는 한결같이 명징하다. 꾸준한 앨범 작업, 동료들과의 협업, 영화 음악 등 2000년 대 중반부터 현재 시점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저작물들이 고맙게 느껴지기에 한번쯤 챙겨봐도 좋을 음악인으로 생각이 든다.


그의 음악을 느끼기에, 앞서 얘기했던 2009년 솔로 앨범 [The Bells] 같이 집중해서 들었을 때 대화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되, <It was Really, Really Grey> https://youtu.be/dgoBbYBJeo8?si=79f9Pzvbtvttxc3s 라이브에서의 열정적인 연주 모습도 뭉클함을 전해 준다.

그래서 솔로 앨범의 심상은 개인에게 묻어두기로 하고, 그가 라이브의 마지막 지점에서 자주 연주했던 메들리를 가져와 보았다. 소리와 소리가 지속적으로 만나며 전형적으로 빌드업이 되는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More>에서 서스테인을 밟으며 그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함께할 때 깊숙이 전해지는 감동이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이 생애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피아노란 참 아름다운 악기인 것 같아.


Nils Frahm [live in London] 2013년 <Toilet Brushes – More>

https://youtu.be/Aln6DztAsMQ?si=HdOiLsDf6s1KGe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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