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멀어질 것
인생을 숙제가 아닌 축제처럼
우연히 유튜브에서 대화의 희열 밀라논나 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말이 내 마음에 들어와 남았다.
"인생을 숙제가 아닌 축제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겁이 많았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았다. 일례로 퇴사하고 과감히 다른 일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주변에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면 꼭 붙잡고 물어봤다. "뭐 할 거야?" 그럼 다들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 모르지. 나가서 찾아야지." 놀라웠다. 아무 계획 없이 나간다는 것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계획이 아니라 자리가 잡혀야 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인생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튀지 않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되도록 겪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았다. 삶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내가 용기를 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삶은 절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알 속에 있으면서 내 인생이 변하길 바라고 있는 거다. 자신의 기준이 명확한 것은 참 좋은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세상을 많이 알지 못해 내 기준이 너무 확고한 건지도 모른다. 세상을 많이 보다 보면 자신의 기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기준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O, X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름'의 문제였다.
낯선 나를 만날 것
교복을 졸업하고 한 번도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성스러운 복장을 입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헐렁하고 캐주얼한 옷들만을 입었고 요즘엔 트레이닝복을 주로 입었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고 꾸밀 줄도 몰랐다. 주변에서 피부과를 다니고 성형을 하는 것을 보며 '저 안 좋은 것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뭐든 과하면 문제이지만 누군가에는 꼭 필요해서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또한 살면서 자기만족이란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옷을 보러 들어가도 쓱 둘러보고만 나오지 피팅은 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너무 귀찮고 싫기도 했고 어차피 옷을 사지도 않으니 입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쇼윈도에 걸린 옷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옷을 내가 입으면 어떨까? 나한테도 저런 예쁜 옷이 어울릴까?' 그리고는 수많은 옷들 중 가장 여성스러운 옷을 들어 피팅룸으로 갔다. 그 옷을 착장 한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보게 되었을 때 이제껏 전혀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옷이 나한테도 어울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낯설었지만 새로운 모습이 너무 좋았다.
생전 안 그리던 아이라인도 그려봤다. 마스카라도 해봤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메이크업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무조건 이게 좋다 나쁘다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진하게 화장한 사람들을 보면 성격이 까칠할 것 같고 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매일이 특별해지는 삶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았던 적이 없다. 내일이 오는 게 싫은 삶을 살았다. 나에게 밤은 항상 제일 좋기도 하지만 아쉬운 시간이었다. 밤은 오늘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 끝에서 내일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매일이 지겹고 힘든 하루들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고 내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생각 한 끝 차이였다.
새로운 경험은 매일을 의미 있게 만든다. 지금껏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말할 때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일이라고만 생각했기에 향락의 도구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여행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만날 때 한 뼘 더 성장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고 낯선 향을 맡고 낯선 공기를 마주하면 내 생각과 감정이 달라진다. 같은 바람이라도 서울의 바람과 속초의 바람은 다르다. 아직 젊고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다면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더 많이 좇을 때이다. 그래서 자신을 더 많이 알아갔으면 좋겠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자주 깜짝 놀라기도 했으면 좋겠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 꽤 후회가 남는다.
알에 금을 내 볼 용기
'낯섦'은 소중한 감정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껏 잘 살다가 새삼스레 느끼지만 세상은 참 넓고 볼게 많다. 익숙한 것만을 좇았지만 이제는 신선한 것들에 눈을 돌린다. 나이를 먹어서 조금 더 대범해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인생이 안 풀릴 때는 책만 죽어라 읽어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일 거라고. 그런데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발로 뛰며 세상을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서점이야말로 그 넓은 세상과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이다. 내 인생이 안 풀릴 때는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간접적인 새로운 경험이다. 이제는 전과 같은 체력은 없다. 다리도 조금 후들거린다. 그래도 알에 금을 내 볼 용기가 생겼다. 알이 깨지고 내일이 기대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