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픽션을 쓰면 되니까 말이다. 픽션에는 관심도 없고 그것을 쓸 능력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내 마음, 내 감정을 글로 전달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일기장이 아닌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글로 다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어릴 때부터 말 못 할 속상정이 많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주 어린 나이부터 꽤 깊은 고민들을 많이 했다. 가정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애늙은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상황이 나를 일찍 성숙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나. 그 시절부터 나는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에 참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투정도 부리지 않았고 눈치도 많이 봤다. 그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집은 나에게 들어가기 싫은 곳이었다. 학교에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숨이 막히던 게 생각난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밥만 먹고 나면 명치가 아플 때가 많았다. 자다가도 명치가 아파서 깬 적이 많다. 그럴 때면 항상 이렇게 아프면 병이 있는 거 아닐까. 그냥 병에 걸려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할 생각이 아니었다. 약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다고 느껴진다. 이제는 너무 힘들어도 저런 말은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극복은 아니고 그저 힘듦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푼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음이 공허하다. 마음의 안식처가 없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이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난 항상 나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맨날 울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약해졌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진짜 마음이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마음이 강해 보이는 것은 상처가 많아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강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고 깊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했다가도 수십 번을 없앴다. 혹시나 거기 적었던 내 솔직한 글들이 약점이 될까 봐. 그 생각에 한번 사로잡히니 글을 쓰기 힘들었다. 약점이 될 만한 부분들을 모두 빼니 한 글자도 적을 게 없었다. 그날그날 수십 페이지씩 적어 내려갔지만 올릴 글들은 없었다. 내 일기장을 남한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어두운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그렇게 만들고 없애고 이미지 세탁을 수십 번씩 했지만 결국 내가 써지는 글은 그날의 내 감정들이었다.
이게 나의 일기장에 불과하지. 누군가가 보는 글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항상 의심한다. 글은 목적성이 분명해야 하며 장르가 확실해야 한다고 국어 시간에 배운 주입식 교육 때문일까. 내 힘듦을 털어놓는 창구가 글이었는데 그게 없어지면 항상 힘이 든다. 그럼에도 내 일기 같은 글을 보고 누군가는 공감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좋은 이웃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알아본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게 우리가 타인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힘든 요즘 다시 한번 일기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사실 그동안도 적어왔지만 올리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적은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위로가 될까. 내 글에 목적은 없다. 정보도 없다. 그저 같이 위로하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서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면 그걸로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