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자극-내면고독 순환구조의 롤러코스터
창작자는 집의 문을 열고 낯선 곳으로 나가 소재를 주우러 다녀야 좋을까, 아니면 조용한 방 안에서 사색을 깊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에 관한 질문은, 창작의 동력 구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창작은 소재의 흡수와 생각의 구조의 형성의 두 가지 상이한 프로세스가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교차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소재가 없으면 구조 형성이 불가능하고, 소재가 많더라도 구조 형성 과정이 없으면 재료는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게 된다.
사람이 많은 낯선 곳으로 자신을 던지는 외부로의 이동은 창작자에게 우연성을 제공한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해프닝, 낯선 사람의 이야기, 예기치 못했던 만남 등 통제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은, 창작자가 기존의 인지 틀을 교란하여 새로운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원초적 자극을 준다. 철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 말한 ‘도시적 자극의 과잉’은 인간에게 피로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종류의 직관을 촉발한다. 외부세계는 창작자가 스스로 설계할 수 없는 형태의 무작위성을 던져주며, 이 무작위성이야말로 창작의 재료를 풍성하게 한다.
그러나 외부 자극만으로 창작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험이 많아도, 그것이 창작자의 내적 구조 안에서 인과적·개념적·조직적 형태로 재배열되지 않으면 그저 '소음'에 불과하게 된다. 사색은 이 소음을 언어로 가공하는 과정이다. 사색은 창작자에게 ‘필터링’의 기능을 제공하며, 경험 속에서 본질적 요소와 불필요한 요소를 선별한다. 이는 철저히 내부적·비가시적 작업이며, 실제 창작 활동의 절반 이상은 이 고요한 내부 공간에서 발생한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가 해석학에서 말한 ‘융해의 지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새로운 경험과 기존의 이해가 사색 속에서 융해되어 비로소 창작자의 고유한 언어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좋은 창작을 위한 자신의 선택에 관한 질문은, 사실상 무엇이 나에게 부족한가로 치환해야 정확해진다. 이미 경험이 지나치게 많아 정신적 표본이 과포화된 상태에서는 고요한 방이 필요하다. 반대로, 오랜 시간 고정된 루틴 안에 머무르며 작동하는 인지 틀이 지나치게 단단해졌다면, 창작자는 피곤을 감수하더라도 외부로 나가야 한다. 자극의 고갈은 어떤 창작자에게도 장기적으로 위험하다. 그러나 과도한 자극 역시 창작의 전형적인 실패 원인이다. 언어적 구조화 이전에 재료만 쌓일 때, 글은 단편적이고 표피적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순환 구조다. 창작은 외부와 내부 사이의 운동이며, 일정한 비율로 두 영역을 왕복할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정체되거나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데, 이때는 다시 다른 궤적의 왕복의 변주가 필요해지게 된다. 창작의 흐름은 스스로가 어떤 시점에 있는지를 아는 메타인지적 조절과 유사하다. 어느 시점에 외부를 끊고 내부로 돌아와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 다시 외부로 나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이를 감지하지 못하면 창작자는 ‘고립된 사색의 공허함’과 ‘과도한 자극의 피로’ 사이를 오가며 방향성을 잃게 된다.
창작자는 바깥으로 나감으로써 세계의 변수를 얻고,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그 변수를 자신만의 문장으로 통합해 나갈 수 있다. '어느 때에 어느 것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의 정답은 스스로의 머릿속을 들어다 보면 알 수 있다. 재료가 부족할 때는 밖으로, 구조가 흔들릴 때는 안으로. 지속가능한 창작은 결국 이 단순하고도 다이나믹한 법칙을 얼마나 충실히 반복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