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법치주의 환경이 산업경쟁규제에 주는 시사점(2)
세계은행이 개도국의 개발 원조를 통해 법치주의를 확산시키려 했던 시도는 중국에서도 특정 형태로 발현되었으나, 그 결과는 서구의 기대와는 매우 다르게 전개되었다.
후크 교수에 따르면,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주석 사망 이후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 CCP)은 경제 자유화와 더불어 법 제도를 재건하는 과정에 돌입했는데, 이 시기에 세계은행이 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중국 공산당의 교리에도 "법에 따라 국가를 다스리는"(依法治國, 이파즈궈)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 용어의 등장은 표면적으로 글로벌 금융기관이 추진하는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중국은 법률 시스템을 재건했고, '장쩌민'(江澤民, 1926-2022) 주석은 1996년 "법에 따라 국가를 다스리는" 노력을 설명하며 "법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강조했다. 1999년 이 표현이 헌법에 공식 추가되었고,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은, 중국이 법치주의에 대한 세계은행의 이해(재산권, 시장, 신용 제공)를 반영하여 시장 경제를 심화시키는 길을 걷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는데, 결정적으로 그 당시 미국 내의 친중파(민주당 및 공화당의 일부 포용론자)와 월스트리트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였으며, 단순한 당파적 영향력을 넘어선 미국의 거대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선택은 결국 중국이 시장 경제를 심화시키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된다. 실제로 '후진타오'(胡錦濤, 1942-) 총리 시대(2007년)에는 당의 주요 정책 결정 기관인 정치국이 재산권을 "법 시행을 위한 기본 계획의 일부"로 설명하는 등, 중국이 지배 엘리트를 법적 제약에 얽매이게 하는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크는 이 상황이 서구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았음을 명확히 설명한다. 2012년 '시진핑'(習近平, 1953-)이 주석 겸 총서기로 취임하면서 '이파즈궈'는 당 통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시진핑은 2013년 연설에서 법치를 "당의 지도력 프로그램"에 종속된 것으로 묘사했으며, 당은 법률 기관을 자신의 통제 아래 통합했다. 판사들은 정치적 사안을 제외한 비정치적 사건에서는 전문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받았지만, 결국 법은 당 통제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복무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당의 교리는 '이파즈궈'가 법의 '부르주아적' 개념과는 구별되며, 법은 당에 대한 제약이 아니라 광활한 국가를 통치하고 변덕스러운 간부들을 규율하기 위한 '개인을 바로잡는' 수단임을 명확히 했다. 즉, 중국의 법치는 두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 상태'로서, 당의 권한은 법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법률 시스템을 자신들의 통치 도구로 활용한다. 시민과 기업은 법을 따라야 하지만, 당은 언제든 정치적 필요에 따라 법을 무시하거나 재정의할 수 있기에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후크에 따르면, 이러한 '법치주의의 밀물과 썰물'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의 통찰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당의 실질적인 권력이 약화되었던 1990년대에는 법치가 권력을 통제하는 상황이 잠시 등장하였으나, 시진핑 시대에 사회에 대한 당의 권력이 급증하면서, 법은 당-국가에 대한 상호 제약 없이 당의 이익을 증진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시진핑 정부가 사법부에 전례 없는 책임을 부여한 것 역시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같이, 당에 대한 정치적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분쟁 해결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전략적 위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이파즈궈'는 법의 형식적 준수를 통해 당의 권력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했으며, 서구의 자유주의적 법치(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고 후크는 분석한다.
이러한 중국의 정치적 중앙집권화와 법치의 도구화는 최근 미국과의 기술·무역 전쟁 및 상호 봉쇄라는 강대강 갈등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미국은 과거 세계화를 주도하며 중국의 WTO 가입과 시장 경제 구축을 지원했으나, 이는 중국이 서구적 규범을 따르는 '책임 있는 이해 당사자'가 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했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의 강화된 당 통제와 '법치'의 내재화는, 중국이 국가 안보와 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국제 경쟁 질서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특히, 당의 조직적 영향력이 민간 부문으로까지 확대되고 새로운 디지털 감시 도구를 통해 개인에 대한 통제력이 확대된 것은, 미국의 기술 기업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중국이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중앙당의 통제를 공고히 하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행위는, 서구 국가들에게 '중국적 특성을 지닌 법치'가 결국 자본주의적 투자 환경의 안정성마저 위협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가 되었다.
향후 전개될 방향은, 미·중 간의 '책임 경쟁'과 '제도적 분리'(decoupling)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법치를 수용하지 않은 채 세계 경제 시스템의 수혜만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강조하며, 국가 안보와 인권을 명분으로 중국과의 기술 및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이파즈궈'를 통해 내부 통제력을 극대화하고,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자력갱생'과 국가 주도 기술 혁신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법치는 국제적 투자 기준에 형식적으로 부합하는 요소(시장 규율)는 유지하되, 당의 단독 통치를 보장하는 '이중 상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며, 이는 세계은행이 추진했던 '법치주의 국제화'의 한계와 실패 지점을 명연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현재의 국제 정세는 자국 우선주의와 지정학적 경쟁 심화로 인해 세계은행의 법치주의 확산 사례에서 드러난 글로벌 규범의 표준화가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한국의 산업 경쟁 규제 환경에 '경제 안보화'라는 핵심 시사점을 던진다. 즉, 국내 규제 당국은 더 이상 시장 효율성 또는 공정성 만을 목표로 할 수 없으며, 미·중 기술 봉쇄 및 공급망 분절화 리스크로부터 첨단 기술과 핵심 산업의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산업경쟁규제에 있어 안보적 관점까지 고려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