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나요?

피니스의 디지털 나침반 : '좋아요' 대신 '선(善)'을 측정하라

by 날개

"법은 가혹하지만, 그래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법실증주의자(legal positivist)가 할 법한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그는 비록 부당하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테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법에 복종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법과 도덕을 완전히 구분하는 법실증주의와는 달리 지난번 살펴본 풀러와 같은 자연법론자(natural law theorist)들에게 악법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그들은 아마 "부정의한 법은 진정한 법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자연법론자들은 법의 유효한 것과 정당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natural)이 인정한 모두에게 좋은 것인 '선'(good)이라는 보편타당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들에게 과연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 명예교수 존 피니스(John Finnis, 1940-)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에 통합한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중세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자연법사상을 현대적인 분석철학의 방법론으로 정교하게 재구성하고 부활시킨 신(新) 자연법론자이다. 그는 자연법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자연법과 자연'(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을 집필하였는데, 그의 사상이 담긴 이 책을 Raymond Wacks 교수의 해제를 참고하여 들여다본다.


피니스는 '이성'이란 정념의 노예로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욕망의 부수적인(ancillary)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의 실천적 이성(practical reason)에 관한 개념을 거부한다. 그는 그것보다는 무엇이 가치 있고 바람직한 삶을 만드는 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을 바탕으로, 인간의 충만한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즉, '인류 번영(flourishing)의 기본 형태'의 일곱 가지 '선'(good)을 다음과 같이 먼저 제시한다.


1. 생명(Life)
2. 지식(Knowledge)
3. 놀이(Play)
4. 심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
5. 우정/사회성(Sociability or friendship)
6. 실천적 이성(practical reasonableness)
7. 종교('Religion') : 조직화된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 경험의 필요성을 의미함


위 일곱 가지 기본 특성들은 만족스러운 삶에 필수적이고 인간 사회에 보편적인 것들로서, 각각의 형태는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서 '내재적인 가치'(intrinsic value)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신념(moral belief)은 이러한 기본적인 '선'(good)을 추구할 수 있는 윤리적인 구조(ethical structure)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우리가 경쟁 관계에 있는 가치들 중에서 선택을 하거나, 특정 가치를 추구할 때 허용되는 행위를 판단할 수 있게 돕는다. 그는 '실천적 이성'(practical reasonableness)을 발휘하는 것이 도덕적 행위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일곱 가지 기본 선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 실생활에서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선택을 내리는 데에 필요한 '행동지침'으로 다음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1. 선의 능동적 추구(The active pursuit of goods)
2. 일관성 있는 삶의 계획(A coherent plan of life)
3. 가치들 간의 자의적 선호 금지(No arbitrary preferences among values)
4. 사람들 간의 자의적 선호 금지(No arbitrary preferences among persons)
5. 비집착과 헌신(Detachment and commiment)
6. 합리적인 결과의 고려{The (limited) relevance of consequences : efficiency within reason}
7. 모든 행위에서 모든 기본 가치 존중(Respect for every basic value in every act)
8. 공동선의 요건 충족(The requirement of the common good)
9. 양심에 따름(Following one's conscience)


일곱 가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이 아홉 가지의 지침은,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자연법의 원리'(principles of natural law)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아퀴나스가 지지한 자연법의 일반적 개념과 일치한다. 또한, 그는 객관적 선은 자명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설명으로부터도 비롯되는 것이 아니므로, 의 비인지주의적 공격(non-cognitivist attack)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지식'은 무지보다 낫다는 가치를 공격하기 위해, 누군가가 '무지가 행복'이라고 주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의 주장에는 무지가 더 가치있다는 '지식'에 기반한 판단이 담겨 있으므로, 그 자체로 지식이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 되어 그 주장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피니스는, 이러한 '선'은 인간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추구되므로, 그 공동체를 이끄는 '법의 권위'는 해당 공동체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공동선'(common good)에 반하는 불공정한 법을 제정한다면, 그 법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도덕적 권위가 결여된 것이 된다는 것이다.


피니스는 이러한 공동선의 개념을 통하여 '정의'의 개념도 발전시켰는데, 그가 말하는 '정의의 원칙'은 공동체의 공동선을 증진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요구사항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는 일곱 가지 선과 아홉 가지 방법론적 요건의 상호 연계된 실천을 통해, '불의'(injustice)를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공동체에서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다양한 패턴을 고려하면, 개인의 번영을 촉진하는 형태의 인간 선에 대한 '다의적 개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바람직한 인간 유형만을 보는 시각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의 형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추상적으로 상상 속에서 인간을 패턴화 하여 '선'을 평가하는 과정(process)과 불투명한 미래의 어림짐작을 통해 '최종 상태'(end-state)를 실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자연법의 원칙'은 인간의 사고나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방법, 목적론적(teleological) 자연 개념 등 어떤 것을 통하더라도 연역적으로 추론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도덕적 선은 복잡한 논리적 추론이 아닌, 직관적인 경험을 통해 이해를 통해 곧바로 파악된다는 아퀴나스의 생각에 근거한다. 즉, 아퀴나스에게 '정의'를 것을 묻는 것은 것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합리적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는 '정의'는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한 기본 선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행동 지침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합리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그에게는 바로 '정의'를 발견하는 길이 된다.


피니스의 자연법 이론은 인간의 번영을 위한 기본적 가치인 '선'을 설정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도덕적 원칙이 곧 법의 정당성을 결정한다는 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피니스에 따르면,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들이 '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선'의 조건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에 있어서도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손해를 최소화하는 효율성을 넘어, 플랫폼이 인간의 번영에 기여하는지 여부도 핵심 기준이 된다. 예컨대,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나 정책이 '지식'에 대한 접근을 왜곡하거나(가짜뉴스), 사용자 간의 '우정/사회성'을 해치거나(데이터를 이용한 부당한 차별), 개인의 '실천적 합리성'을 저해하는 중독성 설계를 할 경우 등에는 이러한 행위는 기본 '선'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가는 '공동선'을 위해 해당 플랫폼을 규제할 도덕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결국, 피니스의 관점은 오늘날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디지털 세계를 설계하도록 촉구하는 강력한 '윤리적 나침반'으로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히쯔'(櫃)와 '마부시'(まぶ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