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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09. 2024

넌 두 가지가 겹쳐 보여

Curtis Fuller Quintet [Blues Ette]

밖에 있을 경우엔 재즈 클럽을 주로 다니지만 특히 좋은 경험들은 빅밴드 사운드를 마주할 때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이해할 만한 것이, 원래 크지 않은 한국 재즈 씬에서 빅밴드 같은 대형을 유지하기란 그 이상으로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즈 사운드를 직접 공연장 가까운 공간에서 들을 때의 감흥은 소편성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다. 미친 광기의 영화 <위플래쉬>에서 보여주는 빅밴드의 에너지를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여러 빅밴드의 공연을 접해 보면서 일반적인 편성은 다음과 같이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악기 섹션으로 첫 열에 테너2/알토2/바리톤1로 색소폰 5명, 둘째 열에 테너3/베이스1 트럼본 4명, 셋째 열에 트럼펫 4명이 포진한다. 그리고 그 건축물 옆에서 리듬 섹션으로 드럼, 콘트라 베이스, 기타, 피아노가 함께 해서 17명 정도가 기본 구성이 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재즈 트롬본 주자의 자리이다. 트롬본의 사운드는 색소폰과 트럼펫의 고역대를 중심에 서서 조화롭게 받쳐주는 듬직한 친구 같은 존재이다. 일면 트롬본은 낮은 음역에 슬라이드를 통해 연주를 하다 보니 다른 관악기에 비해 솔로잉에 제약이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선입견일 뿐이다. 솔로잉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시조와 같으니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드라마틱한 장면을 그려 보일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트롬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운드는 그 층이 꽤 넓기 때문이다. 내게 트롬본은 적당히 꺼슬한 자켓을 한 풀 더 걸친 것 같은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더하여 특유의 텁텁한 사운드부터, 부드럽게 저며오는 저음, 약음기를 통한 다채로운 색채, 때로는 트럼펫 못지않게 뻗어나가는 저력 등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빅 밴드를 위시하여 수많은 트롬본 재즈 뮤지션이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터운 사운드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악기의 다층적인 매력에 빠진 이들이 많은 것이다.


재즈 트롬본 연주를 얘기할 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곡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Curtis Fuller 커티스 풀러의 1959년 녹음 작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이 그것인데, 색소폰과 트롬본의 화음이 한 번에 착 감기는 메인 테마는 쫀쫀한 찹쌀떡 같아서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게다가 4/4박자 32마디 스탠다드 재즈 형식으로 한 번씩 정직하게 지나가는 악기의 솔로잉을 따라가기도 좋다. 메인 테마 후 첫 솔로잉은 테너 색소폰을 시작으로, 두 번째는 트롬본, 세 번째는 피아노가 32마디를 두번 활주한다. 네 번째 베이스가 32마디로 마무리 추임새를 넣으면 다시 모두가 함께 회합하여 메인 테마를 훑으며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한다. 옆집 할아버지 같은 착한 Tommy Flanagan 토미 플래너건의 피아노 사운드는 여기서도 친숙함을 더해준다. 명인 레코딩 엔지니어 Rudy Van Gelder 루디 반 겔더에 의해 우측 채널에서는 Benny Golson 베니 골슨의 푸근한 색소폰 소리, 좌측 채널에서는 Curtis Fuller의 후더운 트롬본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화음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런 향연과 듣는 맛이 요모조모 잘 맞춰져 있어 재즈란 음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데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제목 또한 음악에 맞추어 절묘하게 상승 작용을 하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긴 한데 현재 진행형의 영역과 과거의 영역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할 수 있을 것 같다. 밝은 마음으로 보자면 ‘사랑, 너란 존재는 도처에 가득히.’ 혹은 ‘주문 같은 너의 사랑은 온 세상에 충만해.’라고 열렬한 애정표현을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음악이 들리기도 한다.

우울한 마음으로 보자면 ‘너의 불꽃같았던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라며 떠나간 후의 잔해더미에서 망연자실하는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또 그렇게 음악이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음악 자체가 따뜻함과 동시에 애틋함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니까 두 번째 마음으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트롬본의 사운드를 통해 오히려 다른 소리가 환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트롬본이라는 많이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생경하게 다가오면 여기에 집중하는 와중에 어느새 다른 소리와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한다. 이후 익숙했던 색소폰, 트럼펫의 사운드가 반대급부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존재만으로 다른 것의 이유를 돋보이게 하다니 참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일상에서 그런 작은 파문을 던져주는 낮은 예술을 언제나 찾아보게 된다.


Curtis Fuller Quintet [Blues Ette] 1959년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https://youtu.be/wU5pp45mI6Q?si=_iMXcpMZO7FaD7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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