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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Feb 16. 2024

일그러진 마지막은 나비였을까

E.S.T Esbjörn Svensson Trio

일반화의 오류는 충분히 위험하지만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표현해 내고 싶은 그런 것이 있지 않겠나? 유럽 재즈 트리오를 얘기하면서 필연적으로 어떤 단어로 시작을 하고 싶다는 강박이 느껴졌다.

우선 재즈의 탄생지인 미국 재즈를 ‘즉물적’이라는 단어로 언급해 본다. ‘관념이나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실제의 사물에 비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좀 더 원초적이고, 감정적이고, 찰나의 합에서 터져 나오는 격정적인 에너지가 연상이 된다. 그런 마음이 모여서 떠오른 단어인가 보다.

유럽 재즈라니, 문득 ‘탐미적’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거기에 빠지거나 깊이 즐기는’ 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유럽은 미국의 재즈 원류가 흘러 들어와 자기 식대로 파생된 장르이다. 그러다 보니 분명 찬란한 고전이나 형식미, 정신적인 부분이 강한 예술 사조와 결합하여 좀 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ECM 레이블의 음악들이 가지는 잔향 깊은 풍경들도 알게 모르게 선입관을 만드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일반화를 싫어하더라도 미국 재즈라는 어떤 이미지, 그리고 유럽 재즈라는 풍경은 분명한 차별점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더 손을 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는 양쪽에서 이렇게 다양한 양분을 고르게 섭취하고 있으니 단지 마음속 정원은 꽃밭으로 가득할 뿐이다.


Esbjörn Svensson Trio 에스뵈른 스벤손 트리오, E.S.T 는 그 유럽 재즈, 스웨덴 재즈의 심미적인 그림을 만드는데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재즈 트리오로 기대하고 앨범을 들었던 시작이 기억난다. 흔히 접했던 미국의 재즈 트리오와는 무언가 달라도 한참 달랐던 것이다. 그 차이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둘씩 앨범을 들어가매 점점 그 다양한 깊이로 빠져들어가던 재미가 있었다. 흥미가 동했던 것은 그에게 정형화된 어떤 고정을 시킬 지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태를 통해 껍질을 벗고 계속 진화하듯, 그의 음악들도 10여 년의 찬란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던 것이다. 재즈 피아노 트리오가 기본이긴 하되 소리에 있어서, 구성에 있어서, 그리고 녹음에 있어서 다양함을 보여 주었고 종국에 가서는 일렉트로닉까지 접근을 하게 된다.

일전 영국의 고고 펭귄을 즐겁게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40 이들에게 물어보지 않아 알리는 없겠지만, 재즈에서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게 된 배경은 E.S.T의 선구적인 방향성이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정신적인 방향으로 접근하는 재즈가 쉽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마음을 열고 한 발짝 다가갈 때 다양한 색상으로 각자에게 스며드는 정답이 없음을 지지한다.


그러하기에 앨범을 하나로 꼭 집어서 얘기하기가 저어하다. 누군가에게는 이 앨범이 맘에 들고, 누군가에게는 이 음악이 맘에 들 것 같다. 혹은 정통 재즈의 어법과는 다른 접근에 심드렁할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앨범 모두를 추천하고 싶다. 앞서 얘기했듯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진화의 모습이 재미가 있으며, 여정의 종국을 장식하는 [Leucocyte]에 다다를 땐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있을 정도이다. 본 글의 표제로 쓴 [Leucocyte]의 앨범 표지는 그래서 E.S.T의 역사를 한 장의 그림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장 상단의 명확한 폰트는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형태가 점점 일그러져 가고, 결국 마지막은 처음의 존재가 산산이 분해되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중단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2008년 피아니스트인 Esbjörn Svensson이 사고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죽음으로 프리미엄을 더할 마음이 없음에도 이렇게 안타까운 이유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폭풍의 전 단계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다음 행보에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괴물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상상을 하게 된다. 혹은 그 끝은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였을까…. 왠지 딱 한 발짝만 더였던 것 같아.


앨범을 추천하기 그러하면서도 하나의 곡을 선정하게 되었다. 이 곡이 결코 그의 음악 세계를 대변할 수도 없다. 허나, 단지 그의 갇히지 않은 연주, 끊임없이 상승하는 그 세계의 마지막 정점에서 돌연 실이 끊기듯.

‘툭’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간 잠수가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S.T Esbjörn Svensson Trio [Strange Place for Snow] 2002년 <Behind the Yashmak>

https://youtu.be/NsAaJEjr618?si=_9rd5BwkO8GomV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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