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보조금 경쟁에 대한 한국 경쟁 당국의 선제적 규제 방안 연구
현재 미-중 간의 기술 및 경제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각국 정부의 보조금(subsidies) 지급이 전례 없는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은 특정 기업에 막대한 재정적 이점을 제공하여 글로벌 시장 경쟁 질서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OECD가 2022년에 발간한 "보조금, 경쟁 그리고 무역"(SUBSIDIES, COMPETITION AND TRADE, OECD Competition Policy Roundtable Background Note)를 통하여 각국의 보조금 남발이 국내외 경쟁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우리의 경쟁 정책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본다.
OECD 보고서는, 대부분의 경쟁법 체제가 정부 지원 조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경쟁 당국의 권한은 기업의 행위(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국제 무역 질서의 불안정성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기구의 약화는 이러한 기존의 규범적 수단들의 효력을 감소시키고 있으므로, 우리 경쟁 당국은 전통적인 경쟁법 집행을 넘어, 국가 보조금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고, 특히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적 보조금의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전략적 시점에 놓여 있다.
OECD 보고서는 보조금이 기업의 비용 및 수익 구조, 전략적 결정(시장 진입, 퇴출, 확장)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궁극적으로 시장 구조와 기능에 왜곡을 초래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비보조금 경쟁자들이 효율적이고 혁신적일지라도, 보조금을 받은 기업과의 경쟁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거나 심지어 퇴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조금에 대한 경쟁 당국의 주된 우려는 보조금 수혜 기업이 확보하는 재정적 힘(financial strength), 즉 소위 "속 주머니"(deep pockets)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재정적 이점은 경쟁자 대비 경쟁 우위로 전환되어 시장 내에서 기업의 행동을 잠재적으로 변화시킨다. 기업결합(M&A) 심사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 모두에서, 증대된 재정적 힘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므로 경쟁법 집행에 있어 고려되어야 한다.
보조금이 경쟁을 왜곡하는 이론적 경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보조금은 기업이 경쟁자 대비 월등한 재정적 자원을 확보하게 하여 지배적 지위를 창출, 유지 또는 강화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자본 집약적 산업이나 매몰 비용(sunk costs)이 크고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중요한 산업에서 잠재적 진입자에게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부틴'(Boutin et al., 2012)의 실증 연구는 현금 보유량이 많은 기존 기업이 있는 경우 신규 진입이 감소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재정적 자원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보조금은 유해한 행위, 가장 대표적으로 '약탈적 가격 책정'(predatory pricing)을 용이하게 한다. 추가된 재정 자원은 기업에게 "장 지갑"(long purse)"을 제공하여 일정 기간 동안 비용 이하로 가격을 책정하는 손실을 감당하게 함으로써, 경쟁자를 시장에서 축출하거나 혁신 채택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약탈적 가격 책정은 건전한 경쟁 행위와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쟁 당국이 접근하기 가장 까다로운 분야이다. 문제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 특히 국유 기업(State-Owned Enterprises, SOEs)의 경우 장기적인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정부의 산업 정책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Capobianco, Christiansen, 2011). 이러한 기업들은 손실을 회수할 필요 없이도 약탈 행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약탈 행위가 합리적이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손실 회수를 요구하는 일부 관할(jurisdiction)의 경쟁법 이론에 도전을 제기한다. OECD 보고서는 손실 회수가 전제 조건인 관할에서는 SOE의 경우 이러한 고려 사항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시한다. 약탈 행위가 배분적 비효율성(allocative inefficiencies) 및 동태적 비효율성(dynamic inefficiencies)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당국은 SOE나 정부 지원 기업의 경우 손실 회수 여부와 관계없이 약탈 행위의 잠재적 위험성을 보다 엄격하게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약탈적 가격 책정 사건에서 경쟁 당국이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해당 기업의 가격이 관련 비용(relevant costs)보다 낮은지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다. OECD 보고서는 보조금이 이러한 비용 산정 작업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정부 보조금은 명시적·암묵적, 직접적·간접적, 일회성·반복적 형태로 나타나며, 기업의 변동 비용(variable costs) 또는 고정 비용(fixed costs)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쟁법적 분석을 위해서는 보조금이 없었더라면 해당 기업이 부담했을 '진정한 비용'(true costs)을 산정해야 한다. 우리 당국은 보조금이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분리하여 '진정한 비용'을 추정할 수 있는 특화된 방법론을 개발해야 하며, '단순히 시장 진입을 위한 초기 손실'과 '보조금으로 뒷받침되는 반경쟁적 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여 과잉 집행(over-enforcement) 또는 과소 집행(under-enforcement)의 오류를 피해야 한다.
SOE에 의한 인수합병 등 기업결합은 일반 기업 간의 거래와는 다른 복잡성을 내포한다. OECD는 SOE의 경우 명시적 보조금 외에도 자국 시장에서의 독점보장을 통한 경쟁 회피(monopoly), 다른 SOE로부터의 간접 지원 등 암묵적 보조금의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업결합 심사 시 거래에 관여된 SOE뿐만 아니라, 동일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관련 '그룹'(group) 또는 '단일 경제 주체'(single economic unit)를 포괄적으로 정의하여 분석해야 한다(Svetlicinii, 2018; Riley, 2016). 해당 그룹이 제공할 수 있는 시장 가격 이하의 금융 또는 기타 자원의 제공 가능성, 즉 암묵적 보조금을 고려해야만 피인수 기업의 진정한 재정적 힘과 잠재적 반경쟁 행위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우리 당국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외국 SOE의 기업결합이 국내 첨단 산업 생태계의 경쟁 질서를 저해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그런데,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보조금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매우 어렵다. 첫째, 보조금이 명시적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SOE의 수직 통합 등 제도적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공적 정보가 부족하다. 둘째, 시장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관행임을 입증해야 하는 높은 입증 기준 때문에 이해관계자나 경쟁 당국이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우리 경쟁 당국은 이러한 어려움에 대응하여, 미국(US Merger Filing Fee Modernization Act of 2022)과 유럽연합{Regulation (EU) 2022/2560 on foreign subsidies distorting the internal market(FSR), 2023년 7월 시행}의 새로운 입법 동향을 참고하여 외국 보조금에 대한 정보 공개 의무를 기업결합 신고 절차에 통합해야 한다. 특히 기업결합 심사 시, 피인수 기업의 시장 지배력뿐만 아니라, 인수 기업의 정부 소유 구조, WTO 분쟁 또는 무역 조사 기록 등을 포괄적으로 참고하여 잠재적인 재정적 우위를 판단하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밖에, 보조금으로 강화된 재정적 힘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의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혁신적인 경쟁자의 특허나 기술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전(litigation)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거나, 유통 채널에 대한 배타적 계약(exclusive dealing)을 강제하여 경쟁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 당국은 이처럼 보조금이 재정적 우위를 통해 경쟁을 질식시키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이는 OECD가 언급한 바와 같이 재정적 힘이 지배적 지위 창출의 결정적 요인(decisive factor)은 아닐지라도, 상황을 심화시키는 기여 요인(contributing factor)으로 간주될 때, 이미 존재하는 시장 지배력과 결합하여 반경쟁적 행위의 가능성을 대폭 높인다는 분석에 근거한다.
OECD 보고서는 보조금이 경쟁과 무역을 왜곡할 수 있으며, 경쟁 관점에서 볼 때 보조금은 '경쟁 중립성 원칙'(competitive neutrality principles)을 따라야 함을 명확히 제시한다. 우리 경쟁 당국은 보조금 이슈가 이미 WTO 협정을 넘어서 경쟁 정책의 핵심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기업결합 심사 및 시장 지배력 남용 조사 시 '재정적 힘'(deep pockets)을 독립적인 경쟁 저해 요소로 평가하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EU의 FSR과 유사하게, 외국 정부의 보조금이 국내 시장의 수평적 경쟁 질서를 왜곡하는 경우를 규제할 수 있는 능동적 규제 도구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국유 기업, 특히 외국 SOE와의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고, 그들의 국가 정책 목적을 경쟁 분석에 포함하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여 국가 보조금 경쟁 시대에 우리나라의 첨단 산업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Hillrichs와 Wölfl의 보고서가 제시한 반도체 공급망의 수직적 의존성은, OECD 보고서가 분석한 재정적 힘을 가진 외국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우리 국내 생태계가 매우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경쟁 당국은 단순한 '경쟁법 집행자'를 넘어, 글로벌 경제 안보 시대의 '시장 질서 수호자'로서, 정부 보조금이라는 복잡하고 강력한 변수를 경쟁 분석에 통합하는 선제적이고 다층적인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한국이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국제 경쟁 환경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공정한 혁신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