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다섯에 직업을 찾다

요리하는 수의사

by 세뇰 Lee

수의사, 공무원 둘 다 나에겐 맞지 않았던 옷

내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마침내 지방 작은 도시 시청 축산과에서 수의직공무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던 1994년 당시에는 농어촌에 농업구조개선 자금이 마치 공중에서 뿌려지듯 투입되던 시기였다.

농산과 에는 농기계 구입자금, 원예시설자금 등 수많은 국비 보조사업이 있었고 축산과에도 마찬가지로 축산업경쟁력제고사업, 축산폐수처리시설 지원사업 등 몇 가지 융자 및 보조사업이 있었다.

나는 시청 축산과에 출근하는 첫날부터 축산폐수처리시설 지원사업을 떠맡았고 해마다 200여 개의 축산 농가에 정화조나 톱밥우사 등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자금을 집행하는 업무였었다.

축산폐수처리업무를 왜 수의사가 해야 하는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신참내기 공무원이 반발할 수도 없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업무이니 그러려니 했었다.

정부 지원사업 절차에 익숙지 않은 다수의 축산농가를 상대로 사업 진척상황을 확인하고, 융자금, 보조금을 집행을 위한 사업비 투자내역 확인, 축산폐수처리시설과 관련된 인허가 절차는 받았는지 확인하는 등 업무는 쉽지 않은 업무였다.

사업자 선정에 탈락된 민원인에 시달리고, 그저 보조금에 눈이 멀어 엉터리 사업을 하는 농가를 걸러내는 일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국비 보조금 업무라 상부기관의 수시 현장 점검과 보고 업무 등 성가신 일이 제법 많았었다.

그렇게 약 3년 6개월 지나고, 다시 도청 사업소인 가축위생시험소로 전출을 가게 됐다.


그곳에선 보통 두세 개 지자체의 축산농가에 대한 가축질병 검진, 방역, 병성감정 그리고 도축 검사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그중에서 나는 도축검사 업무를 맡았었다. 도축검사는 소, 돼지 도축장으로 출근하여 도축되는 가축에 대한 생체검사, 해체검사 그리고 도축장 위생 관리 등이 주요 업무이다. 정육점에서 가끔 보게 되는 소, 돼지 등짝에 찍혀 있는 빨간 도장, 파란 도장이 바로 도축검사 합격 도장인 것이다. 바로 그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로 꿀 빨던 시기였던 것 같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뒷돈이 막 생기고 그런 자리가 아니라 업무와 관련해 심적으로 가장 편안한 생활을 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절대 견딜 수 없는 곳이다.

매일매일 수십 마리의 소와 수백 마리의 돼지를 도축하는 곳에서 검사 업무를 하는 곳이니, 조금은 상상이 되시리라 생각된다.

단지 민원과 서류가 없고, 야근도 없고, 그날그날 끝이 나는 단순한 업무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편안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농식품부 산하 동물검역을 담당하는 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고 2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검역 일도 만만치 않았다. 민원도 많았고,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으로 걸핏하면 비상근무에 역학조사 업무 차출 등 맘 편한 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2015년 그 아까운 20년간의 공무원 경력, 피땀으로 얼룩진 그 23호봉을 포기하고, 과감히 맞지 않았던 옷을 벗어 버렸다.


리얼리티 예능 ‘윤식당’을 꿈꾸다

한 종편 프로그램 중에 윤식당이라는 예능 프로가 있었다.

유명한 배우들이 스페인의 한 휴양지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배우들이 직접 한식을 요리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또 한식을 처음 접해본 손님들의 반응을 보여 주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이 프로그램은 종편 채널 프로그램으로는 역대급 시청률을 달성하였고 좋은 시청률만큼 재미와 화제성을 동시에 잡은 프로그램이었다.

멋진 스페인 휴양지 섬 수백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도시 골목 한편 이국적인 건물의 아담하고 예쁜 레스토랑에서 김치전이나 비빔밥 같은 한식을 먹으면서 배우들과 대화하고 즐거워하는 금발의 멋진 외국인들을 보면서 꿈을 꾸었다. 나도 저런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서 식당을 해보면 어떨까.

물론 식당 입구에는 예능프로그램 촬영 중이라는 사실과 종업원들이 배우들이라는 내용이 고지되어 있었고, 멋진 배우들이 요리하고 응대하고 촬영 중이었던 상황을 감안하고, 또 좋은 장면만 편집해 방송을 하니 더 멋져 보였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운하의 나라’ 파나마에 한식당을 열다

사실 나는 공무원이었던 적부터 한식에 관심이 많았었던 같다.

공무원은 자기 계발을 위해 매년 의무적으로 일정시간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나는 그중에 농업공무원교육원에서 하는 ‘한식의 세계화’라는 일주일 과정의 교육을 수강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공무원 퇴직 전 약 6개월간 무급 휴직을 하고 파나마에서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외식물가와 다양하지 못한 음식 문화에 한식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였다.

물론 당시에도 파나마에 한식당 여러 곳이 성업 중이었었다.

그중 어떤 식당은 이미 삼십여 년도 넘은 오래된 식당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해주는 것처럼 그날그날 준비되는 재료로 매일 다른 상차림을 내는 백반집 같은 푸근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릇도 전통적인 유기그릇으로 음식을 내고, 상차림도 현지인들이 좋아할 만한 단품 요리를 더 추가하고, 인테리어도 좀 더 고급스럽고 현대적이되 한국의 전통미도 살리고, 현지 손님들에게 한식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다.

리얼리티 예능 ‘윤식당’처럼 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구상과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웠다.

그리고 2015년 내 나이 만 50살 나이에 그간 몸에 맞지 않았던 공무원이라는 옷을 벗어 버리고 파나마로 이민을 선택했고 그리고 다시 5년이란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나마에 한식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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