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 인해 힘들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부터 잘 들여다보세요
인간관계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중고등학생 때, 그때 말고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사람으로 인해 내 생활이 흔들릴 정도의 영향을 받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누군가 들으면 참 좋겠다 말할 수도 있고, 해탈했냐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주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관계의 절반 이상은 놓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기대를 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질 인연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했다. 그래서 난 사람과의 문제는 딱히 없었지만 정말 친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나 내 인맥은 대부분 사회에서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더욱더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내 감정이 저 사람을 변질시킨다
나는 평정심에 집착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더욱더.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초연함이 무너질 때가 있다. 요즘이 좀 그렇다. 누군가의 행동이, 말이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한 사람으로 인해 마음에 폭풍이 몰아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평정심이 깨졌다.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이 달라 보였다. 오늘은 이렇게 보였다가 또 다른 날은 저렇게 보였다가. 그런 여러 날들을 겪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저 사람을 보는 내 감정이 저 사람을 변질시킨 거다.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안 좋은 순간에 그 사람을 보면 사람이 나빠 보이고 미워 보였다. 그러다가 내 마음이 조금 풀어진 상태에서 그 사람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은 한결같을지 모른다. 내 마음만 왔다 갔다 한 거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미웠다가.
누군가로 인해 힘들다면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내가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가 내 감정에 휩싸여 있으면 누군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상대를 보고 싶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부터 볼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 저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지금 어떤 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면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로운 이유가 무엇인지 더 빨리 알 수 있다. 아무 감정이 없다면 괴로울 일도 없다. 내가 지금 누군가로 인해 힘들다는 건 그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힘들수록 그 감정이 깊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랑이든 애증이든 말이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사람 앞에 겸손해진다
내 감정이 잣대가 되어 누군가를 평가했던 적이 많다.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다가 알고 지내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때 미안했던 적도 많고 혹은 그 반대였던 적도 있다. 어쩌면 내가 보는 눈이 맞다고 말했던 건 교만한 마음이었다. 내가 뭘 안다고 내 기준으로 함부로 누군가를 단정 지으려 했던 걸까.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전부 알 수는 없다. 설사 결혼을 한 부부라도, 자식이라도, 핏줄이라도 그 누구도 죽을 때까지 타인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그를 전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건방진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인생을 다 모르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감히 내가 누구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람 앞에서 다시금 한없이 겸손해진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겪고 느끼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 스스로가 더 부끄러워지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더 으스대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많이 안다는 건 그만큼 나를 많이 돌아보도 그렇기에 내 얼굴이 더 붉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