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세 편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살아가는 내내 매분 매초 하는 생각이다. 세상은 어렵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들고 어렵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복세 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을까.
중간의 어중간함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 주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몸은 점점 힘들어지고 일하는 게 꾀가 난다. 뭐 쉬운 일이 없나, 덜 힘들면서 돈은 많이 버는 그런 일이 뭐 없을까 하는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잘하는 것도 딱히 없고,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회사를 나가면 나는 그냥 '인간'이라는 타이틀 밖에 남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 있으니까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달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슬퍼진다.
학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그랬다. 여기서 일등과 꼴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등은 공부로 밀고 나가면 되는 거고 꼴등은 공부가 확실히 아니니까 빨리 다른 걸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에 있는 애들이다. 얘네들은 공부가 영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걸로 먹고살기도 힘들고 그런 애들이다. 나중에 사회 나가면 얘네들이 더 문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이 말이 그때 당시에도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끼인 애가 바로 나였어서 더 그랬다. 항상 '중간'은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는데 내 가치관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편하게 사는 법
결혼을 해서 남편한테만 혹은 자식한테만 의지하는 삶은 결국 불행하다고 한다. 결혼해도 자기 자신만의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그게 돈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 사는 것도 똑같은 것 같다. 나 자신한테 믿는 구석이 있는 것. 믿는 구석 하나만 있어도 세상은 좀 더 살기가 편해진다. 내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그 믿는 구석을 만들기를 바란다.
목 끝까지 퇴사를 하고 싶어 질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잘하는 것 하나만 있어도 자신 있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서 '잘한다'의 기준은 탑티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못한다 소리는 듣지 않는 수준의 어떤 일을 말한다. 아주 작게라도 내 스스로 나를 믿어줄 마음이 생기는 것 말이다. 만약 내가 공부에 자신이 있었더라면 나와서 공부로 밀어붙이면 된다. 그림을 잘 그린다면 에라 모르겠다 한번 해보자 달려들어 볼 수 도 있다. 혹은 멘탈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정신력 하나는 끝내주게 좋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앞만 보고 나갈 수 있다 하면 그 사람은 그게 믿는 구석이다. 조금이라도 내게 희망을 걸고 배팅해 볼 수 있는 구석이 있으면 되는 거다. 그 작은 불씨 같은 실력이 어떠한 계기를 만나 활할 타오르는 것이다.
힘든 순간 나를 건져 줄 무기
인생을 사는데 가장 힘든 건 먹고사는 문제다. 생계 문제만 해결되고 인생은 꽤 살만해진다. 그러니 만약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작은 불씨들을 가능한 많이 키워뒀으면 좋겠다. 중구난방 식으로 여러 개여도 좋고 아니면 하나의 가지에서 뻗어 나온 곁가지여도 좋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후자를 더 추천한다.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세이브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언제든 전쟁터에 나갈 무기가 준비된 사람이다. 이것만으로 세상 살기가 편해진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두려움은 줄어든다. 무언가 할 게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의 격차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어릴때 난 20대에 개같이 벌어들여 30대부터는 정승같이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40부터는 쉬엄쉬엄 일을 하면서 편안한 노후를 준비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맞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던가. 20대는 돈을 못 벌어도 된다. 그 작은 불씨를 만들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 포텐이 꼭 20대에 터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30대 지나서 터져도 된다. 인생에 '당연히'라는 것은 없다. 나한테 작은 불씨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살이에서 정말 힘들 때 나를 건져줄 무언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