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기복이 Apr 21. 2023

두 개의 이별을 맞닥뜨렸을 때

이별의 균형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 늘 그래왔어 한치의 오차 없이.




두개의 이별을 한 번에 맞닥뜨렸다. 우연인 걸까 운명인 걸까. 연달아 오는 헤어짐은 무섭다. 멘붕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아무리 정리하려고 애써도 정리가 안될 것만 같았다. 어느 한 이별도 덜 아픈 이별이 없었다. 두 헤어짐 모두 나에게는 너무 큰 슬픔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다 내 노래 같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이런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했다.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


누구의 탓을 해야 할까. 나에게 너무 자잘한 여운을 많이 남겨 준 그들의 탓을 해야 할까. 아님 거기에 정이 든 내 탓을 해야 할까. 처음에는 쓸데없이 다정했던 그들의 탓을 했다가 후에는 정을 준 내 탓을 했다. 정 주지 말걸....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 버렸다. 쓸데없이. 나이가 든 거다. 원래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이런 걸 보니.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과의 헤어짐이 슬펐던 적도 , 울어본 적도 없다. 항상 담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일상 속 아무것도 머리에 안 들어오고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멍하니 눈만 꿈뻑이며 보낸 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기에 원래 살던 대로 꾸역꾸역 버티며 살고 있었다.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이별


하지만 동시다발적인 이별의 장점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어리둥절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슬픔을 나눠 쓰고 있었다. 하나의 이별에만 집중될 슬픔이 분산되었다. 그래서 어느 이별 하나가 죽을 만큼 아플 시간이 없다. 두 개의 이별을 생각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 면에서는 좋기도 하다. 아마 하나의 이별에만 모든 슬픔이 집중되었다면 더욱더 정신 못 차리게 아팠을 것 같다. 이성을 붙들고 있을 자신이 없다. 슬픔을 나눠 써서 그나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슬프고 우울할 때 오히려 정신이 없으면 그 일들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덜 아프게 지나간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감정들에 빠질 시간이 없는 거다. 감정도 어찌 보면 생각이다. 생각이 나니까 감정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일이 바쁘면 상대적으로 슬픈 일이 떠오르는 시간이 줄기 때문에 그 감정에 휩싸이는 시간이 줄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지나오게 되는 거다.


이별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두 개의 이별을 동시에 준비하느라 마음이 아주 바쁘다. 마치 회사 일을 처리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끝을 만들 수 있을지 머리가 어지럽다. 어느 하나의 이별도 소홀히 대할 수가 없다. 슬프지만 슬픈 감정에 빠져있을 새가 없다. 머릿속이 당황스럽도록 어지럽기 때문이다. 양쪽의 추억을 정리하느라 힘들다. 감정을 걷어내느라 바쁘다. 오히려 그냥 이렇게 바쁘게 지나가면 좋겠다. 어느 하나에도 깊이 빠지지 않고. 많이 울지도 않게.









이별을 버텨내는 법


마음에서 요동치는 파도는 어떻게 머리로 정리할 방법이 없다. 내가 이별을 버텨내는 방법은 감정을 다 써버리는 거였다. 슬프니 슬픈 노래를 많이 듣고, 마음껏 울적해하며 감정을 소진시키는 거였다.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나아진다. 그때 잠깐. 그리곤 어느 순간 갑자기 또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감정이 소진되고 또 차오르고를 반복한다. 대체 얼마쯤 덜어내야 더 이상 밀려들지 않는 걸까. 수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 같은 걸까.


굉장히 이성적인 나였지만 이런 사람도 감성적인 사람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간다.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지금 이 감정도 이 사람들도 잊혀질 거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잊힐까. 하루이틀은 분명 아니다. 그 알 수 없는 시간에 답답해진다. 이 아픔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약인 걸까. 알고 버틴다면 덜할 것 같은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찌어찌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 결국 헤어지지 못해서


영화 <헤어질 결심>.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봤다. 일단 범상치 않은 제목에 끌렸다. 그런데 저 제목에는 생각지도 못한 의미가 있었다. 헤어지지 못하기에 '헤어질 결심'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서래는 결국 끝끝내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나에게도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헤어지지 못할 것 같기에 필요하다. 결국 나도 끝내 그 결심을 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할 것 같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적인 사랑은 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