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될 수 없는 법학자의 논증과정과 윤리적 통찰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 이후 지난 20여 년은 인간의 인지 활동이 '손에 쥐는 화면'이라는 물리적 단말기에 종속된 시대였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시야와 사고의 폭을 화면 크기로 제한했고, 모든 복잡한 행동을 '터치'라는 단일한 조작으로 표준화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스마트폰 시대의 종언을 목격하고 있다. 기술의 주도권은 더 이상 화면 속에 있지 않으며, 사용자의 의도와 주위 환경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예측하는 지능의 레이어(layer)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떤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안에 AI가 개인의 인지 체계와 결합하여 판단의 폭과 속도를 확장하는 시대, 즉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인지구조의 재편은 단말기 산업의 붕괴뿐만 아니라, 지식 생산의 형식과 권위를 오랫동안 지탱해 온 학계, 특히 법학 논문의 형식에 대하여도 의문을 제기한다.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에 AI는 더 이상 앱이나 도구로 작동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의 언어, 습관, 맥락을 해석하며 기기와 구분되지 않는 제2의 인지기관으로 편입된다. 인간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선택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AI와 결합하여 판단을 가속화하는 기획자가 된다. 이에 따라 논리필연적으로 지난 20년간 IT 산업의 황금률이었던 PPC(Pay-Per-Click) 광고 모델이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되기도 한다. AI가 사용자의 목적을 즉시 파악하고 최적의 '결과'를 바로 제공함으로써, 검색-노출-클릭이라는 광고 시장의 경제적 장치를 하나의 '응답'으로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자동화'가 아니라, AI가 인간의 욕망과 목적을 해석하는 '맥락 이해'이며, 이는 곧 기술이 사고의 흐름 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인지적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AI가 지능과 인지를 통합하고 매개 형식(스마트폰 화면)을 소멸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는 '연구'라는 전통적인 학문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법학은 '선례'(precedent)와 '원전'(original source)에 대한 성실한 각주(footnote) 및 인용을 통해 학문적 권위와 신뢰성을 쌓아온 분야이다. 전통적인 법학 논문은 방대한 문헌 검토, 이론적 배경, 판례 분석을 상세하게 서술하며, 문장 하나하나에 출처를 달아 논증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 핵심 가치이다. 이는 지식 생산 환경에서 지식을 '검증 가능하고' '복제 가능한' 형태로 보존하기 위한 약속이다.
그러나 AI가 곧 인간의 인지가 되는 시대에는 이러한 형식적 엄격함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AI는 수많은 선행 논문, 판례, 법령, 학설, 방대한 인접 분야의 전문지식과 자료를 학습하고 통합하며, 이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법적 논리와 이론을 생성한다. AI가 출력한 하나의 통찰력 있는 문장이 사실상 수십 개의 출처를 융합하고 분해한 결과물일 때, 그 문장에 일일이 특정 원문을 각주로 다는 행위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AI가 언어를 초월하여 방대한 문헌, 판례 법리, 규제 동향, 학설 대립, 법적 쟁점과 논점 정리 등의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지식 노동을 단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연구의 효율성은 극도로 높아질 것인데, 이미 우리는 그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기존의 길고 장황한 형식은 AI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배경과 방법론' 부분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오직 '핵심 법적 통찰력'(key legal insight)과 '정책 및 실무에 대한 실행 가능한 결론'(actionable conclusion)만을 압축하여 전달하는 정제된 형식으로 대전환될 수도 있다. 법학 연구자는 AI라는 확장된 인지기관을 통해 방대한 법률 데이터를 해석하고, 그 결과물을 사회적 가치 및 윤리적 판단과 결합하여 최종적인 지침을 설계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학에서 선행연구의 주석을 통한 자신의 견해의 논증과정은, 비단 학문적 기여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독창적인 생각의 뿌리를 탄탄하게 하는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이다. 즉, 각주 기반의 권위와 학술적 신뢰성은 AI 사용의 투명성으로 대체될 수 없으며,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법학자는 AI가 제시한 분석을 최대한 활용하되 철저한 논증과정의 투명성에 기반하여, 비판적 검토와 윤리적 해석에 집중하여야 한다. 특히, AI의 분석 결과가 놓치고 있는 인간 사회의 맥락과 윤리를 짚어내는 통찰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결국, 법학자라는 직업은 AI로 대체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