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처음이라서

대동맥판막치환술 후기

by 세뇰 Lee

눈 뜨고 처음으로 든 생각 “살았구나”

눈이 떠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 “살아 있구나.” “수술이 잘 되었나 보다.”였다.

그리고 간호사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어머, 벌써 깨셨네”

“호흡도 정말 잘하시네요.”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무슨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에 글을 쓰라고 해 쓰긴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 나는 대동맥판막치환술과 난원공개존폐쇄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막 깨어난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자마자 간호사는 나에게 뭐라고 질문을 하고선 내손에 진통제(펜타닐) 주입기를 손에 쥐어주며, 통증이 심하면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 버튼을 누르면 그때마다 펜타닐이 추가로 주입되는데 아무리 눌러도 15분에 한 번씩만 주입되도록 되어 있다.

통증이 밀려오는 듯싶으면 반복해서 주입기를 눌렀지만 아직 15분이 지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사실 중환자실에서의 하루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로 흘러 같다.

몽롱한 상태에서 꿈을 꾸기도 했다.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쏟아지는 속초 영랑호 산책길을 아내와 둘이서 산책하는 행복한 꿈도 꾸면서, “어라 꿈이 행복하네”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수술 전 밀려오는 두려움

나는 대동맥판막역류증으로 진단받고 수술하기 전에는 만 59년을 살면서 어디가 심하게 아파 병원에 단 하루도 입원했던 적이 없다.

매달 봉급에서 원천징수로 빠져나가는 상당한 액수의 의료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각종 검사를 받고 수술을 앞두게 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것도 흉골을 절개해야 하는 심장 수술이다 보니 정말 무서웠다.

인터넷과 유튜브 검색으로 같은 병으로 수술받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다 보니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어떤 사람은 수술 전 검사인 경식도초음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고 기도 삽관 때문에 힘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수술 후 통증과 혹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 그리고 재수술 경험담, 최소 두 달은 지나야 하는 긴 회복시간과 사후관리 경험담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리고 기계판막과 조직판막 사이의 선택, 계속되는 고민이었다


조직판막과 기계판막 선택은?

2025년 10월 15일 수술예정일 하루 전에 입원했다.

사실 대동맥판막역류증 진단을 받은 건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수술이 이렇게 늦어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곳이다 보니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정말 많고, 전공의 파업사태로 인해 조금 더 길어지게 된 것이다.

수술 하루 전 입원하자 수술 전 상담과 교육이 진행되었다.

수술 전 상담은 수술방법과 교체해야 할 판막의 선택, 수술 후 있을지도 모르는 부작용과 사망확률에 대해서 설명하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사망확률이 4%란다. 100명 중 4명은 수술 후 퇴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술방법은 정중흉골절개술이다. 처음에는 갈비뼈 사이를 절개하는 최소침습 방법으로 수술이 고려 됐었는데 심장 중격사이 작은 구멍이 있어 이것도 폐쇄를 해야 해서 부득이 가슴을 절개해야 한다 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졌다. 내내 최소침습법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갈비뼈 사이를 절개하면 회복 시간이 훨씬 빠르고 통증도 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막은 조직판막을 선택했다.

보통 65세 이상은 조직판막을 65세 이하는 기계판막이 권장된다.

조직판막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라서 빠르면 5년 길어야 15년이 지나면 재수술을 해야 하는 반면, 기계판막은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계판막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다.

내 나이는 59세. 의사 선생님은 기계판막을 권유했지만, 난 조직판막으로 하기를 고집했다.

기계판막의 경우에는 평생 항응고제인 와파린 제제를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음식도 가려야 하고, 출혈의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출혈의 위험성과 식이요법이 남은 인생의 질을 저하시킬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재수술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직판막도 잘 관리하면 20년 25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수술 후 회복

같은 날 심장 관련 질환으로 수술받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6명이다

아침 7시 벌써 휠체어를 타고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간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 한 것을 또 반복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눈이 떠진다. 내 손은 묶여 있을 것이다. 놀라지 말자. 기도삽관 때문에 목이 많이 불편하다. 밀어내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기도삽관에 호흡을 맡기자.>

이렇게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수술대에 누워 호흡기가 써짐과 동시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그간 걱정했던 기도삽관은 의외로 견딜만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기도삽관에 의지해 호흡을 하니 편했다. 그리고 흉골을 길게 절개한 수술이었는데도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진통제가 투여되고 있기 때문일 게다.

다음날 오후 일반병실로 올라오고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식사를 못 해서였다. 병원밥 냄새를 맡는 것조차 속이 메슥거려 힘들었다.

하도 식사를 못 하니 담당의는 환자식이 아닌 일반식으로 변경해 주었고, 라면도 괜찮으니 먹고 싶은 건 아무거나 먹으라 했다.

그나마 과일은 상큼하니 먹을만했고, 영양 보충을 위해 환자용 대용식도 먹으며 환자식으로 누룽지를 요청해 먹었다.

수술 시 출혈이 너무 많아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도 수혈을 두 차례 더 받았고 부정맥이 심하게 와 계속 수액을 맞으며 퇴원 시까지 홀터를 부착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병원은 이렇게 빨리 퇴원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일찍 퇴원을 시켜 버린다.

만 6일 만에 퇴원이다.


퇴원 후 관리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한 곳은 속초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나는 원래부터 은퇴 후 속초에서 살기를 희망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수술까지 기다리는 일 년여의 시간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 심리적으로나 건강을 위해서도 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퇴원 후 식사 후 매일 30분 정도씩은 걷기 운동을 하라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구축이라서 복도식 아파트인데, 길이가 150보, 한번 왕복하면 300보이다.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청초호와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져 보인다.

현관을 나와 좌측으로 복도를 걸어가면서는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빼꼼히 보이고 반대로 돌아 나올 때는 청초호와 동해바다가 보인다.

이만한 산책코스가 어디 있을까 싶다.

그렇게 하루 3번 30분씩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외식도 나가고 디카페인 커피도 마시며 외부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다시 조직판막의 수명이 다해서 재수술을 받게 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의료기술을 믿는다.

어느 의사 선생님께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단다. 이런 대수술을 받게 되면 환자가 힘든 게 아니라 의료진이 힘들고, 병시중 하는 사람이 힘이 든단다. 환자는 힘들게 없단다.

고개가 끄떡여진다. 흉골을 절개하고 심장을 멈추고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진은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까? 그리고 배액관을 주렁주렁 달고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환자를 간호하는 의료진과 아내는 얼마나 고생일지.

반면 나는 그 큰 수술에도 불구하고 통증도 별로 못 느끼고 의료진과 아내의 헌신적인 병시중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잘 회복하고 있다.

끔찍한 가정이지만 한 번쯤 수술 더 받아도 견딜 만 할거 같기도 하다.

이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슬기롭게 보낼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세상, 가능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다

그리고 여보! 두 달만 기다리시오. 가슴뼈가 모두 붙으면 집안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도 내가 하고, 요리도 내가 할 테니 조금만 참으시오

그간 내 병시중 드느라 정말 고생 많았소.


대한민국 만세! 의료인들 만만세!!

나는 십여 년간 해외에 살면서 대한민국을 찬양해 왔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언어며 문화 차이 그리고 의료, 행정 같은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한국에 비해 불편함이 많아 우리나라의 편리한 시스템과 친절한 서비스 정신에 절로 감사의 생각이 든다.

특히 의료시스템은 세계 일등, 실력도 일등, 친절함과 헌신도 일등!!

모두모두 일등이다.

아무리 입이 마르게 칭찬해도 부족할 듯싶다.

경식도초음파를 할 때는 초음파내시경이 - 위내시경보다 크기가 좀 더 커 많이들 힘들어한다. – 식도를 통과해 들어갈 때에는 어깨를 토닥이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 주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사실 수술 전에는 위내시경을 하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고, 수면내시경 중에도 거부반응이 심해서 난리가 난 적도 있어, 내시경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중환자실이며 입원실에서는 간호사님들의 그 헌신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새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지치고 힘들어 짜증이 날 만도 할 텐데, 언제나 환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웃음과 친절한 태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의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의료업무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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