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더 불쌍한 거에요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내 생일을 챙겨준 사람이라면 나도 반드시 그 사람의 생일을 챙겨 준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받은 호의는 꼭 어떠한 방식으로든 돌려줘야 마음이 편한 성격이다. 그런데 전에는 호의 뿐만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 역시도 고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상처는 내가 아픈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쉽나. 상처란 다시 그 사람에게 돌려주려 할 때에는 이미 타이밍도 늦고 그 사람도 내 주변에 없다. 항상 상처란 일방적이다.
과거 사람 때문에 꽤 힘든 일이 지속되고 있을 때가 있었다. 내 생활이 흔들릴 정도로 정신이 힘들었다. 1년 가까이 그랬던 것 같다. 상처란 게 그렇다. 가해를 한 사람이 잘못된 게 맞는데 처음에는 그 사람이 밉다가 점점 자기 자신이 미워진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을까. 이런 일 당하기 딱 좋게 만만해서일까. 지속적이고 심한 상처는 결국 자기 파괴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은데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마음 하나 추스르는 것도 힘든 상황에 무엇을 더 하겠나. 이때 나의 끝없는 자기혐오에 누군가의 한마디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 그 친구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저렇게 살면 결국 자기 인생이 안 좋지 않겠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저 친구처럼 산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할 것 같았다. 매일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고 그 사람을 괴롭힐 궁리를 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될 것 같았다. 스스로 피곤해서라도 저렇게는 못 살 것 같았다. 좋은 생각, 좋은 얘기만 하기에도 하루가 빠듯한데 매일 누군가를 욕하고 거기에 감정을 소모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내가 되돌려주지 않아도 저 사람은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텐데 그렇다면 자신이 품은 안 좋은 마음에 걸려 결국 본인이 넘어질 것 같았다. 저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이 드는 순간 미움보다 그 사람이 불쌍해졌다.
내가 아니라도 그는 충분히 힘들다
- 내 인생만 돌보세요.
그 일 이후에 사람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쩜 저렇게 못됐을까 생각하다가도 저렇게 인상 쓰고 못되게 살면 저 사람 인생은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이 들면 이내 화나는 마음이 가라앉혀진다. 굳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 상대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내가 아니라도 그 친구 인생은 충분히 힘들 거다. 그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때로는 타인이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못되게 군 적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혹여나 주변의 안 좋은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저 말이 생각의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상대방의 인생은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나는 내 인생이나 돌보자. 저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순간이고 앞으로 나는 행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