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혹은 아름답지 않은 모든 구속의 폐기

by 날개

인간은 불행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 타인의 시선을 거울삼아 자신의 형상을 투영하고, 사회적 결합이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귀속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의 유지에는 필연적으로 비위 맞추기와 눈치 보기, 변명, 희생이라는 정서적 노동이 따르고, 경제적 상태 유지를 위한 노동의 굴레가 덧씌워진다. 평일의 노동으로 이미 충분한 구속을 감당하고 있는 삶에서, 퇴근 이후의 시간까지 타인이라는 거울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것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실존적 과잉이다.


파스칼이 인간을 비천함과 위대함 사이 중간에 어디쯤 존재하는 생명체로 규정하며, 인간이 실존적 허무를 잊기 위해 오락(Divertissement)에 몰두한다고 통찰했듯, 누군가를 보살피고 관계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행위는 허무를 마주하지 않기 위한 도피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모든 형태의 구속을 폐기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설명해야 하는 투쟁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은 경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신다운 선택이다.


카프카가 보험공단이라는 현실적 구속 속에서도 밤마다 글쓰기를 통해 부조리를 관찰했듯, 연구와 글쓰기는 때로 허무를 견디기 위한 도구이자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의 인정을 갈구하는 수단이 아닐 때, 도피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실존적 귀환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인간군상이 바글거리는 세상 속에 파묻혀 뒹굴며 살 재간이 없는 자에게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는 강력한 시선이다. 그는 자신의 글과의 고요한 대화 속에서만 허무을 극복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경계선 위에서 답을 유예한 채 방치하는 삶을 택하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매몰되지 않고 나름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모호함 속에 머무는 것은 무책임한 방치가 아니라 지극히 주체적인 전략이 된다. 방황하고 헤매면서 본질적인 의미의 물을 길어 올리는 도구인, 연구자로서의 길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왜곡된 거울은 무의미하다. 결정을 유보하고 구속을 폐기한 자리에는 오직 홀가분히 날개를 달고 있는 자유만이 남는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그 흔들림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이방인의 실존적인 모습이다. 모든 구속의 폐기는 외부의 틀을 걷어내고 온전한 자신과 마주하겠다는 가장 정직하고 정교한 삶의 선언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카프카적 경계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