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삶의 원리
복잡한 도심에 살다가 한적한 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 20년 가까이를 한 동네에서 살다가 갑자기 다른 동네를 와서 그런지 좀처럼 정이 들지를 않았다. 여기 사람들도 너무 어색했고 비역세권에 살다가 역세권으로 이사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살던 동네가 그리웠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이곳에 머물지 못하고 한 시간에 걸려 전에 살던 동네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 만족감이 상승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감정이 생생하다. 역에서 내리는 순간 여기로 이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곳의 첫인상은 일본의 오사카를 보는 것 같았다.
내 꼴리는 대로
나는 '끌림'이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는 '끌리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집이든 사람이든 내게는 '끌림'이란 것이 중요하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끌리는 것에 따르는 편이다. 그리고 그 두 단어를 장황하게 표현하면 '마음이 시키는 곳'이라고 풀어쓸 수 있다. 짧다면 짧은 인생 경험이지만 대체로 끌리는 쪽으로 결정할 때 후회가 적었다. 그리고 나는 내 '끌림'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은 편이다.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머리가 아닌 마음을 따르는 편이다. 내가 끌리는 대로, 좀 포장해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선택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 실패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이 해준 선택에서 만나는 실패는 극복 불가능한 실패라고 한다. 남을 탓할 수도, 그런 선택을 한 나를 탓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패하더라도 나의 선택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고장 난 나침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은근 완벽주의자다. 인생을 직선으로 살고 싶어 했다. 지름길을 좋아했다. 그래서 남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 나침반이 고장 났다. 고속도로를 타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헤매고 있다. 일단 이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길을 찾으려면 나침반을 고쳐야 한다. 너무 안 써서 고장 나버린 내 나침반을.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길이 나 있는 곳으로 꾸역꾸역 걸어 나가야 한다. 어차피 뒤를 돌아도 앞으로 가도 미로일 것이니.
꽃 사진을 찍으면 늙은 거라는데
작년부터인가. 꽃 사진을 많이 찍는다. 꽃 사진을 많이 찍으면 늙은 거라는데 늙어가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도심을 좋아했다. 모든 게 편리하게 다 되어있고 네온 사인 가득한 도심에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알아버렸다.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힐링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삶의 질을 끌어올릴지 몰랐다. 이곳을 떠날지 안 떠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내 초기 계획은 이곳에 잠시 사는 것이었기에. 이곳을 떠나는 날 조금은 아쉬울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이 종종 어쩌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마치 그리운 사람처럼.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익준아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넌?”
나 이거 샀어 장작 거치대”
“왜 샀어, 그런 걸?”
“날 위해 그냥 샀어. 나 이거 살 때 엄청 행복했다”
“너는 뭐해주는데? 널 위해 너한테 뭐해주냐고”
당근과 채찍 ; 어쩌면 간단한 살아가는 원리
마음 편히 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현생에서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돈을 몇백억 정도 쌓아 놓으면 가능하려나? 쉼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쉼 없이 달려가야 한다. 일 할 수 있는 체력과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보상할 줄 몰랐다. 행복은 뒤로 미뤘다. 성공하면.... 그때 가서 나중에... 그런데 살면서 모든 건 때라는 것이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못하는 것은 나중가도 못하고 혹은 더 힘들 수도 있다. 이런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쉼 없이 달렸는데 뭐 하나 이룬 게 없다. 남은 건 저질이 된 체력과 지쳐버린 정신 상태일 뿐이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고삐를 조금 풀어준다. 쉬어야 뛸 힘이 생긴다. 살아가는 원리는 어쩌면 당근과 채찍이라는 간단한 논리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카페에서의 맛있는 커피 한잔이 당근이다. 지친 일상에 그나마 잠시 잠깐 세로토닌을 분비해 주는 소확행이다. 아직도 여전히 쉬는 게 불안하다. 쉬는 법을 모른다. 마음이 급하다. 조금 더 잘 쉬고 잘 먹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잘 나아가는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