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주법 폐지가 남긴 유산

[미국 금주법의 비극적 서사 최종편]

by 날개

지난 첫 번째 두 번째 포스팅을 통해 알아본 미국 금주법의 비극적 서사는 1933년 수정헌법 제21조의 통과로 막을 내렸지만, 이는 미국 전역에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유산을 남겼다. 금주법 폐지 이후 음주 습관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이는 현대 주류 산업의 마케팅 전략과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사회적 접근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볼 미국 금주법의 유산에 관한 로라보 교수의 분석은 우리나라 사회의 음주 행태와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주에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미국 보다는 낮지만 알코올 소비량이 높은 편에 속하므로, 미국 금주법이 실패했던 문화적 배경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요즘은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술자리 강요, 폭탄주 등 집단주의적 음주 문화는 미국이 1980년대 이후 극복하고자 했던 '과음 문화'(heavy-drinking culture)의 형태와 닮아 있다.


미국 금주법의 유산은 우리에게 '강제적인 금지'보다 '사회적 인식과 법적 시스템의 구조적 개선'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음주 운전과 같은 특정 유형의 알코올 피해에 대해 국민적 운동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입법 연계, 알코올 의존증을 도덕적 문제가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고 전문기관의 연구 및 치료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음주로 인한 해악을 줄이는 핵심적인 방안임을 시사한다.


이하에서는 역사학자 로라보의 분석을 생생하게 옮겨본다.


금주법 폐지 이후 미국의 음주 습관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난잡하고 남성 중심적이었던 기존의 술집(saloon) 문화는 영원히 사라졌으며, 미국인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장기간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1930년대에는 알코올 소비량이 금주 이전 수준 대비 3분의 1로 급감했는데, 이는 당시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인해 사람들이 술에 쓸 여력이 거의 없었던 경제적 요인과 함께, 금주령이 시행되는 동안 성년이 된 세대의 영향이 컸다. 예컨대, 190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음주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약 20대)를 불법적인 환경에서 보냈고,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30대에 접어든 후였다. 이 세대는 나이가 들수록 음주량이 계속 감소하여, 65세에 이르면 대다수가 술을 마시지 않는 금주자(abstainer)가 되는 경향을 보였다.


금주법 폐지는 주류 산업 내에 '대중의 여론에 의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고통스러운 인식(painful awareness)을 심어주는 또 다른 유산을 남겼다. 주류 생산자들은 금주령이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판촉(promotion)을 피하거나 알코올을 '무해한 진정제(harmless sedative)'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검열(self-censorship)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자마자, 양조업자들은 자발적인 무역 협회(trade association)를 통해 라디오 광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자기 규제는 주류 광고가 텔레비전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1940년대까지 이어졌고, 맥주 판매가 꾸준히 증가한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양조업자들은 금기시되던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증류주(distilled spirits) 업체들 역시 잠시 같은 시도를 했지만, 대중과 정부의 강한 비판에 직면하여 후퇴해야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강력한 영향력은 주류 산업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례로, 1950년대 맥주의 시장지배 기업 '안호이저 부쉬'(Anheuser-Busch)는 젊은 남성 시청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수의 스포츠 프로그램을 후원했고, 그 결과 미국의 지배적인 맥주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 1970년대 '슐리츠'(Schlitz) 맥주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가 소비자들의 반감으로 급격히 매출이 감소하며 브랜드가 사라진 사례는 마케팅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금주법 폐지의 가장 긍정적인 유산 중 하나는 알코올 문제에 대한 공적 책임의 인식 확대였다. 1930년대, 주류 업계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음주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며, 생산자로서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responsibility)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알코올과 알코올 중독(alcoholism)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후원하기 시작했고, 1935년에 설립된 '예일 알코올 연구 센터'(Yale Center of Alcohol Studies)가 이 노력의 중심에 섰다. 초기 연구는 알코올 중독을 '도덕적 타락'이 아닌 '질병 모델'(disease model)로 접근하는 것을 뒷받침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코올 중독을 뇌 내부의 약물 반응(drug response) 문제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후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의 자금 지원이 확대되었고, 1974년에는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알코올 중독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 NIAAA)가 설립되면서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효과적인 약물 치료법(예컨대, 클로르디아제폭사이드, 날트렉손) 개발이 촉진되었다.


개인적 책임 모델의 측면에서는, 1935년 '빌 윌슨'(Bill Wilson)과 '밥 스미스 박사'(Dr. Robert Holbrook Smith)가 설립한 '알코올 중독자 익명 모임'(Alcoholics Anonymous, AA)이 금주법의 또 다른 중요한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AA는 음주에 대한 책임을 오직 음주자 개인에게만 지우는 기존의 금주 모델을 거부했다. 1840년대 워싱턴 자조 운동과 유사하게, AA의 12단계(12-step) 방법은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음주 욕구를 인정하고, 개인적인 책임을 수용하며, 궁극적으로 금주(abstinence)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 금주령 폐지 이후 알코올 남용은 점점 더 개인과 관련된 치료 문제로 인식되었고, AA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다른 중독 치료에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세계적인 자조운동(自助運動)으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국내외적으로 알코올 소비가 급증했는데,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스트레스가 많은 국방 업무, 군 생활의 어려움 등과 관련이 있었다. 전쟁 후에도 이 집단은 계속해서 술을 많이 마셨고,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맥주를 선호하는 동시에 독주로 만든 혼합 음료도 즐겼다.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s)인 이들의 자녀들 역시 맥주와 증류주를 즐겨 마셨으며,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두 세대가 겹치는 '과음 세대'(heavy-drinking generations)를 형성했다. 특히 부머 세대는 독주보다 저렴한 와인에 매력을 느꼈는데, 이는 레드 와인이 마리화나와 잘 어울린다는 당시의 문화적 인식과도 연결되었다. 결국 미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1933년 폐지 이후 꾸준히 증가하다가 1973년에 금주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1980년에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다. 젊은 부머 세대가 술과 마약에서 벗어나 자연식, 명상, 요가, 달리기 등 건강한 라이프스타일(healthy lifestyle)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 건강 운동(health movement)과 함께 1980년대 여성들이 전문직에 대거 진출하면서 알코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행이 바뀌었다. 마티니 세 잔으로 상징되던 저널리즘이나 광고업 등 전통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던 직종에 여성들이 합류하면서 해당 직종의 음주 관행은 더욱 금주 지향적으로 변모했다. 이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술을 훨씬 적게 마시는 경향과 맞물려 사회 전체의 음주량 감소에 기여했다.


또한 1977년 '태아 알코올 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 FAS)의 발견은 여성의 음주 행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임신 초기에 소량의 알코올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강조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시도하는 경우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1988년, 연방 정부는 모든 알코올음료 라벨에 임신 경고를 포함한 건강 경고 문구를 의무화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는 평균 음주량을 낮춰 피해를 줄이려는 '신금주 운동'(new temperance movement)도 등장했는데, 이는 과음 문화가 심각한 음주 문제의 위험에 처한 인구 비율을 높인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새로운 금주 운동을 이끈 가장 강력한 조직은 '음주운전 반대 어머니회'(Mothers Against Drunk Driving, MADD)였다. 1980년 음주 운전 사고로 13세 딸을 잃은 '캔디 라이트너'(Candace Lightner, 1946-)가 설립한 MADD는 음주 운전에 대한 더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전개했으며, '음주 금지 운전자'(designated driver) 지정 아이디어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MADD의 가장 중요한 입법 성과는 1984년 '최소 법적 음주 연령'(Minimum Legal Drinking Age, MLDA)을 21세로 올리지 않는 주(州)에 대해서는 고속도로 기금 지원을 보류하도록 하는 연방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1988년까지 모든 주가 음주 연령을 21세로 상향 조정했고, 이후 연간 음주 운전 사망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25년 동안 25만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규모 이민 역시 1인당 알코올 소비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이 아닌 멕시코, 중남미, 아시아 등 술을 가볍게 마시는 문화권(light-drinking cultures) 출신의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음주 태도와 관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소량의 알코올에도 불쾌한 안면 홍조(facial flushing)를 일으키는 알코올 홍조 유전자(alcohol flush gene)를 가지고 있어 금주하는 경향이 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시 술을 가볍게 마시는 편이다. 반면, 미국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집단은 여전히 유럽 출신인 백인 미국인이다. 1997년 이후 미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으나, 1981년부터 시작된 맥주의 장기적인 하락세는 지속된 반면, 와인 소비량은 1993년 이후 크게 증가하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독주(hard liquor)를 재발견하고 달콤한 혼합 음료(sweet mixed drinks)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독주 판매량도 증가했다.


금주법은 술이 현지 문화의 일부가 아닌 지역(일부 이슬람 지역)에서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권에서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로 끝났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핀란드, 노르웨이, 캐나다가 정부 재정 부족과 불법 증류 만연으로 금주 정책을 포기했듯이, 각국 정부는 해악(harm)과 정부 수입(revenue), 그리고 대중의 접근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충 관계를 겪어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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