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이상의 합의 난항과 사법 엘리트의 검열의 위험성
법의 본질과 법치주의의 지향점은 오랜 기간 철학과 법학의 핵심적인 논쟁 대상이었다. 후크 교수는 법치주의가 단순한 법의 '방법론적' 효율성을 넘어 정의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정의의 개념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심각한 개념적 모호성과 현실적 제도적 한계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법치주의가 구체적인 실질적 권리와 결합되어 '정치 철학자의 법치주의'(rule of law as political philosophy)로 발전할 때 발생하는 난점들에 주목하는데, 이는 현재 우리 규제 환경과 법치주의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법치주의에 대한 방법론적 이해, 즉 법률 체계의 규칙이 공개적이고, 일반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준수 가능해야 한다는 형식적 기준은 영국 최고재판소 재판관이었던 '톰 빙엄'(Tom Bingham, 1933-2010)이 인정하듯이 법치주의의 최저 기준에 불과하다. 후크는 법의 형식적 합법성만으로는 나치 독일의 슈타지 경찰이나 도덕 경찰의 폭력적 행위가 법치주의에 부합하는지 묻는 일반인의 상식적 이해와 괴리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법치주의가 반드시 인간의 기본적 이익과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겠다는 약속과 결부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치주의는 단순한 법률 기관의 집합체를 넘어 효율성보다 정의라는 더 높은 목표에 시험대가 놓이게 된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정의 지향적 목표와 결부하는 과정은 곧 난관에 봉착한다. 빙엄 경이 법치주의를 마그나 카르타에서부터 인권 조약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생명권, 고문 금지,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실체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확장할 때, 후크는 이 '기본적'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적 불일치를 지적한다. 드워킨이 말하는 '권리 개념'에 기반한 빙엄 경의 접근 방식은, 권리 목록에 대한 합의가 부재할 경우 그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 권리와 구조적 차별로부터의 자유로울 권리가 충돌하거나, 영국에서 1998년 인권법의 폐지가 주기적으로 논의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권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보기는 어려운 것이 직면한 현실이다. 따라서 '법치주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기본적인 것'에 의존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무엇이 근본적인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하는데, 이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더 넓은 그림, 즉 정의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거대한 난제로 이어지게 된다.
더 나아가, 정의의 개념 자체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의견 불일치가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지름길과 끝없는 사회적 갈등 사이에서 갇히는 딜레마에 처한다. 이러한 법치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는 법치주의를 민주적 자치, 과거 불의에 대한 배상, 사회 안전망과 같은 다른 사회적 가치들과 충돌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 이론으로 변모시킨다. 특히, 이러한 정의 지향적 법치주의가 법원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할 때 위험성이 발생한다. 다이시의 법치주의가 모든 법률문제를 사법부의 양심에 의존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듯이, '법치주의'는 정의 문제 해결의 광범위한 권한을 법원에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후크는 많은 사회에서 법관과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회 계층에서 선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들이 빈자와 부자 모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특별한 정치적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며, 사법 엘리트주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입법을 광범위한 사법적 검토에 맡기는 정치 시스템은, 포용적이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민주적 노력에 대한 엘리트 검열을 낳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헌법주의의 역사가 사법 심사를 통해 종종 퇴행적인 결과를 초래해 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우려에 무게를 더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따라서 법의 궁극적 목표인 정의를 사법 엘리트의 손에 맡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법치가 정의를 추구하는 데 한계를 야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결국, 법이 정의를 발전시키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은 롤스나 드워킨의 이론을 인용하며 빙엄 경이 시도했듯이 당위적이고 고귀한 목표이지만,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모호성과 기본권 목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라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이러한 통찰이 현재의 우리 규제 환경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현행 규제와 법률을 단순히 형식적 합법성이라는 '방법'의 잣대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사회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규제가 보호하고자 하는 '기본권'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사법부의 규제 해석 및 판단이 민주적 과정의 결과를 엘리트적으로 검열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법치주의의 정의 지향적 목표는 사법 엘리트의 독단이 아닌 민주적 정당성과 포괄적인 사회적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정립되어야 할 윤리적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